[기후정치의 시선] 분열하는 연대와 확장하는 연대
: 이익을 공유할 것인가, 전망을 공유할 것인가
김상철
기후위기비상행동 기후정치위원회 위원장
대선이 끝나고 엉뚱한 논란이 벌어졌다. 이재명 정부의 대통령실 인사가 확정 되면서 기존 국회의원 중 입각하는 일이 발생했다. 현행 국회법 제29조는 국회의원의 겸직 금지조항을 명시하는데 국무총리나 국무위원을 제외한 직위를 가질 경우 사임하도록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지역구 의원을 가진 이는 보궐선거를 해야 하고 비례의원은 후순위 후보자가 승계를 해야 한다. 현재 2명의 민주당 비례의원이 사직을 하게 되어 기존의 2명이 의원직을 승계해야 하는데, 그들은 민주당을 중심으로 하는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서 제출한 비례명부의 15번 손솔과 16번 최혁진에 해당된다. 이 중 최혁진은 새진보연합이라는 임시정당의 추천으로 명부에 올린 이이며, 새진보연합은 선거 이후 사회민주당, 기본소득당, 열린민주당으로 다시 해체되면서 기본소득당으로 복귀해야 하는 처지였다. 하지만 스스로 정당 추천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추천이라는 입장을 밝히며 민주당 잔류를 선언하면서 때아닌 ‘정치적 도의’를 둘러싼 논란을 초래했다.
사익의 충돌으로 붕괴하는 트럼프주의
새정부 출범을 앞두고 벌어진 여러가지 일들 중 이 일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와 비슷한 사태가 미국에서도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초부터 이민법 상의 이민비자를 둘러싼 트럼프 행정부의 갈등은 급기야 트럼프와 머스크의 균열로 파국을 맞이하고 있다. 이 사태가 중요한 것은 프럼프주의의 핵심 세력인 마가MAGA 포퓰리스트들과 실리콘밸리의 기술 우파의 분열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애당초 이들의 연합은 공동의 비전을 가졌다기 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것에 가까웠다. 마가 포퓰리스트들은 기존의 민주당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주의자들이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일자리를 해외로 빼돌리면서 미국민이 누려야 하는 풍요를 탈취했다고 본다. 또한 이민자들을 무분별하게 수용하면서 정부의 재정을 이들에게 쏟아붓는 것은 물론이고 내국인을 위한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믿는다. 결국 이들에겐 민주당의 세계화는 미국의 가치를 배반하는 비애국적인 행위가 된다. 미국이 우선한다는 가치를 전제하는 마가 포퓰리즘은 바로 미국-백인-노동자/농민들의 박탈감을 기본으로 한다. 반면 기술 우파는 다르다. 이들은 오히려 규제가 문제다. 각종 노동 규제나 환경 규제는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훼손하고 이 때문에 정작 미국민의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발전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본다. 그래서 기업을 우선하는 강력한 정부가 필요한데 대표적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하는 각종 환경규제가 대상이다. 머스크가 규제개혁 부서를 통해서 정부의 규모를 줄인다고 할 때 가장 핵심이 되었던 곳은 사회 규제를 담당하는 이들이었다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런데 정작 이들이 붕괴하게 된 것은 각자의 내국민과 내국 기업을 위한다는 방식이 공존할 수 없게 되면서다. 최근 트럼프 정부는 감세안을 골자로 하는 정부 재정관련 법안을 고안했는데 여기엔 이민 규제를 위한 예산이 대폭 반영되어 있다. 기존에는 불법 이민자에 대한 규제에 초점이 가 있었지만 이번엔 해외의 고급기술 인력을 대체하기 위한 예산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소위 H-1b 비자라 부르는 비이민 기술취업 비자가 핵심이다. 머스크와 같은 기술 기업을 운영하는 이들은 미국에서 석사를 마친 외국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고용해왔다. 명시적인 임금차별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국인에 비해 기술 역량과 더불어 고용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관행은 마가 포퓰리스트가 보기엔 제조업의 해외진출을 촉발했던 민주당 류의 세계화와 별반 다르지 않다. 우선 미국인들의 취업을 제한하여 역차별을 주고 미국에 애써 개발한 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해당 비자는 미국으로 이민을 하지 않더라도(시민권을 획득하지 않아도) 취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언제든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스크와 같은 기술 우파가 볼 땐 이미 고용하고 있던 기술자들을 돌려보낸다는 것은 생각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입장차이가 분명 매우 중요한 논쟁지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결국은 트럼프와 머스크의 상호 비난과 같은 촌극으로 불거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정치연합은 공동의 합의된 비전을 토대로 한 것이 아니라 상호 간 트럼프와 같은 강력한 정치권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즉 권력을 중심으로 각자의 이익을 도모했을 뿐 공동의 구상같은 것은 없었다. 물론 차기 대통령을 노리는 밴스 부통령은 이 둘 간의 갈등을 별 것이 아닌 것처럼 봉합하려고 하지만 그렇게 되긴 힘들다. 결정적으로 사익 간의 충돌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기술 우파들이 볼 때 역량도 되지 않는 이를 내국인이라는 이유로 더 많은 임금을 주면서 고용하는 것은 그들이 신봉하는 능력주의의 관점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하지만 마가 포퓰리스트들은 미국의 기업이라면 미국인을 고용해서 이들을 육성할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트럼프주의의 핵심은 ‘만들어간다’에 있기 보다는 기존의 것을 ‘무너뜨린다’라는 것이기 때문에 이 둘을 봉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꼼수가 꼼수로 무너지는 역설
최혁진은 한국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 나름대로 지명도가 있는 이다. 그가 2003년에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과 가진 인터뷰를 보면 “한국사회는 성격상 중앙정치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을 쉽게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 한다고 비판하면서 “지역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지역정치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당, 이런 정당이 진보정당”이며 밑으로부터의 정치운동에 대한 전망을 밝힌 바가 있다. 하지만 2017년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고 바로 청와대 비서관으로 간 이력을 보면 과연 그이가 말한 사상이 시간의 풍화를 견뎌 냈는지 의문이다. 그리고 사회당 출신인 최혁진을 소위 사회적 경제 영역의 간판으로 가져간 새진보연합 구사회당 출신자들(현 기본소득당)의 인식 역시 협동조합 운동의 이상이나 이념이 토대가 되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정치적 욕심을 달성하고자 한 개인의 사익과 위성정당 내에서의 사회적 명분을 채워야 해서 ‘예전부터 알던 사람을 끌고 들어온’ 정치세력의 사익이 편의적으로 절충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특히 국민의힘이 먼저 위성정당을 만들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2023년과 2024년 사이 이미 4년 전에 있었던 위성장당 사태를 극복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요구를 민주당이 공식적으로 폐기했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2024년 2월 5일 당시 이재명 대표는 ‘준연동형 비례제’를 당론으로 결정해 국회에서 논의 중이던 공직선거법 개정 논의를 중단했다. 24년의 위성정당은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을 돕는 다는 목적으로 도입된 비례제 강화방안이 이미 거대 정당의 꼼수로 인해 왜곡된 사태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반복한 것에 불과하다. 특히 민주당은 대선 공약으로 ‘위성정당 금지를 전제로 한 비례대표 확대’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위성정당 방식에 동참한 자칭 진보정당들 역시 꼼수라는 비판을 비껴서기 힘들다.
비슷하게 트럼프와 머스크의 결합 역시 새로운 미국사회에 대한 비전에 대한 공감이라기 보다는 정치권력을 갖고자 하는 트럼프의 사익과 머스크를 필두로 진짜 혁신이 아니라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약속의 파기를 통해 추구하는 기업의 사익이 야합한 결과다. 물론 더불어민주연합이라는 위성정당이 국민의힘의 위성정당에 맞서면서 윤석열 정부에 대항할 필요가 있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열망을 반영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비슷하게 일자리가 사라지고 위대해지는 국가에 비해 초라해지는 삶을 살아가는 미국의 노동자 계급이 가진 불만이 마가 운동의 토대가 되고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해서는 안된다. 주목해야 하는 건 윤석열에 맞서는 것 그리고 배반당한 노동계급의 불만이라는 것을 자신들의 사익을 위해 포장한 꼼수로 끌고간 정치세력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강조해야 하는 것은 그런 정치세력에 맞서는 대안적인 정치의 부재다.
전망의 공유를 위해
이번 대선 과정을 경유하면서 기후위기비상행동의 기후정치에 대한 관점이 중요하게 변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남, 대구, 서울에서 진행된 기후정치행동학교라는 공론장에서는 그간 피상적인 기후정치를 구체적인 기후정치세력의 필요성으로, 또한 기후정치인의 발굴과 육성이라는 과제로 논의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형식적인 정치적 중립성에 발목 잡히기 보다는 구체적인 협력과 지지의 논리를 새롭게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열망은 새롭게 등장한 민주노동당에 대한 태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려도 존재한다. 기존 진보정당 운동이 보여온 모습은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지 사익을 중심으로 하는 이합집산을 보여왔다. 그래서 당장은 정당에 대한 논의보다는 공동의 정치활동에 대한 관심이 높다. 무엇보다 민주노동당으로 모인 소위 광장정치세력의 논의가 정당 ‘간’의 논의로 축소되어서도 안되지만 정당 ‘밖’의 논의로 방치되어서도 안된다는 인식이 크다. 이 과정은 현재와 같이 개별 사안에 대한 선택적 공동사업을 통해서도 충분하지 않고 선거라는 특정한 계기에서의 공동 행동 만으로도 가능하지 않다. 오히려 공동의 인식체계를 만들어야 하고 이를 가능하게 할 공동경험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기후위기라는 당면한 과제는 현 시점에서의 가장 급진적인 정치적 프로토콜일 수 있다. 기후위기 대응을 둘러싼 논쟁들을 회피하지 않으면서 우리 안의 구체적인 인식 차이를 확인해야 한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동의 정치운동을 모색할 수 있는 신뢰를 만들어야 한다.
꼼수의 붕괴를 보면서 다시 새로운 정치운동을 생각할 수 있다면 결국은 공동의 전망을 만드는 것 밖에는, 그리고 그것의 가장 시작점에 있는 공동지반은 기후위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지금과 같이 기후위기에 대한 백래쉬가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기후위기를 전면에 내건 세력이 진보일 수 밖에 없다고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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