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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정치의 시선

[기후정치의 시선] 왜 우리는 그만큼 못하는가?

 

왜 우리는 그만큼 못하는가?

- 트럼프가 보여주는 ‘가능성’에 대해

 

김상철

기후위기비상행동 기후정치위원회 위원장

 

뜬금없는 질문을 던져 보자.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자본주의자인가? 아마 많은 이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질문을 바꿔서 트럼프는 시장주의자인가?라고 물으면 어떤가. 여전히 그렇다는 답이 많을까. 요즘 트럼프가 보이는 행태를 보면 현대 자본주의의 핵심이라는 시장주의라는 것이 빛이 바래져버린 포장지같다는 생각을 한다. 최근 트럼프는 반도체 생산회사인 엔비디아가 중국에 수출을 할 수 있도록 하면서 판매 수익의 15%를 정부에 납부하도록 했다. 세금이나 부담금도 아니고  일개 기업과 백악관이 직접 협의를 하고 ‘자발적으로 납부하는 방식’을 택했다. CNN에 따르면 백악관은 이와 같은 조치가 수출에 대한 세금 부과를 금지하고 있는 미국 헌법의 내용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출에 세금 부과를 하지 않는다는 헌법의 취지는 무시하면서 법 조문의 위반만 따지는 적법절차주의의 전형이다. 법학자 이계수는 ‘자본주의와 행정법’이라는 책에서 1998년에 도입된 행정절차법을 언급하면서 법 행위의 실질이 아니라 절차만 지키면 적법성을 얻게 되는 미국식 자본주의 법제가 이식된 결과라 지적했는데, 지금 백악관의 사고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반시장, 반자유에 대한 침묵들

 

흥미로운 것은 마치 자유시장이 자본주의의 심장이라도 되는 듯, 정부의 시장개입이나 기업 활동에 대한 제약에 호들갑을 떨어왔던 기업들의 침묵이다. CNN은 지난 8월 20일 ‘트럼프가 자유시장 원칙을 포기한 것에 대해 미국의 기업들이 침묵하고 있다’는 기사를 통해서 바이든 정부 시기 정부정책을 비판해왔던 기업과 관련 로비단체의 침묵을 비판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기업단체인 상공회의소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직전인 2024년 8월에는 신용카드 연체료 상한선을 제한하려는 기관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법적 권한을 초과했다’고 비판한 바 있고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에 의해 도입된 메디 케어 의약품 가격에 대한 협상제도에 대해서도 정부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정부의 권한이 커질 것을 비판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상공회의소는 트럼프의 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에 대해서는 소송은 커녕 비판논평도 내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 로비단체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역시 마찬가지다. 세금과 환경 규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을 해오면서 대통령의 지나친 권한 행사가 시장 원칙에 위반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하지만 기업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트럼프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개별 기업들이 명확하게 불이익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즉 기업들이 그렇게 비판하는 정부가 실제로 기업들을 괴롭히는 용도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코카콜라의 당분을 사탕수수 설탕으로 바꾸는 것에서 시작해서 골드만삭스의 한 분석가가 관세 인상 때문에 물가가 오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으니 직접 해임을 요구하는 일이 벌어졌다. 끝내 기업이 스스로 자기 이윤의 일정 부분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정부에 대한 독립성이 중요한 연방준비은행이 금리 인하에 나서지 않자 특정한 연준 이사를 찍어서 ‘비리 조사’라는 명목으로 사퇴를 압박하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행태에 대해 기업들과 기업 로비단체들은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언론들도 마찬가지다. 미국 정관계 인사들의 성추문이 담긴 엡스타인 보고서를 둘러싼 논란에서 월스트리트저널이 트럼프가 엡스타인의 파티에 참석했다는 증거 중 하나를 공개하자 직접 사주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하고 소송 압박을 했다. 밴스 부통령은 월스트리트저널이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실제로 지난 7월에 100억 달러 규모의 소송을 제기했는데, 그 보다 더 심각한 것은 해당 보도 이후 백악관이 주요한 언론 인용과정에서 월스트리트 저널을 배제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언론사에 대한 소송과 더불어 정부기관이 대통령에 대한 보도를 이유로 특정 매체를 공적 여론시장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그러면 미국의 대표적인 자유주의 평가기관인 프리덤 하우스는 바이든 정부 내내 100점 만점에 83점의 점수를 부여했으나 2025년에는 1점을 상향해 84점을 부여했다. 평화적인 절차에 의해 선거가 치뤄졌다는 이유가 컷다. 

 

 

갈색 산업으로 기우는 자본주의

 

기후위기 문제가 진지하게 고민되기 시작한 2019년 이후 소위 ESG라는 경영기법은 정부가 강제하지 않아도 기업은 미래의 생존을 위해 친환경적이고 인권적인 경영을 하게 될 것이라고 천명했다. 즉 강제적인 방식이 아니라 경제적, 제도적 인센티브 만으로도 충분히 기후위기 대응에 필요한 기업들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2025년 3월에 해외 경제학 저널에는 ‘선거와 시장의 반응’이라는 논문이 실렸다. 이에 따르면 트럼프가 당선되자 탄소배출이 많은 전통적인 ‘갈색 산업’에 주식투자자들이 몰렸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환경 점수가 좋았던 기업들은 투자자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주식 시장에 기관 투자자들이 주요한 행위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와 같은 반응은 시장이 반드시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거시적인 환경변화에 민감할 것이라는 가정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트럼프 정부에서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이라는 해괴한 법률을 통해서 기존 바이든 정부의 재생에너지에 대한 보조금이 전액 폐지되자 시장의 조건은 완전히 달라졌다. 시장은, 그리고 그 원리에 의해 움직인다는 기업은 바로 재생에너지를 버리고 비용이 더욱 많이 들고 탄소를 배출하는  세일가스 추출에 나섰다. 이런 사실은 자본주의 기업이 스스로 장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 환상을 넘어서 거짓임을 보여준다. 기업도 개인과 마찬가지로 단기적인 생존을 위해 애를 쓰는 개체에 불과한 것이다. 더더군다나 자유 시장을 위한 성전 같은 것은 입에 발린 미사어구도 되지 않았음이 분명히 드러났다. 그저 기회가 된다면 탄소배출 여부와 상관없이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기업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현대의 정치적 힘에 대해

 

트럼프를 통해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확인하고, 명분이나 가치가 아니라 이익과 불이익을 통해서 통제해야 하는 기업의 생리를 확인하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을 실제로 실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를테면 주식투자자 중 1%에 불과한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을 둘러싸고 결국 폐기하기로 하면서 추진한 주식양도세 논란을 자초하는 과정을 보면 한국 정부가 구체적인 시장 가치를 지향한다기 보다는 특정한 경제 집단에 취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여전히 수립되지 않고 있는 2035년까지의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역시, 기준 설정의 어려움이 아니라 정부가 누구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 기업이 내국인을 고용하지 않고 국내에서 생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무슨 엄청난 경제적 성과를 얻어낸 것처럼 말하는 것과, 미국의 원자력 기술회사에 로열치를 주기로 하면서 ‘재주부리는 곰’을 자처해도 해외 수주 자체가 국익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기후위기 의제가 전 세계적으로 후퇴하고 있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 아니라, 정치 지형이 명확하게 ‘탈 기후’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형식적으로라도 기후위기 문제를 언급해왔던 중도 정당 마저도 기후위기 문제를 경제산업 정책의 하위 요소로 취급하면서 심해졌다. 이것은 유권자인 시민들의 인식이 달라져서가 아니라 이와 같은 유권자를 특정한 정치의제로 줄세우는 편성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국가는 무언가를 하면서 현 체제를 지원하기보다는 오히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현 체제를 돕는다. 즉 무언가를 한다는 행위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면 진짜 정부의 기능에 대해 간과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노골적인 국가의 오른 손을 보여주는 트럼프의 정치행태는 그런 손은 보이지 않는다고 외쳐온 자유시장이란 이름의   ‘벗거벗은 임금님’을 떠받드는 세력들의 민낯을 드러냈다. 

물론 변화가 필요하다고 해서 방법이 후질 일은 아니다. 우린 더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을 통해서 현재의 위기를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부의 힘이 없이 자동적으로, 마치 자동기계처럼 기후위기라는 문턱을 넘어설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하다기 보다는 위선에 가깝다. 오히려 정부의 역할을 강조해온 소위 진보주의자들이 트럼프와 같은 노골적인 자본주의자 수준에도 못미치는 정치력을 보이는 것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행사할 수 있는 정치적 힘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은 정부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