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정치 넘어서기: 광장정치가 제도 정치를 구성할 수 있는가
김상철
기후위기비상행동 기후정치위원회 위원장
최근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유럽의 정치현상을 분석한 글에서 극단적 우파extreme right를 딱딱한 우파hard right로 바꿔서 불러야 한다고 제안했다. 2010년 이후 기존 4~5%에 머물던 극우정치세력은 북유럽 국가를 필두로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20%에 가까운 지지세로 성장하고 올해 초에 있었던 독일 총선에선 독일의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이 20.8%로 제2당으로 급부상했다. 독일 선거의 제1당 득표율이 기민/기사당으로 28.6%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극우정당의 약진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의 제안은 어떻게 ‘극단적’이라는 개념이 사실상 다수에 근접한 정치세력에게 어울리는가, 라는 질문에 닿아 있다. 사실상 극우적 정치세력은 21세기 정치현장에서 주류화되었다는 주류 언론의 승인인 셈이다.
광장정치 대 제도정치?
이런 논란은 한국에서도 광장정치에 대한 태도를 둘러싸고 투영된다. 123 내란사태 이후 광장에서는 대통령의 탄핵을 둘러싼 요구가 강해졌다. 실제로 내란 세력의 국회난입이 시작되면 12월 3일 당일 내란군의 진입을 막은 것은 거리의 시민들이었다. 그 경험은 국회가 아니라 광장에서 새롭게 탄핵 이후의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광장은 계엄을 옹호하고 국가기관에 대한 물리적 폭력을 옹호하는 극우의 장이 되기도 했다. 좋게 말하면 광장이 탄핵을 둘러싼 세력 간 경합의 장이 된 셈이고 갈등이 가시화된 계기로서 의미를 지니지만 나쁘게 말하면 오히려 갈등을 심화하고 자칫 봉합할 수 없는 상호 절멸주의(상대방을 없애야 한다)를 강화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극우정치에 대한 극복의 방향으로 광장정치에 대한 거리두기가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법원이나 헌법재판소, 선거관리위원회 등 국가기관에 대해 부정하는 극우 세력에 대해 “저런 주장은 원래 극좌의 주장아니냐”며 정치적 극단주의를 구조적으로 배제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다. 분명하게 말하면 국가기관에 대한 태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부정하는 목적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 비교는 틀렸다. 하지만 이런 몰관점은 하나의 대안으로 강제한다. 즉 조절되고 절충되는 정치의 영역으로서 제도 정치의 강화라는 맥락이다. 실제로 탄핵 국면에서의 정치를 분석하는 다양한 입장에서 제도 정치의 복원, 더 노골적으로는 정당 정치의 강화가 대안이라는 말이 들려온다. 시기적으로 보면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이 가시화되고 사실상 조기대선이 확정된 시점이다.
이런 태도는 광장정치를 한 시기의 과도적 형태로 보고 이를 다시 제도 정치로 흡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계승/발전의 맥락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광장정치와 제도 정치를 대립적으로 보고 광장정치를 통제/관리의 맥락으로 대별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것도 이 둘의 관계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한다. 기본적으로 현재 탄핵 국면은 제도 정치의 반복적인 한계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고 더 직접적으로는 대통령제라는 권력구조가 가진 정치적 정당성의 취약성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광장정치와 제도 정치의 관계는 오히려 기존 제도 정치에 대한 비판적 평가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를테면 집권 여당과 대통령 간의 정치 조정 과정에 대한 평가, 국회의 입법 과정에서 정당성 문제, 대통령과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하는 국정운영 방식의 민주성 문제 등이 다뤄질 필요가 있는데 이런 평가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사회운동의 측면에서 보면 과도한 국회의존성과 그로 인해 ‘당장 이거라도 하자’라는 절충주의가 운동적 현실주의로 둔갑한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 징검다리는 정확한 방향에 놓여 있어야 의미가 있지, 단지 지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닌데도 현재의 고착을 해결하다는 취지에서의 절충이 얼마나 현실주의라는 말로 이야기되었던가.
특히 반복적인 위성정당 사태로 인해 사실상 양당 구도가 강화된 현재의 정당 구조를 보자. 소위 원내 야당 5개 정당이라는 개념은 형식적 분리 외에 어떤 실질적 차이를 보여주는가. 이런 사태가 소수 정당의 의석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민주적 정당성을 보장하는 ‘다수연합’의 이미지를 쓸 수 없게 만든다(이를 테면 위성정당 사태는 소수 정당에 유사-민주당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하여 원내 구도 내에서의 다수성을 없앤다). 이런 상황에 대한 진단, 즉 반복되는 계엄 사태의 정치적 계보학적 인식에 대한 고민이 없는 광장정치 대 제도 정치의 대립은 사실상 계엄 정국의 구조적 원인인 기존 정당 제도로의 퇴행과 다름이 없다. 즉 의도적인 대안 없음이 노리는 실질적인 결과로서 민주당 대 국민의힘 구도를 계엄세력 대 헌정세력 으로 눈속임하는 것에 불과하다.
독일총선 다시보기: 어떻게 극우정치(그리고 이를 만든 기존 제도 정치를)에서 벗어날 것인가
한국의 극우세력이 지속적으로 세력을 강화할 수 있는 것은 기존 정치 구도가 민주적 시민들을 유권자로 동원해내는데 실패하기 때문이다. 즉 유권자 1인은 경제, 문화, 교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복합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과정에서의 선택은 단지 하나의 이슈 만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이를 고정시키는 것이 정치 구도라고 할 수 있고 정당은 바로 이런 정치 구도를 형성하여 국가 수준의 정치적 비전을 형성하는 책임이 있다. 만약 극우 정치에게 유리한 정치 환경이 지속되고 이로 인해 다양한 유권자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특수한 시민적 관심이 도드라지게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이 상황에선 의제를 주도하는 세력 간의 ‘정도 차이’로 판단을 구하는 경합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를 교차시킬 수 있는 다른 의제나, 아니면 기존 의제의 핵심적인 질문을 옮기는 새로운 정치 구도를 만들 수 있다면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그것이 어떤 가능성인지 다시 독일 선거 결과를 통해서 생각해보자. 왼쪽 그림은 이번 총선 결과를 독일 지도를 통해서 표현한 것이다. 구 동독과 서독의 정치적 지지 양분화가 분명히 보인다. 우선 제2당으로 등장한 독일을 위한 대안은 동독 지역에서, 더 정확하게는 동독 지역의 정당으로 성장했다. 통일 이후 서독과 동독의 지역 차이는 점차 정치적 인식 차이로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 배경에는 독일의 경제 성장 방식이 여전히 기존 서독 중심의 경제 구조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서독 지역에 투자가 적었다는 개념이 아니라, 동독 지역의 대안적인 발전 전략에 소홀했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정당이 특수한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 전략을 채택할 수 밖에 없는 자본주의 발전전략이나 지역 간 착취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 그리고 순환경제나 기후대응을 근거로 해서 추가적인 연방의 투자전략을 만들어내는 요구 대신 ‘이민자 때문이다’라는 논리를 제시한다고 해보자.
실제로 2013년과 2017년 간 독일의 정당 이념과 이민에 대한 태도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면 극우정당의 전략을 확인할 수 있다. 정당 이념의 관점에선 2013년과 2017년 사이에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보수정당 등이 부분적으로 이민 제한 방식으로 옮겨갔지만 실질적으로 정치적 빈 공백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독일을 위한 대안인 것이다. 그러면 이런 상황을 대응하기 위해 기존의 정당들도 이민 제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일까? 그렇진 않다. 이민 제한이라는 주제는 원인보다는 해결에 해당 되는 내용이다. 브렉시트를 촉발한 주요한 동력도 이민 정책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면 브렉시트 이후에 이민이 급격하게 줄어 들었나? 그렇진 않다. 이민자의 구성이 바뀌었을 뿐인데, 기존의 비숙련-저임금 노동시장에서 이민자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고숙련-고임금 노동시장에서 이민자 비중이 늘어나는 이민 전환이 발생한 것이 발견된다. 즉 이민 문제가 경제적 문제로 나타나는 이유는 사회적 불안정성에 더 민감할 수 밖에 없는 계층이 경제적 약자이기 때문이다(여기엔 쇠퇴 산업의 노동자도 포함한다). 관건은 경제적 불안정성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손쉽게 이민자를 통해서 저임 노동구조를 강화하는 기존의 해결방안을 변경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즉 이민 문제와 국내 경제 문제(직접적으론 노동 구조)를 서로 분리할 수 있도록 인식을 교차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회에 합의할 것인가
기존 주식거래세를 대체하기로 한 금융투자소득세법 시행의 폐기, 이사의 책임에 주주 보호 책임을 포함하여 배당 경향을 강화하는 상법 개정안 그리고 기존 노동시간을 제한하도록 한 근로기준법을 우회하는 특별법 제정 등의 논란에서 기존 경제적 구조에 대한 정치적 해법이라는 측면에서의 정치적 균열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 부동산 활성화를 통한 토지 자산의 증가 혹은 가상 화폐 등을 통한 금융 자산의 증가와 같은 경제정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차이가 나는 것은 대통령 후보 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덴, 한국의 주요한 정치 세력들 간에 핵심적인 경제적 의제에 대한 입장 차이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상황은 광장의 극우정치가 ‘반 이재명’이라는 단순한 구호로 모일 수 있는 강력한 배경이다.
그런 점에서 기존 진보정당 운동의 한계 역시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해당 정당이 핵심적으로 어떤 정치적 균열을 만들고자 했는가라는 측면에서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기후정치의 관점에선 이번 광장은 기존 정치 구도가 만든 담론 구조가 얼마나 강력한 지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대통령만 바뀌는 사회가 아니라 대통령도 바뀌는 사회여야 한다는 목소리를 당위적이었지만 실질적이진 않았다. 그리고 균열은 추상적인 수준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닥쳐 있는 구체적인 현상에 대한 입장에서 나와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개헌론은 구체적인 현실적 논의와 병행해야지 이에 앞서는 선결 문제로 논의되어선 안된다. 극우 정치를 넘어서고 싶은가? 그 해법은 우리 사회가 광장정치를 어떻게 제도 정치로 만들 수 있는 가에 있다. 이 힘이 기존 정치 구도 내에서 절충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 구도를 만들어갈 수 있다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끝]
'기후정치의 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후정치의 시선]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로 (0) | 2025.02.14 |
---|---|
[기후정치의 시선] 대통령만 바꾸는 변화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0) | 2025.01.08 |
[기후정치의 시선] 선라이즈 무브먼트라는 프리즘으로 미국 대선 보기 (2) | 2024.12.06 |
[기후정치의 시선] 글로벌 기후운동은 지역 정치운동과 어떻게 연결되나? (5) | 2024.11.05 |
[기후정치의 시선] 저항으로서 대안을 생각하다 (4) | 2024.1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