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상철 필자님의 <기후정치의 시선>은 필자님의 직책이 사라지는 바람에(..) 이번 호에서 마무리됩니다. 마지막까지 지각을 하셨지만 그래도 펑크는 안 내신 필자님께 큰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편집자주] |
‘반동적’ 현실주의에 맞서야 한다
: 기후정치의 급진화를 위해
김상철
기후위기비상행동 기후정치위원회 위원장
기후위기비상행동 기후정치위원회는 9월 11일 제4차 운영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해산하기로 보고했다. 앞서 7월과 8월에 별도의 워크샵을 통해서 기후정치위원회의 활동에 대한 평가와 과제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3년 전 기후위기비상행동이 긴급하게 ‘기후정치‘라는 개념을 고민하게 되었던 맥락을 짚어 보고 과연 그런 필요가 실현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왔는가? 총선과 조기대선을 경유하면서 기후위기비상행동의 정치활동은 기후정치 기구가 있기 전과 후가 과연 달라졌는가? 나아가 한계가 있다면 어떤 활동을 통해서 이런 기후정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들이 두 차례의 워크샵으로 진행되었고 그 결과가 기후정치를 과업으로 하는 별도의 기구가 필요하지 않다는 결론이다.
실용과 현실이라는 폭력
이재명 정부는 11월 6일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수립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했다. 해당 공청회는 추석 연휴 직전 2주 동안 각 분야별 공청회를 진행하고 연휴 직후 종합공청회를 개최하려다 졸속 추진의 비판을 듣고 연기된 것이다. 실제로 9월 19일 금요일에 시작한 논의는 그 다음 주인 화, 수, 금에 3가지 분야의 공청회를 진행하고 바로 다음 주 화, 목으로 전력, 수송, 산업, 건물, 농축산, 흡수원, 순환경제에 대한 감축목표 논의를 마무리했다. 명목은 ‘대국민 공개 논의’라고 하지만 사전 일정이 제대로 공개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개별 공청회 진행 역시 미진했다. 이를테면 수송분야 공청회는 9월 24일(수)에 경기도 광명에 위치한 기아차 공장에서 오전 9시에 진행되었다. 모든 공청회가 일반 국민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낮 시간에 개최되었지만 오전 9시라는 일정은 사실상 형식만 공개였지 상식적인 공청회라 보기 힘들다. 특히 모든 주제의 공청회에는 시민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는 절차 역시 없었다. 현행 <행정절차법>에서는 공청회를 개최하기 위해서는 최소 14일 전까지 공고해야 하고(현재는 21일 공고의 경우 기준을 충족했지만, 변경 공고는 9일에 불과하다), 이와 병행하여 온라인공청회를 개최할 경우에는 누근든지 의견을 제출하거나 제출된 의견 등에 대한 토론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9월24일에 진행된 수송분야 공청회에 제출된 정부안은 50년에 가까워질수록 감축량이 많아지는 경로(48% 감축안), 일정하게 감축하는 경로(53% 감축안), IPCC가 제안한 경로(61% 감축안), 전지구적 탄소예산을 고려한 경로(65% 감축안)을 제시하면서도 별다른 수단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런데 11월 6일 공청회 당일에 공개된 정부안은 갑자기 50%를 최저선으로 하고 60%를 상한선으로 하는 구간 형태의 감축목표를 제시했다. 의무의 부과에서 상한선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최저선이 사실상 상한선이 될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이에 대한 정부측의 설명은 “무리한 목표 설정보다는 현실성있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는 변명이다. 정부는 2050년 1.5도씨 목표 달성을 위한 과학적 근거를 외면하고 당장 해야될 책임을 현실성이라는 이유로 회피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산업측 대표자는 한술 더 떴다. 사업자단체에서 나온 토론자는 트럼프의 등장을 언급하면서 IPCC 중심의 국제적 기준을 맞추기 보다는 트럼프가 주도하는 국제질서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실용적인 기업의 목표라는 점을 강조했다. 즉 어차피 미국이 빠진 국제감축노력은 의미가 없는데 한국이 구태여 강박적으로 해당 목표를 따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철강협회에서 나온 토론자는 여기서 한술 더 떴다. 감축목표가 높게 설정되면 생산량을 줄일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온실가스를 줄이면 되는데, 현재로선 그에 대한 비용보다 차라리 적게 생산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 철강산업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현실주의라는 비현실적 대안
철강업계의 이야기는 이후 토론 과정에서 손쉽게 반박되었다. 2021년 2030 온실가스감축안 설정 당시 포스코는 2032년이 되어야 수소 방식을 적용한 제철기술이 상용화될 것이기 때문에 당장은 기준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런 이유로 철강업계는 수천억 원에 달하는 재정지원을 받아 기술개발에 나섰고 탄소배출권에 대한 양해를 통해서 간접적인 이익을 보장받기도 했다. 토론자는 과연 산업계는 과거의 약속 중에서 무엇을 이행했는지 물었다. 2032년이면 개발될 것이라는 신기술 완료시기는 2035년 목표의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선 2037년으로 미뤄졌다. 산업계가 말하는 현실주의라는 것은 무능력에 대한 다른 표현이고 실용적 목표라는 말은 산업의 이익 추구를 위해 온실가스 감축 목표 따윈 후순위로 둘 수 있다는 그들의 실용적 목표에 다름 아니었다.
문제는 다른 영역에서도 현실성 때문에 설정했다는 목표가 외려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송 부문을 놓고 보면 기존 2030 감축계획과 비교해서 내연차에 대한 규제가 주요하게 언급되고 있지만, 이는 전체 차량 중 무공해차 등록대수로 잡은 지표 상의 목표에 불과했다. 기존 계획에 따른 수송부문 감축목표는 2018년 대비 2030년에 37.8%를 줄이는 것으로 37백만톤에 해당한다. 이를 매년 균등하게 줄인다고 가정하면 연간 감축량은 3.08백만톤 씩 줄어야 하고 2024년 기준으로 18.48백만톤이 줄어 70백만톤 수준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2024년 수송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97.5백만톤으로 2018년 기준으로 1.3% 만이 감소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가장 낮은 48% 감축목표를 하더라도 현재보다 전기차 공급이 30% 늘어야 한다. 기존 계획에는 친환경차를 2030년까지 450만대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2024년 기준 누적공급량은 85만대에 불과하다. 올해를 포함해서 매년 60만대 씩 공급해야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 사실상 실패한 것이다. 하지만 2035계획에는 반복적으로 전기차를 핵심 수단으로 하는 친환경차 공급계획이 반영되었다. 개선한다는 내용은 전기배터리 폭발로 인한 전기차 공포가 완화되어야 한다는, 다소 어이없는 제안이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과거에 지키지도 못했던 목표를 장래의 계획에 복사하여 붙이듯 반복하는 것이 가장 비현실적이고 공상적이다.
급진의 가능성
전 세계 기후도시들의 연합체인 C40가 내놓은 2024년 보고서를 보면, 남미의 가입도시들은 불과 3년 만에 대중교통 수단분담률을 50% 이상 달성했다고 전한다. 이 과정에선 단순히 대중교통수단에 대한 강조 뿐만 아니라 과감한 대중교통요금 정책 그리고 혼잡통행료나 시내 주차장 요금의 인상 등의 정책이 효과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수송분야의 효과적 방법은 전기차를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교통수단의 우선순위에 영향을 미치는 수요’관리’를 하는 것이다. 수송 부문의 수요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앙정부의 교통정책 권한을 실제 교통현장으로 이관하는 것이다. 특히 현재와 같이 어설픈 위임 방식으로 중간에 국토교통부가 끼어들 수 있는 뒷문을 만들어 놓는 방식이 아니라 재원과 권한을 완전히 이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1990년대와 크게 다르지 않게 사용하는 교통시설특별회계 분배 구조를 두고 새로운 정책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전히 교통시설특별회계의 절반을 도로 신설과 관리에 사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교통요금에 대한 지원이 부족해 지속적으로 인상되는 상화에서 어떻게 대중교통 이용이 활성화되겠는가?
그런 점에서 권한의 이양은 단순히 지방자치단체라는 기관으로의 이관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방교통공사와 같은 대중교통기관과 교통수단의 이용자인 시민들로 확장되어야 한다. 우리 동네, 우리 도시의 교통변화는 행정이 주도하는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주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 지역에서 자동차 없는 도로를 만든다고 할 때 현재 제도에선 주민들이 추진할 근거가 전혀 없다. 대중교통전용지구에 대한 지정이나, 특별대책구역 지정은 어떤가? 이 과정에 전혀 시민들의 제안이나 공청회 나아가 주민투표 등의 경로가 제시되지 않는다. 왜 정부의 무능이 곧 기후위기의 재앙이 되도록 하는가? 시민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지 않나?
이와 같은 제안이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에 비현실적일 것이라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미 과거에 실패한 방식을 별다른 혁신도 없이 반복하는 것이 이제까지 하지 않았던 다양한 정책실험을 준비하고 시행하는 것보다 훨씬 비현실적이고 생각한다. 즉 현실성이라는 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라는 가능성의 영역이라면 앞으로 실패할 것이 분명한 과거의 익숙한 경로보다는 조금이라도 다른 결과의 가능성이 있는 전혀 해보지 않은 시도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급진이라면 우리는 더 많은 가능성을 위해서라도 급진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기후정치를 위해
기후위기비상행동 기후정치위원회가 해산하기로 했다는 것은 아직은 독자적인 정치집단으로서 기후운동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실패라 하더라도 현재의 우리 조건을 살펴보는데 중요한 진단을 남겼다. 우리는 새로운 약속을 하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우리가 우리의 미래에 위한 약속을 다시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때에는 현재의 반동적 현실주의를 넘어서는, 낙관적 모험주의를 택하길 기대한다. 기후정치도 그리고 여전히 제자리를 돌고 있는 진보정치도. 그동안 기후정치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함께 고민해준 독자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변하지 않는 자리에서 다른 목소리로 만나길 기대해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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