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드’이야기(1) : 고대에는 누가 ‘누드’의 모델이 될 수 있었을까?
이충열(화사)
여성주의 현대미술가
누드’를 떠올리면 어떤 몸이 떠오르시나요? 남성의 몸인가요, 여성의 몸인가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몸인가요, 특수한 몸인가요?
자, 이제 드디어 ‘누드’에 대해 다뤄보려 합니다. 과거에는 권력자들이 미술을 통해 인간에 대한 기준과 이상을 만들어서 다양한 사람들을 억압해왔다면, 현대에는 과거의 기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미디어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인 평범한 이들이 스스로 적극적인 차별과 혐오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저는 인간의 몸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과 우리가 다른 이의 몸을 평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데에 ‘누드’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몇 회에 걸쳐 ‘누드’ 이야기를 해보려 해요.
고대 그리스 시대의 누드는 남성의 몸이었습니다. 남성의 몸이 바로 ‘인간’의 몸이라고 생각했고, 남성의 몸만이 신성하고 이상적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지요. 당시, 남성의 운동경기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근육질의 탄탄한 몸은 엄청나게 주목받고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고 해요. 당시 길에서 완벽한 몸매의 남자를 보면 “당신은 신이 아닌가요!”라는 감탄사를 보냈다고 하니, 어떤 분위기일지 상상이 가시겠죠? 당시에는 영양 섭취도 충분하지 않고, 의료도 발달하지 않아서 현대보다 더 다양한 몸이 존재했을 것입니다.

조각가 미론이 기원전 5세기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원반을 던지는 사람>은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조각입니다. 아테네에서 활동했던 미론은 신처럼 완벽한 몸매를 가진 운동선수 조각상으로 유명한데, 청동을 주로 사용했다고 해요. 고대의 청동 조각상은 새로운 조각을 만들거나 전쟁 시 무기를 만들기 위해 녹여 썼기 때문에 원본이 남지 않았지만, 다른 조각가들이 부유층의 수요에 맞춰서 유명한 조각의 복제품을 만들어두었기 때문에 우리가 볼 수 있게 된 것이에요.
원반을 던지기 위해 몸을 비틀고 있는 모습으로 조각한 이유는, 해부학적으로 완벽한 인물과 운동감을 표현하고 싶었던 당대 조각가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요. 서양미술에서 ‘누드’라는 장르는 단순히 벌거벗은 몸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부터 인간의 육체의 신성함과 미학적 이상을 표현해온 예술 형식을 뜻합니다. 『서양미술의 꽃, 누드』를 쓴 윤익영에 의하면, “누드는 현실 너머의 이상적 아름다움을 갖추어야 한다”는 전통이 고대 고리스 시대에 이미 만들어졌다고 해요.

비슷한 시기에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창을 든 사람> 역시 청동상이었기 때문에 로마 시대의 대리석 복제품만 남았지만, 고대 그리스에 중시했던 균형적 자세와 고전적 사실주의를 잘 보여줍니다. 미론의 <원반을 던지는 사람>처럼 큰 동세를 보이지 않지만, <창을 든 사람>역시 균형 잡힌 근육질의 몸매를 통해 운동 능력이 뛰어난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정적인 자세에서 막 앞으로 내딛은 순간을 포착하고 있는 이 조각은 그리스인들이 추구했던 조화와 아름다움의 완벽한 시각적 표현이라고 칭송을 받으며 고대 조각에 큰 영향을 주었답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운동선수 남성의 울퉁불퉁한 근육을 자세히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 ‘아름다움’을 소유할 수 있었던 이는 엄청난 부를 소유한 귀족 남성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은 남성이 사춘기를 벗어나지 않은 소년과 연애를 하는 것이 ‘엘리트 교육’의 일환이었다고 해요. 성인 엘리트 남성이 미래의 엘리트 남성과 사랑을 나누면서 그들의 문화와 사상을 전수한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미켈란젤로가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의 소년 시기 모습을 조각한 <다비드>를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도 있어요. 게다가 미켈란젤로는 여성의 인체도 고대 그리스에서 이상적이라 여겼던 근육질 남성의 몸처럼 묘사했는데, 동성애자였지만 기독교 윤리 속에서 자신의 성향을 괴로워하며 성적 실천 대신 아름다운 남성 육체를 묘사했다는 설이 유력하거든요. 물론 <다비드>의 높은 해부학적 완성도나 거대한 규모, 제작 배경과 이후의 에피소드 등이 잘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미술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이겠지만요.

다시 고대로 돌아가면,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그리스에서 여성의 인체는 거의 옷으로 가려져 있었답니다. 여성의 몸은 불완전하고 아름답다고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에 누드로 표현하기보다 옷의 주름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조각가의 실력을 증명하는 데에 쓰이곤 했어요. 그래서 기원전 4세기에 프락시텔레스가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를 조각했을 때 충격적인 사건으로 여겨졌다고 해요.

실물 크기의 여성 누드를 최초로 조각한 프락시텔레스는 케피소도토스 대왕의 아들로 알려져 있어요. 프락시텔레스는 옷을 입은 아프로디테와 옷을 입지 않은 아프로디테를 조각했는데, 나체의 조각을 크니도스 사람들이 구입해서 이 조각에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고요. 의식 목욕을 준비하고 있는 여신의 모습을 묘사한 이 조각은 크니도스에 있는 아프로디테 신전에 주재 상으로 세워졌는데, 최초의 남성 누드상(쿠로스)가 등장한 지 거의 3세기 후에서야 나타난 것이랍니다.
대왕의 아들이라는 지위가 전통을 깰 수 있는 힘이 되었을까요? 조각가들이 여성의 옷을 점점 얇게 만들어 가던 시기이기는 하지만요. 프락시텔레스는 최초로 나체의 여성을 조각했지만, 정적인 자세로 자신의 손으로 음부를 가리게 했습니다. 그가 조각한 <휴식하는 사티로스>가 당당하고 편하게 자신의 전신을 드러내고 있는 것과 대조가 되지요. 똑같이 옷을 입지 않은 상태에서 남성은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반면, 여성은 부끄러운 둣 성기를 손으로 가리고 주위를 살피는 모습으로 재현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고대에는 신화 속 주인공을 조각으로 만들어 신전에 모시거나, 권력자를 조각해 기념하거나, ‘아름다운’ 남성의 육체를 조각했습니다. 플라톤의 주장대로 여성은 열등하고 아이 같은 본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조각이라는 엄청난 기술과 자원과 시간과 노력을 겨우 여성을 만드는 데에 투여하기 아깝고, 그래서 여성은 여신쯤 되어야 만들어 신전에 놓는 것이었지요.
그러면 현대를 사는 우리가 쉽게 떠올리듯, 누드의 모델을 여성으로 떠올리게 된 것에는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을까요? 여성 누드와 남성 누드의 재현방식에는 어떤 차이가 있고, 그 효과는 무엇일까요? 다음 편에서 본격적으로 다룰 테니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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