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웹진 [e-품]의 <PRISM> 꼭지는 노동과 이어지는 다양한 사회운동과 관련한 내용을 싣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배달의민족' 인수합병에 관한 글을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의 박정환 정책국장님께 받았습니다. 플랫폼노동자 조직사업에 바쁘신 와중에도 시간내서 글을 써주신 박정환 국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편집자주] |
‘우아한 형제들’은 끝까지 우아할 수 있을까
박정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정책국장
‘배달의 민족’은 한국 배달앱 시장의 독보적인 존재다. 국내 배달앱 총 사용자 수는 중복 사용자를 제외하고 약 1,110만 명으로 집계되는데, 그 중 약 54%에 달하는 6백만여 명이 ‘배달의 민족’을 사용한다. 업계 2위로 알려진 ‘요기요’에 비해서 2배 이상의 점유율이다.
이것을 운영하는 ‘우아한 형제들’이 독일 배달앱 회사 딜리버리히어로(이하 DH)에 팔렸다. DH는 우아한 형제들의 기업 가치를 40억 달러(약 4조7500억 원)로 평가하여 국내외 투자자 지분 87%를 인수했다. 남은 13%는 김봉진 대표 등 우아한 형제들 경영진이 보유했으며 추후 DH 본사 지분으로 전환된다.
DH는 국내에서 요기요와 배달통을 운영하는 회사로, 세계 최대의 배달네트워크를 장악하고 있는 기업이다. 그런 DH가 국내 배달앱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서 2018년 3조 원에 우아한 형제들을 인수하려 했다가 거절당했고, 이후 1000억 원의 마케팅 비용을 쏟아 부었음에도 시장 점유율이 변하지 않자 1조7천억 원 이상을 높여 불러 기어이 인수에 성공했다. 이번 인수합병으로 우아한 형제들에게 초기 자금 3억 원을 출자했던 벤처캐피털(VC) 본엔젤스는 2,993억 원(지분 6.3%)의 가치를 인정받아 8년 만에 1,000배 가까운 투자 수익을 거뒀고, 네이버 역시 2년 전 350억 원을 투자해 5배가 넘는 1,800억 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진다.
출시 초반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는 애국주의 마케팅으로 성장한 토종 배달앱이 독일 회사에 인수된 것을 두고 국내 여론은 ‘배달의 민족이 게르만족이 되었다’며 매우 냉소적이다. 소상공인과 배민라이더의 피땀으로 성장한 기업의 이익은 모두 투자자들과 경영진에게 돌아가고, 국내 배달앱 시장의 독과점은 소상공인과 소비자 피해 및 배달노동자의 노동조건 변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30일, DH의 우아한 형제들 인수합병에 따른 기업결합 심사 신청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접수되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이하 서비스연맹)은 지난 1월 6일, 배달노동자 조합원들, 소상공인 단체와 함께 이 기업결합에 따른 문제들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비스연맹은 인수합병 전부터 우아한 형제들(배달의 민족)과 배민라이더스를 운영하는 자회사 우아한 청년들에게 정책협의를 제안하여 진행했다. 작년 9월, 크라우드 소싱 형태인 배민커넥터가 도입되면서 기존 배민라이더스의 박탈감이 심각해졌다. 크라우드 소싱이자 플랫폼 노동인 배민커넥터는 미숙련 일반인 배송이고 부업이 도입 취지였는데, 모집 인원을 늘리려고 전업인 배민라이더보다 건당 1.3~1.5배 이상 높은 배달료를 책정하고 신규 커넥터에게는 우선배차를 하고 자전거나 전통킥보드로 배달하는 커넥터에게는 가까운 거리의 일명 꿀콜을 배정했다. 이에 전업인 커넥터가 늘어났고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자토바이(자전거로 커넥터 등록을 하고 실제로는 오토바이로 자전거에게 배정되는 가까운 배달업무를 다량 수행) 등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행위를 통칭하는 어뷰징이 늘어났다.
우아한 청년들은 지난 10일, 공지사항으로 배민커넥터를 주20시간으로 배민라이더스는 주60시간으로 배달수행시간을 제한하겠다는 골자의 ‘커넥터/라이더의 과로 예방을 위한 20/60 정책’을 발표했다. 서비스연맹이 제기한 역차별 문제에 대한 응답으로 ‘배민라이더스는 전업, 배민커넥터는 부업’이라는 주장을 일부 수용하고 배달노동자의 장시간 노동 문제에 대한 고민이 있다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교섭이 시작된 상황에서 이런 식의 일방적인 노동조건 변경은 황당한 일이다.
일방적인 노동조건 변경이 마치 플랫폼 기업의 특성인 것처럼 얘기하지만, 이는 노사관계의 기본인 노사대등의 원칙조차 인지가 없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노동시간 단축에 반대할 이유는 없으나 소득보전 대책 없는 노동시간 단축은 빛 좋은 개살구다. 더구나 시간제한이란 방식은 가맹점과 소비자들에게 일반인 배송인 배민커넥터의 배달서비스 품질에 대한 불만이 많이 나와 그것을 잠재우기 위해서 사측이 이미 만지작거리던 가장 손쉬운 카드 중 하나였다. 이를 ‘과로 예방’이란 포장지를 씌워 이미지 관리를 하는 모습에 실소가 나온다.
<조선일보>나 경제지를 이용한 언론플레이까지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아 실제 교섭 국면은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런 모습은 노사교섭이 시작되면서 플랫폼 기업이 스스로 얘기하는 혁신과는 인연이 없는 대기업 인사노무 담당자 출신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과거 <무한도전>에서 비춰졌던 우아한 형제들의 회사 문화는 다른 회사에 비하면서 상대적으로 우아해 보였지만, 그것은 본사에 일하는 노동자에 한정된 것에 불과하다. 현장에서 관제의 강제배차, 무례한 가맹점 등의 갑질에 시달리고 있는 배달노동자에게는 먼 나라 얘기다.
과연 우아한 형제들과 우아한 청년들이 노사관계에서도 끝까지 우아할 수 있을지 지켜봐주시고, 자신의 처지를 바꾸기 위한 배달노동자와 연대해 주시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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