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웹진 [e-품]의 <PRISM> 꼭지는 노동과 이어지는 다양한 사회운동과 관련한 내용을 싣습니다. 이번에는 배우 겸 가수 설리씨의 죽음 이후 이야기되는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찬/반 입장을 각각 싣습니다. 반대 입장은 (클릭하시면)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반론과 기고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품] 편집팀(nodonged@gmail.com) 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이지 않다
이장규
노동·정치·사람 운영위원
배우이며 가수였던 설리 씨의 죽음을 계기로, 인터넷 사이트에서의 악성댓글(악플)의 피해에 대한 논의가 다시 이루어지고 있다. 설리 씨는 그간 각종 악플의 피해에 시달렸던 대표적인 연예인 중 한 명이었으며, 그의 죽음에는 이런 악플의 피해가 상당정도 작용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악플의 심각한 피해를 이대로 방치하자고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실제로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따지기 시작하면 의견은 크게 갈린다. 특히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진보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일수록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며, 반체제적인 댓글에 대한 탄압 등 악용의 소지도 크다는 것이 주 이유이다.
게다가 보수 내지 개혁주의자들 역시 인터넷 실명제에는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인터넷 실명제는 예전에 이미 도입된 적이 있었으나, 2012년 8월에 헌법재판소는 이를 위헌으로 결정했다. 당시의 헌재 구성은 전혀 진보적이지 않았고 보수적인 대법관들이 많았음에도 헌재는 8명 전원일치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다만 이는 민간기업이 운영하는 사이트에 대한 것이고, 공공기관의 필요에 따른 본인확인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일반적인 시기의 인터넷 실명제와는 별도로, 선거운동 기간 중에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는 것은 선거의 공정성을 위해 필요하다면서 이에 대해서는 2015년 7월에 헌재의 합헌 결정이 있었다. 즉 현재도 선거운동 기간 중에는 각종 인터넷 언론사에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실명 확인이 필요한데, 실명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에 대해서도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전면적인 실명제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재의 지나친 악플에 대해서는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유지상주의자가 아니라, 사회 전체에 대한 공공적 관점에서의 규제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좌파 내지 진보주의자라면 더욱 그러하다. 애초에 좌파는 개인의 자유를 무조건 옹호하는 이념이 아니다. 재벌의 횡포에 대한 각종 규제나 노동자 권리 강화를 위한 각종 규제, 공공성 강화와 관련된 각종 규제 등을 앞장서서 주장해온 사람들이 좌파 아닌가? 그럼에도 누군가를 죽음으로까지 몰아붙일 수 있는 인터넷 악플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제를 하지 말자고 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다.
물론 그 규제는 실명제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가능하다고 반박할 수 있다. 사실 지금도 심각한 악플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고소 등에 따라 사후처벌이 가능하다. 따라서 사후처벌을 강화하거나 차별금지법 내지 혐오표현금지법을 도입하여 처벌대상을 확대하는 등의 사후규제로도 얼마든지 악플의 피해를 규제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또는 반대로 아예 댓글란을 없애버림으로써 악플의 가능성 자체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고도 주장할 수 있다. 실제로 설리 씨 사건 이후로 포털사이트 ‘다음’은 연예뉴스에 대해서는 아예 댓글 자체를 폐지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방법들이 그리 현명한 대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선 댓글 자체를 폐지하는 대안을 생각해보자. 이건 가장 확실한 방법이긴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원천적인 차단 아닌가? 악플이 아니라 해당 기사에 대한 의견이나 피드백 등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임에도,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인터넷 실명제는 반대하면서 댓글 폐지에는 찬성하거나 묵인한다면 이 역시 앞뒤가 안 맞다.
또다른 대안인 사후처벌 강화를 생각해보자. 이는 얼핏 괜찮은 해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여러 가지 난점이 있다. 우선 처벌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많다. 악플이라지만, 누가 보아도 처벌 대상인 아주 심각한 악플이 아닌 경우 이를 처벌해야 하는지 아닌지가 애매할 수 있다. 그렇다고 심각하지 않은 악플은 처벌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애매하다. 피해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심각한 악플 한두개보다도 심각하지 않을지라도 숱한 악플들이 계속 반복될 때 더 큰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것을 사법부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안 그래도 우리 사회는 서로 협의해서 함께 풀어나가야 할 각종 문제들을 법의 심판에 맡겨버리는 ‘사법화’가 심한 편이다. 그런 상태에서 이 댓글이 악플인지 아닌지 처벌해야 하는지 아닌지를 일일이 법의 심판에 맡기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게다가 수사상의 곤란함도 있다. 아이피 주소 등 각종 수사기법을 동원한다지만, 여전히 누가 악플을 달았는지가 확인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인터넷 댓글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것이다. 나는 인터넷 댓글 특히 누구나 볼 수 있는 댓글은 개인적인 공간이 아니라 그 자체로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직접 만나서 면전에서 하지 못할 이야기를 익명의 댓글이라는 이유로 허용하는 것은, 사람과의 관계 즉 사회를 약화시키고 개인 그것도 익명의 개인의 자유를 절대시하는 것이며 이는 자본주의적 인간형을 강화시킬 우려가 크다고 생각한다.
악플만이 아니라 혐오나 차별표현 역시 익명의 인터넷 공간에서 훨씬 심하지 않은가. 지금은 이런 표현들도 제대로 처벌이 안 되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것들을 전부 다 사후에나 처벌하도록 하는 것이 과연 문제를 실제로 완화시키는 좋은 방법일까. 애초에 그런 표현을 익명에 기대어 마음껏 내뱉지 못하도록 제어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실명제를 도입할 경우, 정치적인 탄압에 악용될 가능성을 우려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사후처벌을 인정하는 이상 지금도 가능하다. 즉 이는 국가보안법의 폐지 및 차별이나 혐오발언이 아닌 정치적인 비판을 이유로 한 명예훼손죄 적용의 폐지 등 악용가능성이 있는 처벌조항 자체를 없애야 하는 별도의 문제이다. 그렇다고 어떤 악플에 대해서도 사후처벌도 하지 말자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다만 전면적이고 지속적인 실명제에는 필자도 부정적이다. 실명을 댓글에 그대로 노출시키는 것은 그 사람이 소수자일 경우 오히려 다른 이용자로부터 혐오나 차별의 대상이 되거나 아웃팅 등 각종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보안법이나 정치적인 비판을 이유로 한 명예훼손죄의 적용 우려 등도 해당 법조문이 폐지되지 않은 이상 가능성은 존재한다. 따라서 댓글을 쓸 때만 실명확인을 하되, 실제 댓글은 필명으로 표시되는 것을 허용해야 하며, 해당 댓글과 관련된 수사가 이루어질 때에는 수색영장을 미리 발부받고 당사자에게도 영장 발부 사실을 알리도록 해야 한다. 그럴 경우 도주의 우려가 있음을 걱정할 수 있는데, 자신의 일상생활을 팽개치고 도주할 정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악플을 달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악플을 달기 전에 스스로를 억제할 수 있도록 미리 예방하는 것이 아닐까.
개인의 자유나 권리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단지 악플만이 아니라 최근의 한국사회는 자신의 자유나 권리만이 절대적인 것처럼 주장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A는 A대로 B는 B대로 자신의 자유나 권리는 무조건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자유와 권리는 타인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것이며 사회적 논의 속에서 합의되고 규정되는 것이지 애초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게 개인주의자나 자유주의자가 아닌 좌파의 기본적인 시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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