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가 존경해 마지않는 이점진 동지의 두 번째 글이 올라왔습니다! 글에서 묘사되는 "지부"는 현재 이점진 동지가 일하는 교육공무직본부 세종지부와는 다른 곳이니 헷갈리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편집자주] |
지부장이 조합비 영수증을 들고 냅다 튀었다?!
이점진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세종지부 조직부장
첫 출근 날부터 시작된 지부장과의 미묘한 신경전 ~~~~
지부장은 특유의 압쌉한 눈을 부릅뜨고 ‘너 뭔가 하나만 걸려라 확 자를거여’ 하며 지켜 보고 나는 늦은 나이에 시작한 실무 일이 익숙치 않아 낑낑거리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어느날........
지부장이 봉투 하나를 툭 던진다. 몇 개월동안 모아놓은 조합비를 사용한 영수증들, 항목별로 분류하며 한 장씩 한 장씩 이면지에 정성껏 풀칠하며 붙였다.
가만히 쳐다보던 지부장이 “그걸 왜 그렇게 해요? 그냥 엑셀로 정리만 하세요”
잉? 이게 뭔 말여? 동네 슈퍼 장부도 아니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
“조합비는 회계 규정에 맞게 항목별로 분류해서 정리해야하는데 아직 노조에 규정이 없으니 상급단체인 공공운수노조 규정에 따르고 차후에 회계감사를 해야합니다“ 라고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당연한거 아님?
지부장은 당황한 표정으로 “ 나중에 세무서에 맡길거니 그냥 엑셀 작업만 해서 금액만 정리하면 됩니다”라고 소리치며 지방 출장 간다며 서둘러 사무실을 나갔다
조합비 사용내역을 회계감사도 안하고 세무서에 맡긴다고? 이건 또 뭔 개소리여? 피같은 조합비를? 미친거 아녀?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찬찬히 영수증을 살펴보는데.........
햐........아 이 미친 똘아이 멍멍이 자식같은.....
조합비를 그냥 본인 용돈인냥 여기저기 사정없이 막 뿌리고 다녔네 헐~
단란주점 76만원, 단골집인 듯 보이는 한우식당 20여만원짜리 몇장, 모텔(요건 지역에 있는 조합원 1박2일 출장으로 확인됨) 노래방등등 미친 영수증들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한시간쯤 지났을까? 지방 출장 간다던 지부장이 갑자기 사무실로 후다닥 뛰어 들었다
깜짝 놀라서 쳐다보는 순간 책상위에 있던 영수증들을 확 빼았더니 그대로 들고 냅다 튀네?
삽시간에 일어난 일이라 얼떨결에 멍~~하니 쳐다 볼 수밖에 없었다
ㅎㅎㅎ 그래도 뭐 괜찮아 괜찮아 영수증을 몽땅 갖고 튀어도 상관없어~ (내가 꽤 치밀한 인간형이여)
난 이미 니눔이 영수증을 주는 그 순간에 쭈~욱 훝어보았고 심각한 상황임을 바로 인지했거덩.
굵직허니 문제있는(물론 대부분 문제가 있지만) 영수증은 복사하고, 핸드폰으로도 팍팍 찍었지.
그런후에 안전성 확보를 위해 제3자에게 전~부 잽싸게 신속하게 전송했단다.
내가 보관하는것도 왠지 불안했거든. (한시간은 꽤 긴 시간이여)
덕분에 영수증 탈취라는 죄목 하나 추가요~!!!
영수증 탈취 사건이후 지부장과 뜻(?)을 같이 하는 몇몇 간부들이 노골적으로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간부들이 모여 있는 단체톡방에서 지부장의 지시에 따르라, 일을 제대로 하라는 등 갑질을 시작했고 지부장은 노조간부들에게 내가 공공운수노조에서 내려 꽂은 프락치라는 말까지 했다. 내가 젤 싫어하는 말이 프락치 프락치!!!! 출근한지 얼마되지도 않아 상황 판단이 덜 되었고, 분란을 일으키 싫어 그냥 네네 알겠습니다 라고 영혼없는 대답을 하며 묵묵히, 그리고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사측과의 교섭이 시작되었다
지부장은 늘 큼지막한 가방에 뭔가 비밀스런 서류를 본인의 차 트렁크에 가지고 다닌다. 그 가방을 교섭때만 들고 가서 책상에 올려놓고 사측을 협박한다. 가방을 보여주며 “가방 까? 까? 깔까?라는 말만 무한 반복.......
하지만 문제는 그 가방안의 내용을 조합내에서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 조합원들은 물론이고 운영위원들에게조차도 숨겼다. 그러면서 서류를 공개하는 순간 회사는 망한다고 그러니 노조의 요구를 다 들어줄거라는 헛된 희망으로 조합원들을 현혹하며 자기만 믿고 따르라고 했다. 하지만 사측에서는 협박내용을 알고 있는 느낌이였다
뻔하지 않은가? 자회사를 만들면서 회계상 이중 장부를 만들었을것이고 퇴직금 처리과정에서 편법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에서는 노조가 생기면 골치 아플 것을 예상하고 이런 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이미 마련 했을것이고 근거를 만들어 꼬리 자르기하고 만반의 준비를 했을 것이다. 당연히 사측에 대한 협박은 먹히지 않았고 결과가 뻔히 보이는데도 막다른 골목에 몰린 지부장은 파업을 선언했다.
계획도 없고 준비도 안된 파업 투쟁은 첫날부터 혼란스러웠고 막막했다. 나는 조합원들에게 머리띠 매는법부터 시작해서 투쟁가와 율동을 알려주고 선전전을 함께하며 평균나이 50대후반인 남성노동자들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파업기간동안 지부장은 사무실에서 전략회의(?) 한다고 저녁집회때 잠깐씩 얼굴만 내밀었고 조합원들의 불만은 점점 쌓여만 갔다
준비되지 않은 5일간의 시한부 파업은 아무런 성과없이 조합원들에게 절망감만 남기며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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