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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꺼리] 좌충우돌 수영이 아빠 되기 _ (4) 으악! 봄이다!

 

으악! 봄이다!

 

조경석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서울 회원

 

  수영이가 걷기 시작하자 많은 사람이 지옥문 열렸다고 했다. 시도 때도 없이 나가자고 할거라고 했다. 육아 경험이 있는 모든(!)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때는 그러려니 했다. 막상 현실이 되니, 이건 상상 이상이다. 정말 지옥문이 열린 것 같다.

 

  아침밥을 먹자마자 전투가 시작된다. 처음엔 설거지하는 아빠 바지를 끌어당긴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현관을 가리키며 ~, ~!’ 칭얼거린다. ‘아빠 설거지하고 나가자라며 설득을 해보지만, 포기하지 않고 자기가 입을 옷과 신발을 아빠 앞에 쌓아두고 와선 시위를 한다. 이때 돌고래 소리가 난다. 아빠가 미적거리면, 다음 단계로 맨발로 현관문 앞에 서서 소리소리 지른다. 이땐 공습사이렌 소리가 난다. 아빠에 대한 단계별 대응체계를 갖추고 있다. 결국은 수영이가 이긴다. 사실은 나도 집 밖으로 나가고 싶다.

 

가자 양순아! 봄이 왔다!

 

  삑삑거리는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서면서부터 수영이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정말 환하게 웃는다. 엘리베이터까지 걸어가선 문 열라고 노크를 콩콩하고, 문이 열리면 조심조심 자연스럽게 탄다, 1층에 내리면 오늘은 어디를 가나?’ 계획하듯 주차장을 한 번 눈으로 둘러본다. 여기서 위층 할머니라도 만나게 되면, (이제 아빠에게는 하지 않는) 온갖 귀여움을 뿜어낸다. 반갑다고 꾸뻑 인사하고, 다음에 또 뵙자고 빠이 빠이도 한다. 위층 할머니 입에서 아이고! 이쁘다’,‘많이 껐네!’ 소리를 들으면 만족스러운 듯 혼자 물개 박수를 친다. 그리곤 짧은 다리로 난간을 붙잡고 뒤뚱뒤뚱 계단을 내려간다. 아스팔트 위에 서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레이스가 시작된다! 조그만 몸으로 양순이를 안고 무조건 앞으로 전진이다. 전진하다가도 갑자기 방향 바꿔서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닌다. 아빠는 그야말로 시종이 돼서 졸졸 뒤따른다.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안 된다. 동영상도 찍고, 사진도 찍어야 한다. 어디서 차가 오는지도 봐야 하고, 바닥이 움푹 파여서 내려앉은 곳도 찾아야 한다. 아빠는 정신없지만, 수영이는 나들이를 즐긴다. 가다가 개나리꽃도 만져보고, 땅에 떨어진 벚꽃 잎을 뚫어지게 보고, 지나가는 (타요를 닮은) 버스를 보면 아빠도 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나가봤자 주차장이고, 고작 30~40분이지만 수영이에겐 더없이 신나는 시간임은 틀림없다. 솔직히 어른들도 돗자리도 가지고 나와서 도시락 까먹고 싶은 계절 아닌가!

 

반갑다! 개나리 꽃아!

 

좋아하는 수영이 모습만 보면 맘껏 뛰어다니게 하고 싶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여전히 기세를 들어내고 있고, 무엇보다도 싱크대엔 설거지가 가득한데 마냥 나가 놀고만 있을 순 없다. ‘바람이 분다’, ‘날이 춥다등등 살살 꼬셔서 다시 집으로 가야 한다. 이때 수영이 할 줄 아는 말이 ~(아니)’ 밖에 없다. 백 가지 질문을 해도 한 가지 답변뿐이다. 어쩔 수 없다. 그냥 수영이를 안고 엘리베이터 앞까지 와야 한다. 그러면 절반은 성공이다. 엘리베이터에 있는 각종 숫자판으로 수영이 정신을 빼놓을 수 있다. 현관문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만 남는다. 수영이의 거친 바둥거림과 울음을 과감하게 감내해야 한다. 현관문 안으로 들어와서 협상해야 한다. 일단, 현관문이 닫히면 수영이도 다시 나가겠다는 것보다 뭘 얻어낼지 고민할 것이다. 내가 제시할 수 있는 패는 치즈나 요구르트 같은 간식 리스트와 수영이가 좋아하는 목욕이다. 간단하게 치즈로 끝나면 땡큐다. 그냥 주면 끝이다. 요구르트는 떠먹여 줘야 한다. 안 그러면 온 집안이 요구르트 마사지를 한다. 다른 지옥을 맛볼 수 있다. 목욕이면 다시 노가다 시작이다. 땀 좀 흘리겠지만 욕실 안에서 바둥거리니 바깥보다는 안전하다. ~!

 

정말 무서운 사실은 따로 있다. 지금이야 아장아장 걷고, 뒤뚱뒤뚱 뛰어다니는 수준이다. 빠른 걸음으로 수영이를 따라잡을 수 있다. 힘들어도 감당된다. 그런데 밖으로 나갈 때마다 다음 지옥문이 열릴 것이 보인다. 퀵보드! 수영이 또래부터 초등학생까지! 동네 모든 아이가 퀵보드를 타고 다닌다. 놀이터에 가면 한쪽 가득 퀵보드가 주차돼있다. 11퀵보드!!! 수영이도 지나가는 퀵보드를 허투루 보지 않는다. 마치 다음엔 저거야!’ 다짐하듯이 빤히 쳐다본다. 언젠가는 현실이 되겠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그때는 뛰어다녀야 하는데 아빠는 점점 기운이 떨어진다! 어쩌지?! 육아라는 게 시간이 지날수록 쉬워지고,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저건 뭐지? 할머니한테 사 달라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