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날
조경석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서울 회원
“저~ 처남! 기차가 없는데요!”
“네? 기차놀이세트에 기차가 없다고요?”
내 말에 처남은 마침 마시던 소주를 뿜을 뻔했다. 모두가 이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인지 확인하기 위해 기차놀이세트 상자 앞으로 모였다. 아무리 봐도 기차놀이세트가 분명하다. 상자에는 기차, 레일과 기차역 심지어 건널목까지 그려져 있다. 어른 지갑 속 현금을 쏙 빼가겠다는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근데 왜? 기차가 없지? 어른들은 멘붕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무심하게 연어회를 흡입하고 있던 조카가 한마디 했다.
“레일놀이세트라고 쓰여 있는데요. 그리고 저기 옆에 ‘기차 별매’라고 쓰여 있고요”
그제야 우리 모두 일제히 조카가 가리키는 곳을 시선이 집중됐다. 상자 아래 작은 글씨로 ‘기차 별매’라고 쓰여 있었다. 네 글자를 확인하고선 어른들 입에선 거친 언어가 쏟아졌다. 상황파악은 됐지만, 너무나 허탈한 결과였다. 근데 어른들은 왜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는 레일놀이세트를 기차놀이세트로 읽은 거지? 모를 일이다.
사실 처남은 연 이틀째 우리 집을 방문한 것이다. 애초 어머님과 아버님 모시고 할 가족모임이 하루 앞당겨지면서, 주문한 수영이 선물이 도착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뒤늦게 도착한 선물을 처남이 직접 들고 온 것이다. 그렇게 애를 써서 준비하고, 가져온 선물이 기차 없는 기차놀이세트라니! 처남이 가장 황당했을 거다. 그러나 나와 지니는 기차까지 책임지라고 매몰차게 처남을 밀어붙였다. 물론 당사자는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리고 선물을 주기 위해 연 이틀째 방문하고 있음과 완구회사의 상술에 속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서로 입장차이로 불꽃 튀는 논쟁이 시작되려는 순간, 역시 연어회를 입안 가득히 흡입하던 조카가 한마디 했다. ‘외삼촌이 그러면 안 되지. 약속했으면 책임져야지!’. 믿었던 아들이 배신하자 결국 ‘기차까지 책임진다’라는 처남의 선언이 나왔다.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됐다. 어른들은 소주잔을 들고! 조카는 초장 가득 연어회를 들고! 건배! 혼란과 논쟁 끝!
그리고 이틀이 지난 후, 기차와 함께 처남 가족이 다시 우리 집에 왔다. 다행히 기차는 논란 없이, 깔끔하게 레일 위를 달렸다. 어른들과 아이들 모두 만세를 불렀다. 그리고 수영이는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를 시원하게 발로 걷어차는 것으로 자기가 소유권자임을 확인했다. 드디어! 수영이 어린이날 선물 전달이 최종적으로, 불가역적으로 마무리됐다. 그리고 먹고 마시는 일만 남았다. 정말 홀가분한 마음으로, 당연하다는 듯이 뒤풀이가 이어졌다. 그것도 아주 길게! 결과적으로 수영이 어린이날 선물 전달을 위해서 지난 나흘 동안 세 번 모였다. 그때마다 아주 긴 술자리와 수다가 이어졌다. 사실은 어린이날을 핑계 삼아 어른들이 신나게 놀았다. 어른이날이 됐다. 그래도 나흘 동안 세 번이나 모이다니. 뭐, 형제들이 안 모여서 문제지 모이는 것이 문제겠나!
P.S : 우리 펭수는 노력 좀 더 해야겠다. 수영이 어린이날 선물은 온통 뽀로로가 접수했다. 펭수 굿즈는 스티커 한 장 없었다. 모두가 펭수 세상이 됐다고는 하지만, 특정 집단에선 여전히 뽀로로가 대통령이었다.
P.S에 붙이는 P.S : 수영이에게 펭수 인형이라도 보내주고 싶은데, 보내줘도 수영이는 구경도 못하고 아빠만 가지고 놀 것 같아요! [편집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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