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웹진 [e-품]의 <단!마디> 꼭지는 평등사회노동교육원 단병호 대표(민주노총 지도위원, 17대 국회의원)의 노동 및 사회현안에 대한 논평과 제언을 싣습니다. [편집자주] |
시계(視界) 제로의 정치 풍향계, 그 길은?
2020. 4.
21년 보궐선거에서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민주당의 참패, 국민의 힘 압승, 진보의 추락으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국민의 힘은 “우리가 잘해 이긴 승리가 아니다.”라며 몸을 한껏 낮추는 모습을 보이려 하고 있고, 민주당은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며 성찰하는 모습을 보이려 하고 있다. 진보진영에서는 이번 선거결과에 대응한 특이한 반응은 아직 감지되지 않고 있다. 이번 보궐선거 결과가 일시적 현상으로 그칠지 아니면 이대로 흐름으로 이어질지 예측하기 어렵다. 지금의 상황이 “역사는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끝난다는 칼 마르크스의 말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민주당의 패배를 놓고 부동산 정책 실패, 공정성에 대한 신뢰 상실, 민생문제의 외면, 협치 부재, 내로남불, 등등해서 이런저런 평가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결론은 다 잘못했다는 것이다. 분명 과장되고 있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정부와 여당은 선거결과가 내심 야속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이야말로 정부와 민주당이 감성이 아닌 냉철한 이성으로 되돌아보아야 할 때다.
국민들이 문재인 정부를 출범시키고 높은 지지를 보내고, 총선에서 이유야 어쨌든 180석의 거대 정당을 만들어 준 데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보수정치 집단보다는 더 유능할 것이라는 기대와 다른 하나는 보수정치 집단보다는 더 윤리적일 것이라는 기대가 그것이다. 이것으로부터 배신당했다는 판단이 이번 보궐선거의 결과로 나타났다고 보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우리는 얼마나 유능했는가?’ ‘우리는 얼마나 윤리적 이였는가?’ 여기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답을 찾으면 보궐선거의 결과는 일시적 현상으로 끝날 수 있을 것이고, 만약 답을 찾지 못한다면 지금의 현상이 흐름으로 굳어질 것이다. 지금 민주당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만 보아서는 쉬이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우려가 지워지지 않는다.
국민의 힘은 보궐선거의 결과에 겉으로는 몸을 낮추면서도 내심 권력을 탈환할 수 있다는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는 것 같다. 공정과 정의와 청년의 문제 등을 자신들이 추구해온 고유의 가치인 마냥 포장하며 몸집을 키우려고 하고 있다. 민주당과 진보정치 진영의 대응여하에 따라 국민의 힘의 브랜드로 넘어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권력탈환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세훈·박형준 현상이 크다고 해도 그것이 곧 정권 위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윤석열(윤석열의 현상은 지속성을 가질 수도 있지만, 의외로 조기에 추락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을 포함해서 반민주·반진보 전선을 얼마나 크고 단단하게 만들어 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그것 또한 순조롭지 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의 힘이 김종인 비대위원장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착시현상을 가지게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4년 전과 비춰봤을 때 다른 점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개꼬리 삼년을 두어도 황모는 안 된다(三年狗尾 不爲黃毛)는 말처럼.
21년 보궐선거에서 진보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열두 명의 후보 중 어느 후보까지 진보로 보아야 할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여성의 당 후보를 제외하고는 모두 0.5퍼센트 미만의 득표를 했다. 수만 명의 권리당원을 가지고 있는 진보당 후보도 0.22퍼센트에 거쳤다. 정의당이 후보를 내지 않았고, 선거구도가 정권심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2000년 이후 각종 선거에서 나타났던 진보진영에 대한 지지율 가운데 가장 저조했다는 점은 아무렇지 않게 넘길 일은 아닐 듯싶다.
진보의 길 찾기를 서둘러야 할 때이다. 중·장·노년층에 기대어 진보의 부활을 꿈꾼다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이미 판명되었다. 국민의 정서, 국민의 눈높이만 의식해 그기에 맞춰 간다면 민주당의 아류로 존재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진보정치(정당)의 정체성을 세울 수도 성공할 수도 없다는 것도 이미 확인되었다.
지금이야 말로 진보진영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지를 지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다양한 진보진영의 정체성이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과 방법은 무엇인지, 그 속에서 진보의 중심 가치를 어떻게 세울 것인지, 미래세대와 진보의 가치는 어떻게 교감하고 공감할 것인지, 노동은 시대적 가치를 어떻게 능동적으로 수행할 것인지 등을 진보진영이 이마를 맞대고 밤을 새워서라도 그 방안들을 만들어 내야 할 때다.
내년에 있을 대선과 지방선거가 보수와 자유주의 세력 사이에서 정권심판(권력탈환)과 사수라는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질 것이고, 그 속에서 진보진영의 입지와 선택은 어느 때보다 더욱 축소될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의 일 년이 진보정치의 부활이냐 쇄락이냐를 가름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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