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웹진 [e-품]의 <단!마디> 꼭지는 평등사회노동교육원 단병호 대표(민주노총 지도위원, 17대 국회의원)의 노동 및 사회현안에 대한 논평과 제언을 싣습니다. [편집자주] |
지금은 노동시간 단축을 중심으로 한
노동법 개정을 전면화 해야 할 때
2021. 03.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 민주당은 ‘ILO기본협약’ 비준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 법) 제정을 노동정책의 주요한 성과로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정부와 민주당의 평가와는 상반되게 노동계는 ILO기본협약 비준안과 중대재해 법은 자본의 요구에 굴복해 누더기가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ILO기본협약을 비준했다고 해서 정부가 선전하는 것처럼 한국의 노동현실이 선진국 수준이 되는 것인지, 지금의 중대재해 법 제정만으로도 노동자들이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병들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0년 한국 노동자들의 월평균 노동시간은 160.6시간으로 일 년에 1,927.2시간 일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노동시간이 2017년 연2,000시간 대 아래로 내려 온 뒤 계속해서 조금씩 감소하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 사회 정책의 효과라고 홍보하고 있다. 통계에 대한 신뢰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통계를 사실로 인정하더라도 비정형 시간제 노동의 확산이 노동시간 감소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한국의 노동시간이 비록 2,000시간 대 이하로 떨어졌다고 해도 OECD가입 국가 중에서 멕시코 다음으로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은 없다.
지난 1월에 제정된 중대재해 법은 산업재해를 막는데 얼마만큼 기여할 수 있을지를 놓고 정부 여당과 노동계의 판단이 갈라지고 있다. 정부와 민주당은 100퍼센트 만족스럽지 않겠지만 산업재해를 방지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한다. 반면에 노동계에서는 ‘인과관계 추정’이 삭제되고, ‘발주처와 임대인’도 책임 범위에서 제외되고, ‘유해 사업장 기준’도 대폭 완화되고, ‘벌금 하한선’까지 없애버린 누더기 법안으로 만들어진 중대재해 법이 산업산재를 예방하는데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은 여전히 산재왕국이라는 불명예를 지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발표에 따르면 2019년 9월 기준으로 볼 때 재해 사망자수가 1,582명이고, 재해자수는 80,846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6,317명(8.5%)이 증가한 것으로 나와 있다. 작년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KBS가 산재사망자와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를 비교해 보도한 바 있다. 그 보도에 따르면 2020년 7월 1일~11월 11일까지 4개월간 산재사망 노동자는 329명이고, 이 기간 중에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은 205명이라고 한다. 전 세계가 재앙으로 생각하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보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다. 매일 5.5명씩.
실업률은 최악을 기록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 실업률이 5.4퍼센트로 이는 21년여 만에 가장 높은 수치이다. 물론 OECD회원국 평균 실업률이 6.8퍼센트(올해 1월 기준)인 것에 비교하면 한국의 실업률이 높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OECD회원국들의 실업률은 꾸준히 낮아지고 있는 것에 반해 우리는 지난해 9월 4,0퍼센트이던 실업률이 10월과 11월에는 4.2퍼센트로, 12월은 4.5퍼센트로 오른 데 이어 올해 1월에는 5.4퍼센트로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 더 나빠질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이제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가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할 때이다. 노동시간이 2,000시간대 이하로 떨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OECD회원국 중에 멕시코 정도를 제외하면 최고상위권에 있다. 독일과 네덜란드 등은 연간 1,300시간대이고, 미국과 일본도 이미 오래전에 1,700시간대로 떨어졌다.
1996년 전국민주금속연맹 조선분과위원회 노동자들이 용접복장 차림으로 서울도심을 행진하며 ‘죽지 않고 일할 권리’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 ‘아프지 않고 일할 권리’를 요구한지 25년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하루 5명 이상의 노동자가 죽어야 하는 산재왕국이라는 오명을 씻지 못하고 있다.
최근 쿠팡노동자 2명이 과로로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플랫폼 노동자의 사망이 반증하듯이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은 심각한 수준이다. 실업률 또한 개선되기 보다는 더 나빠질 가능이 높다. 특히 청년과 여성의 실업률이 높아지는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희생이 강제되고 있다. 좀 더 이대로 간다면 정말 회복불능 상태가 될 수 있다.
민주노총은 더 늦기 전에 노동시간 단축을 축으로 하는 노동관계법의 전면 개정 투쟁에 나서야 한다. 2003년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된 지 벌써 20년 가까이 되었다. 88년 주44시간제에서 2003년 주40시간제로 바뀐 것을 감안하면 이미 늦어도 한참 늦었다. 특히 OECD회원국들의 노동시간 감소 추세와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산업의 환경변화를 고려하면 더 이상 미뤄둘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19로 온 국민이 힘들어 하고, 또 그로인해 경제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데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관계법의 개정을 요구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관계법의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 경제가 어려운 저성장 국면에서는 노동자도 일정하게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로 지금까지 버텨왔다. 그 결과가 지금의 상황이라면 노동자들 스스로 역발상을 해야 할 때이다. 노동시간을 주4일제(주32시간)로 단축함으로써 고용을 확대하고 산업재해율도 낮출 수 있다. 플랫폼 노동 및 비정규 노동의 임금을 비롯한 노동환경을 개선함으로써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는 양극화를 멈출 수 있다. 노동소득의 향상은 위축된 시장경제에 활력을 불러 일으켜 저성장 국면의 경제를 선순환 구조로 바꿀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중소영세자영업의 재정적 자립도를 높일 수 있어야 한다. 재벌 대기업에게도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런 종합적인 계획을 만들어 노동시간 단축을 비롯한 노동관계법 개정의 정당성을 확보하며 동시에 중장기적인 투쟁계획을 수립해 지금 곧바로 투쟁의 기치를 세워야 한다. 대안을 가진 노동자의 투쟁에는 국민도 틀림없이 함께 호응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 민주당은 박근혜 정권 당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사용사유 제한’과 ‘고용의제’의 도입하는 비정규관련법 개정을 주장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고용환경과 양극화의 수치가 더 악화되었다. 노동관계법 전면 개정 투쟁으로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 민주당에 책임을 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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