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웹진 [e-품]의 <단!마디> 꼭지는 평등사회노동교육원 단병호 대표(민주노총 지도위원, 17대 국회의원)의 노동 및 사회현안에 대한 논평과 제언을 싣습니다. [편집자주] |
노란봉투법, 대통령 거부권 행사는 절대 안 돼
2023. 6.
민주당과 정의당은 30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신속처리 법안으로 본회의에 올라와 있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제2·3조 개정안(이하 노조법), 일명 ‘노란봉투법’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국민의 힘은 필리버스터를 비롯해 모든 합법적 수단을 동원해 막겠다고 한다. 민주노총은 7월 3일부터 15일까지 2주간 총파업을 통해 개정 법률안을 반드시 관철시키겠다는 방침이다. 그간 쟁점이 되어왔던 노조법 제2·3조 개정안 처리가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
노조법 제2·3조 개정은 노동계의 오랜 숙원 중의 하나다. 노조법 제2조는 근로자와 사용자의 개념을 정의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에는 제2조 2항 사용자의 정의를 ‘근로계약의 체결 여부와 상관없이 당해 근로자의 근로조건 등의 결정에 대하여 실질적인 지배력 또는 영향력이 있는 자도 사용자’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노조법 제3조는 쟁의행위에 대해 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의 보장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사용자의 무분별한 청구권 남용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청은 노무관리에 있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교섭의 책임으로부터 면탈되어 왔다. 그로인해 산업현장에서 불필요한 노사갈등을 유발하고, 쟁의의 장기화를 초래해 왔다. 산업현장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도 실질적인 권한이 있는 원청에도 교섭의 의무를 지게 하는 것이 맞다. 이미 2010년 대법원은 ‘현대중공업이 하청노동자의 노조법상 사용자’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또 기업의 무차벌적인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 조치는 노동자의 삶을 파탄으로 몰고 간 대표적인 악법이다. 대표적인 것이 2003년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의 죽음이다. 2002년 두산중공업은 구조조정을 이유로 1,124명을 해고 조치했고, 노조는 정리해고를 반대하며 파업했다. 회사는 파업을 이유로 노조간부 89명을 징계해고하고, 78억 원을 손해배상의 명분으로 재산과 급여에 가압류 조치를 내렸다. 이에 배달호 열사는 분신으로 항거했다. 쌍용자동차가 그랬고, 현대자동차가 그랬고, 대우조선이 그랬다. 사례는 차고 넘친다.
이처럼 손해배상 제도는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수많은 노동자 가정을 파탄 나게 했다. 뿐만 아니라 손해배상 제도는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노동3권의 하나인 단체행동권을 무력화 시키는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었다. 이번에 대법원이 “개별 조합원에 대한 책임 제한의 정도는 노동조합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라고 결정한 것은, 그동안 손해배상 제도가 만들어 온 폐해를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이를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노조법 2·3조 개정을 더 이상 미뤄야 할 이유도, 거부할 명분도 없다. 노조법 2·3조 개정의 필요가 제기된 지 20년이 되었다.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진출하고, 필자가 민주노동당 1-4호 법안으로 ‘근로기준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 ‘직업안정법’ 등 네 개의 법률 개정안을 낼 때 지금의 노조법 제2·3조의 내용도 포합되어 있었다.(2004년 7월) 그 뒤 18-21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매번 같은 법률 개정안이 제출되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말할 나위도 없고, 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서도 한 번도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국회의원 임기와 함께 모두 자동적으로 폐기되었다. 노조법 제2·3조에 따른 폐해가 막심했던 만큼, 21대 국회에서는 노조법 개정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그것도 이번회기 중에.
국민의 힘은 지난 15일 현대자동차 비정규노동자와 관련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을 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장동혁 의원은 “대한민국 사법부가 사망한 날”이라는 막말에 가까운 말을 내뱉었다. 국민의 힘 지도부는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다. 대체 언제까지 자본의 시녀노릇을 자청할 작정인가? 국민의 힘은 진정으로 산업현장의 안정과 평화 그리고 원만한 노사관계가 이뤄지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냉철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용산 대통령실은 일찍부터 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넘어오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비춰왔다. 이유는 산업현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말은 똑바로 하자. 산업현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무소부위와 같은 자본(대자본)의 권력 행사에 약간의 제약이 따를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이 ‘비정상의 정상화’가 아닌가? 노조법 제2·3조의 개정은 기울어진 노사관계의 균형을 바로잡는 것이고, 나아가 산업현장의 안정과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상생과 협력적 노사관계를 정착시키는 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양곡관리법과 간호사법이 국회를 통과했음에도 두 번이나 거부권을 행사했다. 헌법이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부여한 것은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조자룡 헌 칼 쓰듯 아무렇게나 마구 사용해도 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헌법을 명백하게 위배되거나, 국민의 권리와 인권을 침해하나, 국가경제에 심대한 타격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무리하게 입법권을 행사하려 할 때, 대통령으로 하여금 이를 견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노조법 제2·3조의 개정이 위의 어느 것 하나에라도 해당하는가?
윤석열 대통령은 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넘어오면 지체 없이 개정 법률안을 공포해야 한다. 그것이 곧 산업현장에 공정과 정의가 바로 세워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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