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웹진 [e-품]의 <단!마디> 꼭지는 평등사회노동교육원 단병호 대표(민주노총 지도위원, 17대 국회의원)의 노동 및 사회현안에 대한 논평과 제언을 싣습니다. [편집자주] |
故 현주억 동지를 추억하며
2023. 7.
새날이 밝아온다 동지여 한 발 두 발 전진이다
기나긴 어둠을 찢어버리고 전노협 깃발아래 총진군
잔악한 자본의 음모 독재가 판쳐도
새 역사 동트는 기상 최후의 승리는 우리 것
총파업 깃발이 솟았다 한 발 두 발 전진이다
노동자 해방의 그날을 위해 이제는 하나다 전노협
새날이 밝아온다 동지여 한 발 두 발 전진이다
지역과 업종은 모두 달라도 전노협 깃발아래 총진군
갈라진 조국의 역사 외세가 판쳐도
새 역사 동트는 기상 최후의 승리는 우리 것
전국의 노동자 뭉쳤다 한 발 두 발 전진이다
노동자 주인 될 그 날을 위해 이제는 하나다 전노협
지난 7월 16일 익산 원광대병원 장례식장에서는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현주억 동지의 추모식이 있었다. 현주억 동지는 ‘전북노동조합연합회(전북노련)’ 의장과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위원장 직무대행을 역임하였으며, 노태우 정권에 의해 2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그 뒤 민주노동당 익산지역 위원장으로 활동하였으며, 민주노총 전북본부 지도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다 장마가 한창이던 7월15일 급류에 휩쓸려 안타깝게도 우리 곁을 떠났다.
이날 추모식은 지역에서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을 함께 했던 동료와 지인 300여명이 참석하고, 서울에서 내려간 천영세·박순희 민주노총 지도위원과 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거행되었다. 민중의례는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전노협 진군가를 제창했다.
오두희(87년 당시 익산 창인동성당 노동상담소 근무. 現 ‘평화바람’ 활동가)씨는 현주억 동지는 자신의 의지와 판단에 따라 거침없이 행동하는 담백한 품성의 노동운동 활동가였다고 회고했다. 그가 노동조합 설립을 상담하러 왔을 때 ‘건축설계사’라고 해서 건축설계사면 사무직이고 보수도 괜찮을 텐데 왜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하느냐고 했더니 ‘사람이 좀 더 행복하게 인간답게 살고 싶어 노동조합을 만드는 데, 업종이 무슨 관계냐’고 말해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회고했다.
현주억 동지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건축설계사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건축설계사 노동조합은 전북지역에서 사무직 노동자이면서도 제조업 노동자들과 함께 활발하게 활동한 유일한 사무직 노조였다. 현주억 동지의 열정적인 활동을 높이 평가한 지역노동자들은 그를 전북노동조합연합회 의장으로 추대했다. 현주억 동지는 탁월한 친화적 지도력으로 전북지역 노동운동을 조직화·대중화함으로써 전노협 강화에 크게 기였다.
당시는 노태우 정권은 노동운동을 와해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때다. 위원장(필자)은 전노협 결성 직후 2월 말에 구속되고, 직무대행으로 일하던 김영대 수석부위원장은 1990년 12월 ‘대기업 연대회의’ 사건으로 구속된다. 전노협은 창립 1년도 되지 않아 위원장과 수석부위원장은 구속되고, 사무총장은 수배가 됨으로써 지도력 공백 상태를 맞게 된다. 조직이 와해될 수도 있는 절박한 위기 상황이었다.
이러한 때에 현주억 동지는 자신의 안위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기꺼이 전노협 위원장 직무대행직을 맡았다. 직무대행직을 수락하고 천영세 지도위원과 접견(특별면회)을 왔을 때 너무 고마워 배석한 교도관의 만류도 뿌리치고 뜨겁게 포옹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필자는 현주억 동지에게 “전노협 위원장 직무대행의 직은 ‘칠성판’을 짊어지고 다니는 것과 같은 자리다. 어려운 결정을 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했고, 현주억 동지는 담담하게 “아무리 어렵과 힘든 일이라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면 저라도 해야 지요”라고 했다. 바위처럼 듬직하고 믿음직하던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현주억 동지는 시대와 역사의 소명 앞에 피하거나 물러섬 없이 항상 당당했다.
90년대는 노동운동의 격변기였다. 동유럽이 무너지면서 사회주의가 해체되기 시작하고, 한국이 사회주의권과 수교하는 등 냉전체제도 해체되기 시작하던 시기다. 노동운동과 사회 변혁운동은 극심한 이념적 사상적 혼돈 상태에 빠져들었다. 당시 전노협도 이념과 실천 모든 면에서 다양한 모색이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원심력이 작용해 조직 내 갈등과 반목으로 매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현주억 동지에게는 내부적으로는 조직을 추스르고 외부적으로는 폭력적인 탄압을 막아냄으로써 전노협을 사수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부여됐다. 이 엄청난 시련 앞에서 현주억 동지의 포용적 지도력은 큰 힘을 발휘했다. 흐트러진 조직력은 다시 수습되기 시작했고, 전노협은 91년 열사 정국의 투쟁에서 우뚝 설 수 있었다. 그의 너른 품과 곧은 심지의 품성이 크게 한몫했다. 현주억 동지는 전형적인 외유내강의 지도력의 소유자이다.
필자가 추억하는 현주억 동지는 ‘의지적 낙관주의자’다. 현주억 동지는 아무리 급하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당황하거나 낙담하지 않는다. 익산공단에 있는 조그마한 사업장의 파업 현장에 함께 갔을 때다. 그는 파업 노동자들에게 “시간은 우리 편입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승리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모든 순간 최선을 다합시다”라고 했다. 저 놀라운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참으로 궁금해 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는 계곡물이 범람해 마을의 집들이 물에 잠기고 있으니 와서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막힌 수로를 뚫으려다 급류에 휘말렸다. 남의 어려움을 그냥 넘기지 못하는 선하고 선한 성정이 그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는 이제 우리 곁을 떠나갔다. 그러나 우리는 오래도록 동지를 추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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