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규 회원님의 <건강과 진보> 입니다. [편집자주] |
지나친 믿음은 위험하다
이장규
평등사회노동교육원 경남 회원, 한의사
맨발걷기가 열풍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된 최근의 모습은 매우 씁쓸하다. 지나친 믿음과 그것을 이용하려는 사람들로 인한 폐해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아서다.
맨발걷기는 사람들이 혹할 수 있는 부분을 꽤 가지고 있다. 꾸준히 걷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확실하거니와 잘 알려져있다. 또한 흙 등 자연을 그대로 느껴보는 것에 대한 갈망은 현대인들에게는 특히 강하다. 신발을 신지 않고 걸으면 지압 효과 등이 조금 더 나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건강에도 좋고 자연을 느끼려는 욕망도 충족시킬 수 있는 맨발걷기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도 나름 이해는 간다. 부분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맞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다른 각종 ‘건강비법’들도 마찬가지다. 따로 떼어놓고 보면 대부분 맞는 이야기다. 문제는 그것만 하면 온갖 건강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주장하거나, 전혀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이야기로 효능을 과장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선 전혀 말하지 않는 등 지나치게 한쪽 측면만을 강조하는 것이다.
만병통치약은 없다. 이것만 하면 모든 건강 관련 지표가 좋아지고 암 등 난치병도 치료되고 어쩌고 하는 주장은 대부분 사기다. 모든 처방이나 대책은 긍정적인 부분과 부작용 내지 부정적인 부분이 함께 존재한다. (건강정보만이 아니라 각종 정책 등 사회과학적인 대책도 마찬가지다. 어떤 정책이든 기대효과와 부작용이 동시에 존재한다. 기대효과를 살리되 부작용을 완화시킬 대책을 같이 고민하지 않고, 이 정책만 시행하면 모든 게 잘 될 것처럼 주장하는 것 또한 대부분은 사기다.)
지금 맨발걷기가 그런 식이다. 맨발걷기를 열심히 하면 말기 암도 완치되는 등 온갖 질병이 다 좋아진다고 주장한다. 어씽(earthing) 어쩌고 하면서 그럴 듯한 설명도 덧붙인다. 이런 헛소리를 굳이 반박할 이유도 없지만 거기에 혹하는 사람도 있을까 싶어서 간단히만 말하면, 인체에 흐르는 미세전류는 접지한다고 땅으로 흘러가지 않으며 정말 접지가 되어서 미세전류가 빠져나가면 그게 훨씬 더 문제다. 물론 그럴 리도 없지만.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뭔가 대단한 과학적 원리가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유사과학의 폐해는 온갖 분야에서 너무 심해서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잘 모를 정도다.)
그러면서 맨발걷기가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는다. 가령 흙 속에는 생각보다 각종 병원균들이 많다. 물론 흙 속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온갖 세균들이 있지만 대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므로 흙 속 세균의 위험성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 역시 잘못이다. 하지만 건강한 사람이 가끔 흙 위를 걷는 정도가 아니라, 각종 날카로운 물건 등이 널려있는 곳을 지속적으로 맨발로 걷는 건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
날카로운 물건 등에 의해 발에 상처가 생기면 그 상처를 통해 흙 속의 각종 병원균이 들어가서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파상풍인데, 파상풍은 생각보다 위험하며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는 경우는 물론이고 치료하더라도 사망할 가능성도 꽤 있다. 파상풍 예방주사를 맞으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파상풍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가스 괴저병이나 연조직염 등 상처를 통한 세균감염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질병은 꽤 많으며 이것들 또한 패혈증 등으로 발전해서 사망할 수 있다. 즉 파상풍만 예방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미 말했듯이 상처를 통한 세균감염으로 사망까지 하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으므로, 이런 위험성도 지나치게 과장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대개는 별 문제가 안 되는 것도 어떤 행위의 빈도가 잦으면 그에 비례해서 위험성도 커진다. 맨발걷기가 열풍을 일으키면서 맨발로 걷는 사람과 횟수가 지나치게 늘어났고 그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는 케이스도 그만큼 늘어났다. 실제로 내 주변에도 예전에는 거의 없었던 사례들이 가끔 나타나고 있고, 사망한 사람도 있었다. (맨발걷기가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상당했다.)
더욱 문제인 것은 이런 열풍에 편승해서 이익을 얻는 자들이 꽤 많다는 것이다. 맨발로 걷지 않아도 그런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신발을 판다는둥, 맨발걷기의 효과를 외치는 책자나 강연을 통해 돈을 버는 사람들이 꽤 있다. 사람들이 호응하니까 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황토길 등을 조성하는 데 예산을 쓰는 지자체나 정치인들도 제법 있다. 그냥 신발 신고 걸어도 되는 사람들이 맨발로 걷는 길을 만드는데 쓸 돈이 있으면, 걸을 수도 없는 장애인들이 보다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돈을 쓰는 게 무조건 더 우선 아닌가? 정말이지 어이가 없다.
위험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본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하겠다면 억지로 말릴 방법은 없다.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효과는 과장되었으며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건 맨발걷기가 아무리 유행하더라도 해야 하는 일이다. 그냥 신발 신고 열심히 걸으면 되는데 왜 굳이 맨발로 걷는가? 게다가 그걸 위해 지자체나 국가 예산을 쓰는 건 전혀 쓸 필요가 없는 곳에 돈을 낭비하는 것이며, 사람들의 건강에 대한 집착에 편승해서 표를 얻겠다는 것일 뿐이다.
애초에, 온갖 건강정보를 지나치게 믿는 것 자체가 문제다. 그동안도 계속 이야기했지만, 무슨 대단한 건강비법 따위는 없다. 그냥 평소에 자주 걷는 등 일상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지, 뭔가를 하면 갑자기 좋아지고 그런 것 없다. 건강만이 아니라 각종 정치적인 성과도 마찬가지다. 가령 노동자정치세력화와 관련해서 평소에는 현장에서의 각종 활동을 거의 안 하다가, 선거 때 무슨 방침 만들어서 집행하면 뭔가 성공하고 그렇게 되지 않는다. 다들 좀 정신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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