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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만 늘린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이장규
평등사회노동교육원 경남 회원, 한의사
의대 정원 확대가 조만간 구체적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노동 관련 분야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극우적인 퇴행으로 치닫고 있는 현 정부의 정책 중 그나마 기본적인 방향 그 자체는 동의할 수 있는 것이 의대 정원 확대이다.
한국의 의사 수는 한의사를 포함하더라도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적다. 그러면서도 분야별로 편중이 지나치게 심하다. 상대적으로 힘들고 수요도 많지 않지만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이른바 필수의료 분야에는, 특히 지역일수록 의사 숫자가 매우 부족하다. 반면 상대적으로 편하면서도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분야, 가령 미용성형이나 실손보험을 활용한 비급여 진료를 위주로 할 수 있는 분야에는 의사들이 몰린다. 이런 분야의 수입 증가에 비교되면서, 병원에 고용된 봉직의들조차 특히 비수도권 지역일수록 높은 연봉을 주어야 겨우 의사를 구할 수 있다. 생애소득으로는 그 어떤 직종보다도 고소득을 올릴 수 있다보니 상위권 학생들 대부분이 의대로만 지원한다.
기득권이 강한 분야에서는 관문을 넓히는 것 즉 숫자는 늘리면서 각종 특권을 줄이는 것이 기본이므로, 의사 숫자를 늘리는 것 그 자체는 기본적인 방향은 타당하다. 문제는 단지 의사 숫자만 늘리고 끝내버린다면 우리나라 의료의 각종 문제는 그다지 해결되지 않거나 어떤 부분에서는 더 악화될 가능성도 크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이외의 종합적인 대책을 고민하고 있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의사 숫자가 늘어본들, 늘어난 의사가 지금처럼 비필수의료 및 수도권으로만 주로 편중될 경우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즉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강화할 수 있는 대책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단지 공공의료만이 아니라 민간의료까지 포함해서 면허제도나 의료전달체계의 개선 등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를 본격적으로 논의한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그냥 자기 지역에 의대를 유치하겠다는 생각 등 표만을 노린 것이라면, 배출된 의사들이 비필수의료 및 수도권으로 몰림으로써 지역간 의료불평등은 더 심해진다. 또한 의료전달체계가 붕괴됨으로써 환자들도 대부분 수도권 대형병원으로만 몰리고 대형병원들은 수도권에 추가로 분원을 설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대 정원 확대만으로 끝낼 경우 이들 대형병원의 이익만을 챙겨줄 우려도 있으며 이 역시 의료계 내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따라서 의대 정원 확대로 늘어난 의사들이 지역에서 진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확대된 정원 중 일정 비율은 별도로 모집하여 이들에게 등록금이나 수련비용 등을 무상 또는 일정한 지원을 하는 대신, 지역면허 및 공공면허 등으로 면허 자체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 해당 지역이나 공공의료기관에서만 진료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면허를 제한하는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따진다면 면허제도 자체가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면허제도는 일종의 독점 내지 강력한 진입장벽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고, 면허가 없거나 있더라도 면허에서 허용된 범위를 넘어선 의료행위를 하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경한 신자유주의자들 가령 프리드먼 등은 면허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면허제도를 없애고 그냥 자유시장에 맡기는 게 이른바 우파들의 원칙에는 더 부합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한국 우파들은 이념적인 우파도 아니다. 그냥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자들일뿐). 하지만 그렇게 했을 때의 각종 문제점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면허제도를 통해 독점을 보장하면서 대신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역면허나 공공면허 등 면허범위를 보다 구체적으로 제한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면허제도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이 의료전달체계 문제이다. 의료전달체계란 아프다고 무조건 대형병원 등 상급종합병원으로 바로 가는 것이 아니라, 주치의를 포함한 동네의원이나 지역내 병원을 거쳐서 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것이다. 사실은 지금도 형식적으로는 의료전달체계가 일정 부분 존재하고 있다. 동네의원이나 지역내 병원의 진료의뢰서 없이 바로 상급종합병원으로 갈 경우, 환자가 내야 할 본인부담금 등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손보험이 보편화되면서 실손보험은 이런 본인부담금조차 보장해주므로, 실제로는 환자 입장에선 거의 차이가 없어졌고 그에 따라 현재는 의료전달체계가 거의 붕괴된 상황이다. 가벼운 질환이 아니라 약간만 크게 느껴지는 질환이라면 무조건 수도권의 대형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리고 있다. 가령 이재명은 부산대 병원조차 믿지 못해서 응급헬기를 타고 서울로 가지 않았던가. 이게 단지 이재명만 그런 게 아니다.
의료전달체계를 재확립해야 한다. 당장은 진료의뢰서를 받지 않고 바로 상급종합병원으로 갈 경우, 이에 대해서는 본인부담금을 실손보험에서 보장받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민간 실손보험회사가 좋아할 일을 왜 하느냐고 할 수 있는데, 그대신 일본처럼 혼합진료를 금지함으로써 민간실손보험의 부담을 늘려야 한다. 혼합진료 금지는 이런 것이다. 비급여와 급여적용 항목이 함께 포함된 진료를 할 경우 이에 대해서는 의료기관이 건강보험공단에 급여적용 항목에 대한 비용을 청구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비급여 진료를 하면서도 그 중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건강보험공단에 청구를 할 수 있는데, 실손보험과 연계된 비급여 진료가 폭증하면서 이에 동반되는 급여 항목을 청구함에 따른 건강보험의 부담액도 상당한 실정이다. 이를 금지하고 비급여 진료를 할 경우 해당 진료비는 전액 실손보험에서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단지 상급종합병원에 대한 본인부담금을 늘리는 정도만으로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 애초에 지역에 밀착된 의료체계가 부족해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 내 공공의료기관이 강화되어야 하며, 이것도 단지 신규 병원 설립에만 치중해서는 안 된다. 이미 존재하는 공공의료기관부터 제대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하며, 병원이 아니라 보건소나 보건지소 등 보다 지역에 밀착된 공공의료가 보다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당장은 쉽지 않은 측면이 있지만 추후에는 주치의 제도나 방문진료 등 가장 먼저 환자를 만나는 1차의료 관련 시스템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지역에 밀착된 1차의료가 활성화되어야만 의료전달체계도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
의료문제는 워낙 여러 가지 사안이 연관되어 있는 복잡한 문제라서 한두개의 해법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의료는 돈벌이의 수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누군가 아프다는 것 즉 타인의 고통이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기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의료인의 노동과 전문지식에 대한 보상은 사회 전체가 공공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이것부터 확실히 하면서 꼬인 매듭을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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