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가 담지 못하는 그림 이야기>(편집과정에서는 '젠더미술사'로 줄여부르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최근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소위 '딥페이크' 문제에 대한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주] |
'표현의 자유'를 거스르는 '능욕' 놀이
이충열(화사)
여성주의 현대미술가
현대사회는 너무 바쁩니다. 왜 이렇게 바쁘게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방향키를 다룰 수 있다면 신나는 질주가 될 수도 있지만,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대부분은 떠밀려 다니기 쉽죠. 종일 스스로 정하지도 않은 ‘해야 하는 일’들을 정신없이 해내다 밤이 되면, 눈을 감고 자야 하는데 자꾸만 손이 스마트폰으로 갑니다. 작은 화면 안 세상은 바깥보다 더 빠르게 지나가, “이랬는데, 요래됐슴당!”라는 멘트와 함께 조그맣던 강아지가 엄청 커진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아련한 음악과 함께 ‘미소년’에서 배 나온 ‘아저씨’로 변한 남편들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도 ‘비포 앤 애프터’를 보여주듯, 나란히 걸려 비교할 수 있는 그림이 있습니다. 바로 스페인의 궁정화가이자 당시의 사회상을 기록하고 풍자한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와 <옷을 입은 마하>입니다.
서양의 시각 질서를 그대로 받아들인 우리는 왼쪽에서 시작해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보게 됩니다. 때문에 ‘마하’가 옷을 입었다가 벗은 모습으로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제작 시기는 1797년에서 1800년에 그린 것으로 알려진 <옷을 벗은 마하>가 먼저랍니다. <옷을 입은 마하>는 1800년에서 1805년(또는 1807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사실 과거의 그림들에 대한 기록은 확실한 것이 별로 없어요.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계속 바뀌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유명한 작품의 연도를 외우는 시험처럼 쓸 데 없는 일도 없답니다^^;
제작한 해가 언제인지도 분분하지만, 벗은 모습을 먼저 그리고 입은 모습을 그렸다고 보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기는 한 것 같습니다. 누구를 모델로 그린 것인지, 왜 벗은 모습과 거의 같은 구도로 옷을 입은 마하를 그렸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과 해석이 난무하지만, <옷을 벗은 마하>는 서양미술사에서 최초로 천상에 존재하는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여신 ‘비너스’가 아닌, 지상의 여인을 그린 최초의 누드화라는 해석과 평가가 힘을 받고 있고요.
누드화의 문법에 맞지 않게 여성의 온몸이 적나라하게 다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종교재판에서 외설적이라고 비난받으며 압수되었다는 기록도 있고, 종교재판에서 옷을 벗은 그림 속 마하에게 옷을 입히라고 했지만 고야가 <옷을 입은 마하>를 따로 그림으로써 사건의 종결과 저항을 동시에 꾀했다는 설도 있답니다.
스페인의 시골 마을에서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난 고야는 궁정의 수석화가의 위치까지 올라갔지만, 콜레라를 앓으며 청각을 잃었다가 회복되기도 해요. 고야는 청각 상실 기간에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의 이상에 이끌렸고 철학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스페인 전역을 다니며 전쟁의 참상과 부조리한 삶의 모습들을 기록하게 되죠. 그중에서도 프랑스 대혁명의 지지자였지만 자신의 조국인 스페인을 침략한 프랑스군의 만행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1808년 5월 3일의 처형>이 유명합니다. 고야는 이후의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데, ‘천재 화가’라 평가받는 피카소가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 역시 6.25 전쟁의 참상을 잘 보여주고 있어요.
고야는 혼란한 시대에 만연했던 미신적 풍습과 부조리, 종교의 타락과 군대의 폭력, 정치인의 만행 등을 기록하고 논평하는 무수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아름답고 보기 좋은’ 그림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고야의 작품은 끔찍하고 거북한 것이 되겠죠.
사실 무엇을 ‘아름답고 보기 좋은’ 것으로 느끼게 되는지도 문화적 환경과 학습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치관과 철학, 관점에 의해 달라지게 되고요. 그런데 우리가 박물관이나 미술관, 미술사책 등에서 볼 수 있는 ‘명화’들은 서양의 권력자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진 기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물론 현대의 예술을 경험한 분들이라면 고야의 사회비판적인 그림들을 보고 반사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기보다, 시대와 역사를 기록하려 했던 예술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게 될 거예요.
고야의 이러한 그림들은 엄격한 신분제가 유지되었던 시대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답니다. 시민혁명이 신분제를 무너뜨리고, 일정한 재산을 가진 백인 비청소년 남성에게부터라도 출신과 상관없이 투표권이 주어지는 시대로 변화하면서 가능해진 것이에요. 귀족이 아니어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권리를 행사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이 ‘표현의 자유’라는 개념의 기본을 이루게 됩니다.
본디 ‘표현의 자유’는 인권을 위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의는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라고 생각하지 못하던 시대에 시작되었어요. 그래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거나 비하하는 것까지 ‘표현의 자유’에 포함될 수 있다고 오해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해야 했던 시대의 절박함과 그 필요성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고야가 그린 <옷을 벗은 마하>와 <옷을 입은 마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림의 모델은 이전에 고야가 그린 바 있는 귀부인이라는 주장과 그림을 주문한 귀족의 애인이라는 해석이 유력하지만, 특정한 모델이 없고 이상적인 여성을 그린 것이라는 등 여러 주장이 있습니다. 모델이 있다고 보는 경우, 누가 되었든 옷을 벗고 그림의 모델이 되었다가 몇 년 후 다시 옷을 입고 같은 포즈로 모델을 섰다고 보기는 어렵겠죠. 그렇다면 <옷을 입은 마하>는 모델 없이 그렸다고 볼 수 있어요. 그렇다면 그 모델은 자신을 다시 그림으로 그린 것에 동의했을까요?
온전한 ‘동의’란 정보의 대칭성을 전제로 합니다. 많은 정보를 가진 사람이 일부의 정보만 알려주면서 상대에게 자신이 원하는 답을 듣는 것은 ‘동의’가 아니라 기만이고, 대부분 침해나 착취로 이어집니다. 위험한 물질을 다루는 공장에서 일할 노동자를 고용하면서 위험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려주지 않고 급여나 근무조건 등만 알려주는 경우를 상상하면 쉽게 이해되실 거예요. 마찬가지로 어떤 그림의 모델이 된다고 ‘동의’할 때는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재현될지, 자신이 그려진 그림이 어떻게 쓰일지 알려줘야 하는 거죠.
‘동의’보다 더 좋은 의사소통은 ‘합의’입니다. 모든 정보를 공유한다고 해도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정보를 가지고 제안하는 것보다, 애초에 두 사람이 상황을 함께 조율할 수 있는 것이 더 민주적인 것이지요. 그래서 최근에는 성폭력에 대해 ‘동의’를 넘어서서 ‘합의’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성적자기결정권 침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성적자기결정권은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이 아니라, 보장받아야 ‘권리’이기 때문에 침해하면 안되는 것이고요.
최근 딥페이크 피해가 얼마나 많은지 언론을 통해 알려졌어요. 딥페이크는 당사자의 동의 없이 초상권을 침해하고, 성적대상화함으로써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거나 ‘능욕’하면서 그것을 ‘놀이’로 즐기는 성범죄입니다. 피해자는 개인정보 유출로 인해 일상도 침해와 위협을 받게 되고요. 또한 가해자가 누구인지 알기 어렵기 때문에 주변의 모든 남성(가해자가 거의 남성이므로)을 두려워하게 되고, 자신이 어떻게 합성되어 재현될지 모르기 때문에 긴장과 의심과 불안으로 몰아넣어 삶을 위축시키는 심각한 폭력이에요.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 이미지를 문제의식 없이 즐기며 소비하는 남성문화의 문제와 그 영향력을 전면에 다루고 싶었는데, 누드화를 다루는 것에 대한 편집자의 걱정을 고려하여 ‘의식 있는’ 화가로 유명한 고야의 이야기를 들어, 돌아돌아 이렇게 왔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해도 자신이 가진 권력을 인식하지 못하면 본의 아니게 폭력을 저지르거나 범죄를 방치하게 되거든요. 시민 동료들의 삶이 침해되고 위축되어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와 상관없다고 외면하지 마시고 디지털 성범죄를 종식시키기 위해 함께 싸워주시기를 부탁드려요. 청소년·청년 여성들이 피해 공포에 시달리며 살아가지 않게, 지난 호에서 보았던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처럼 여성시민을 누락시키지 말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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