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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문학

[노동인문학] 노동해방, 오래된 꿈_(29) 적록 동맹 : 공유지와 장애물 ⑧

박장현 교과위원님의 <노동인문학>입니다. [편집자주]

 

노동해방, 오래된 꿈

 

박장현

평등사회노동교육원 교과위원

 

2) 한 가지 동맹

2-1) 기후위기 시대

단일한 사건을 인류 전체가 동시에 체험하면서 그 의미를 물어본 첫 사건은 무엇일까?

 

나는 인간의 달착륙 사건을 꼽고 싶다. 협정세계시간(UTC) 19697161332, 아폴로 11호가 지구 표면을 이륙하는 장면은 전세계에서 모든 사람이 TV 생중계를 통하여 지켜볼 수 있었다. 실제로 7억 인구가 그것을 보았다. 5일 뒤 721025615, 인류 최초로 달 표면에 첫 발자국을 찍는 순간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 선장은 이렇게 소감을 말한다.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그 장면도 전세계로 생중계되었고, 6억 인구가 시청하였다.

 

블루 마블, 1972년 12월 7일, 아폴로 17호 승무원 촬영, 지구 전체의 모습을 찍은 역사상 최초의 사진

 

그로부터 5년 뒤 1972127, 아폴로 17호 승무원이 지구로부터 45km 떨어진 지점에서 인류 최초로 지구 전체의 모습을 촬영하는 데 성공한다. ‘블루 마블’(Blue Marble)이라고 불리는 이 사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널리 퍼진 사진으로 꼽히고 있다. 사진보다 더 생생한 증거는 없다. 사진에는 국경선도 보이지 않았고, -서 냉전도 보이지 않았다. 공장 굴뚝도 보이지 않았고, 핵폭탄도 보이지 않았다. 자원고갈도, 성장의 한계도 보이지 않았다. 그 사진을 보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지구촌에서 살아가는 인류의 한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인류 전체를 단일한 행위자로 간주하고, 지구 전체를 단일한 생태계로 간주하면서, 과학적인 방법을 통하여, 미래의 삶을 예측해보려는 시도는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첫 번째 위대한 성과로 1972로마클럽<성장의 한계>가 출간된다. 보고서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인류가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경제활동을 계속해나간다면, 환경오염과 자원고갈로 인하여 50~60년쯤 뒤에는 지구촌의 경제가 성장의 한계에 부닥칠 것이다.”

 

<성장의 한계>, 1972년, 124쪽

 

이 보고서는 그전에 제출되었던 수많은 다른 연구성과들과 비교해볼 때 몇 가지 획기적인 차이점을 담고 있었다. 가장 획기적인 차이로는 우선 지구생태계라는 개념을 꼽아야 할 것이다. 이른바 블루 마블전체를 단일한 생태계로 보면서 과학적인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관점의 혁명이었다. ‘야생보전’, ‘지속가능한 성장’, ‘환경보호’, ‘정의로운 전환등등을 지향했던 지난날의 생태연구와 생태운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관점이었다.

 

지구생태계는 수많은 구성요소가 상호작용하는 복잡한 시스템이다. 거기에는 자연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요소들이 얽히고설켜 있다. 이처럼 복잡한 시스템의 미래상태를 과학적으로 예측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하여 로마클럽은 그 당시 걸음마 단계에 있던 컴퓨터 모델링 기술을 과감하게 도입한다. 방법의 혁명이었다. 바로 이 선택이 <성장의 한계>를 역사의 한 분수령으로 만들어주었다. 디지털 기술이 없었더라면 로마클럽은 이 보고서를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성장의 한계>에 사용된 ‘월드3 모델’. 인구, 식량생산, 산업화, 오염, 재생 불가능 자연자원 소비 등 5개의 변수로 구성되었다. <성장의 한계>, 1972년, 102~103쪽

 

<성장의 한계> 보고서는 생태연구와 생태운동의 역사에서 <침묵의 봄>에 버금가는 전환을 가져오게 한다. 토머스 쿤이 말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촉발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인류가 운명공동체라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생태연구와 생태운동에 새로운 흐름을 촉발하였다. 어쩌면 생태지구주의’(ecoglobalism)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 보고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지만, 그러나 일반대중들 사이에서는 <침묵의 봄> 만큼 널리 수용되지 못했다. ‘환경오염자원고갈은 점점 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었지만, 일반대중은 그것을 자신과 관계된 절박한 문제로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로마클럽은 처음부터 이런 결과를 예상했던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의 첫머리에 실린 인간의 시야가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구 전체의 장기적인 문제가 단박에 모든 사람의 관심을 끌 수는 없다는 예상이었다.

 

 

사람에 따라 시간적 및 공간적 시야가 다르다. 세계 사람들의 시야를 시간-공간 그래프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세계 사람들의 대다수는 오직 짧은 기간 안에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만 관심이 있다. 도시나 국가 등 좀 더 넓은 지역에 좀 더 긴 기간에 걸쳐서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먼 미래의 시간 및 지구 전체의 공간까지 시야를 확장하는 사람의 수는 매우 적다. <성장의 한계>, 1972년, 18쪽

 

 

 

 

지구가 단일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인류가 운명공동체라는 사실을 좀 더 실감이 나게 보여주는 연구들이 이어졌다. 1977년에 헤르만 플론’(Hermann Flohn)이 발표한 <기후와 에너지 : 기후변화 문제의 21세기 시나리오>를 첫손에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같은 해에 창간된 학술잡지 <기후변화>(Climatic Change) 창간호에 실린 이 논문은 기후변화의 가능한 미래를 설명하기 위하여 시나리오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과학 논문이었다. 그리고 로마클럽과 마찬가지로 컴퓨터 모델링 기술을 활용하여 작성한 시나리오였다.

 

<성장의 한계>부터 시작해서 그 뒤에 수행된 지구생태계에 관한 연구들 중 컴퓨터 모델링 기술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 있을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오늘날 기후위기에 관한 (거의) 모든 토론에서 빠짐없이 인용되고 있는 유엔 IPCC 보고서도 이 기술을 이용하여 작성되고 있다. 이런 점을 두고 말한다면, 지구생태계의 미래에 관한 모든 예측은 디지털 기술의 아들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얘기는 뒤에 다시 이어가기로 하자.

 

1977년 제출된 플론의 시나리오 이후로 기후위기는 관심과 연구의 블랙홀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미미했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생태연구와 생태운동을 빨아들이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럴 만한 이유도 있다.

 

지구생태계의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두 요소를 꼽으라면 단연 에너지와 기후를 꼽아야 할 것이다. 에너지와 기후는 전세계적으로 일반대중의 관심을 끌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우선 에너지는 모든 사람의 노동과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다. 그리고 기후는 누구나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현상이다. 그뿐만 아니라 기후변화는 국경선으로 가로막을 수도 없다. 적도의 따뜻한 공기는 북극과 남극으로 흘러가고, 거꾸로 북극와 남극의 차가운 공기는 적도로 흘러간다. 중국 북부에서 발생한 황사와 미세먼지는 바람을 타고 한반도로 밀려들고, 이어서 일본으로 밀려간다. 바닷물의 흐름도 마찬가지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류하는 폐수는 해류를 따라 이동하여 몇 년 뒤에는 한반도와 중국의 해안을 오염시키게 된다. 이처럼 에너지와 기후 문제에 당면하면 지구촌의 모든 사람이 저마다 세계시민으로 될 수밖에 없다.

 

그뿐만 아니라 기후위기는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매우 절박한 문제로 대두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기후위기는 이미 강력한 블랙홀로 성장하여 금세라도 지구생태계를 삼켜버릴 듯하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는 구호가 한가하게 들릴 정도이다. 여기저기서 지구의 멸망또는 인류의 멸망을 걱정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 만큼 기후위기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커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기후위기의 원인에 대한 연구보고서가 늘어나고, 그에 대한 대응이 절박해지면서, 세계 각국의 정부와 정치가들도 문제의 심각성을 외면하기 어려워졌다. 기후변화에 대한 최초의 글로벌 회의로는 1979세계기상학회’(WMO)가 주최한 제1세계기후회의’(WCC)를 꼽을 수 있다. 이어서 1988, 유엔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을 설립하여 기후변화에 대한 연구를 주관하는 한편, 향후 각국 정부의 협약 이행 여부를 모니터링하게 했다. 1992년에는 154개국이 참여한 제1차 유엔 기후변화 기본회의(UNFCC)가 개최되었고, 이후 매년 회의가 열린다. 여기서 합의되는 기준을 실제로 적용하기 위하여 1995년 각국 정부 대표들이 참가하는 유엔 당사국총회(COP)가 설립되었으며, 이후 매년 회의가 열리고 있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1997교토의정서를 체결한 COP32015파리협약을 체결한 COP21을 꼽을 수 있다.

 

기후변화에 상응하여 생태운동도 변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기후위기 문제는 모든 생태운동 단체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넘버 원 문제이다. 야생보전을 단체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아왔던 시에라 클럽도 오늘날 기후위기를 외치며 거리로 나서고 있다. 환경오염에 맞선 직접행동을 단체의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는 그린피스도 마찬가지이다. 노동운동도 이 문제를 남의 일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시에라 클럽,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