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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복의 노동상담 이야기

[조광복의 노동상담 이야기] 여덟 번째 이야기, 인권은 경계를 가르지 않는다

 

여덟 번째 이야기, 인권은 경계를 가르지 않는다

 

조광복

(전)청주노동인권센터 상담활동가

 

1.

헌법재판소를 때려 부수자’, ‘000 헌법재판관을 밟아라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결정일이 다가올수록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의 구호가 섬뜩해지고 있습니다.

 

자기 정치 기반 만들기와 돈벌이에 혈안이 된 극우 포퓰리스트들의 선동에 화가 치밀기도 하고 또 극심하게 갈라진 이 사회의 장래가 심히 우려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다 문득 예전에 했던 상담 사례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여기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당신의 이념은 매우 진보적이고 특히 극우 이념에 아주 비판적(심지어 적대적)이라고 가정합시다. 그 극우 이념에 충실한 단체의 간부급 되는 이가 자신이 몸담은 단체에서 해고됐으니 도와달라고 찾아 왔습니다. 당신은 이 사람을 흔쾌히 돕겠습니까?

 

나한테 이런 일이 찾아왔습니다.

 

 

2.

반공단체를 대표하는 00000연맹의 도지회 사무처장으로 근무하다 해고된 사람이 왔습니다(이름을 규호 씨라 하겠습니다). 규호 씨로 말할 것 같으면 육군3사관학교를 나와 30년을 군 장교로 복무했습니다. 군 복무 중 보국포장, 장관 표창, 총장급 표창, 군사령관급 표창 등 총 40회의 상훈 경력을 쌓았습니다.

 

정년퇴직 후엔 공개 채용에 응시해 00000연맹의 도지회 사무처장이 됐습니다. 규호 씨의 군 경력과 군 전역 후 취업한 단체의 성격을 보건대 규호 씨는 뼛속 깊이 반공주의자였겠지요. 보수와 진보의 스펙트럼 사이에서 그의 생각과 태도는 아마도 보수의 제일 오른쪽 끄트머리에 위치했을 겁니다.

 

규호 씨와 첫 대면을 한 당시의 나는 ##노동인권센터 소속 노무사였습니다. 노동자와 빈민을 위해 감옥을 드나들면서 평생을 권력과 맞서 싸우다 작고한 목사님의 호를 받아서 만든 단체였는데요, 목사님의 뜻을 계승하겠다고 지역의 노동조합 연합단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설립했고 나 또한 설립 과정에 함께 참여하여 개업 노무사 일을 그만두고 노동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활동하는 노무사로 새로운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노동인권센터의 운영진도 지역 노동조합 연합단체가 추천한 사람들로 구성됐습니다. 그곳에 터 잡고 일하는 내 생각과 태도는 아마도 보수와 진보의 스펙트럼 사이에서 진보의 왼 쪽 어딘가에 위치했을 겁니다.

 

서로가 서로를 찾을 일은 물론이고 말 섞을 일도 거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 우리가 만났지요. 서로 얼굴을 맞대고 몇 번 술잔도 기울여가며.

 

 

3.

규호 씨의 직장 생활은 참 기구했습니다. 해고됐다 복직됐다 또 해고되기를 세 번 반복했습니다. 규호 씨를 공개 채용했던 도지회장이 임기 만료로 떠나고 새로운 도지회장이 취임한 뒤부터 규호 씨의 직장생활이 꼬였는데요. 규호 씨는 일처리에 있어서 원칙적이고 깐깐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시중 단가보다 부풀린 금액으로 업체와 계약하는 행위를 근절했습니다. 신임 도지회장과도 껄끄러워졌어요.

 

도지회장은 취임 몇 달 뒤에 규호 씨를 해고했어요. 규호 씨는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지요. 해고 자체가 말이 안 됐으므로 당연히 부당해고 인정 및 원직 복직 명령판정을 받았습니다. 도지회장은 그 뒤로도 한참을 미적거리다 결국은 복직을 시켰습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부당해고 여부를 다투는 와중에 사무처장 자리에다 도지회장 자신이 신임하는 사람을 채용한 겁니다. 잠시 공석으로 두거나 다른 직원을 직무대행으로 임명했어야 할 일이었지요. 더군다나 신임 사무처장은 규호 씨의 전임 사무처장이었는데요, 그때 비리가 적발돼 사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같은 자리에 다시 복직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아무튼 사무처장이 둘이 되는 해괴한 일이 생겨버렸습니다. 도지회장은 규호 씨를 복직시킨 뒤 규호 씨가 못 견뎌 사직하도록 별 짓을 다 꾸밉니다.

 

도지회장은 규호 씨의 사무처장 권한 즉, 직원들을 지휘 감독하는 권한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청사관리 업무를 부여했습니다. 총무 담당 직원이 하는 업무인데요. 건물임대료 및 관리비 징수, 수도·전기 등 검침, 청사 내 입주업체 불편신고 사항 등 처리, 선임 사무처장 지시사항 처리 등의 업무였습니다. ‘선임 사무처장이란 규호 씨를 해고하고 새로 뽑은 사무처장을 말합니다.

 

사실상 주요 업무를 죄다 박탈한 뒤 근무 장소도 변경했습니다. 근무 장소라 부르기도 민망한 반 지하 관리실입니다, 재정이 없다는 핑계로 책상도 의자도 비품도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규호 씨가 불복해서 모든 직원이 근무하는 사무실 소파에서 업무를 보자 부적을 소파에 부착했습니다. 규호 씨는 천주교회 신자였습니다. 도지회가 재정이 없다고 하니 규호 씨 자비로 책상과 의자를 구입해 사무실에 비치했는데 그것을 밖에 끌어냈습니다.

 

도지회 업무 문서와 서류철을 보지도 못하게 차단하고 규호 씨의 결재란도 없앴습니다. 대내외적으로 표시하는 공식 조직 구조에서 규호 씨의 직위와 이름을 삭제했습니다. 홈페이지에서도 모든 직원들의 직위와 이름, 사진이 게재되어 있지만 규호 씨 것만 누락됐습니다. 당시엔 근로기준법의 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조치에 관한 규정이 시행 전이었습니다. 요컨대 근로기준법의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규정은 적지 않은 세월 동안 흘려온, 수많은 규호 씨들의 피눈물에 대한 작은 보상인 셈입니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2(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이하 직장 내 괴롭힘이라 한다)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30년 군 생활을 명예롭게 마친 뒤 사상과 이념이 서로 통할 것 같아 공개채용에 응시하여 합격한 규호 씨는 권모와 술수와 사적인 이해관계가 능력 또는 공적인 헌신성보다 더 우위에 있다는 것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모멸감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잠을 설치다 병원 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4.

규호 씨를 돕기로 마음먹기까지 나에겐 작은 고민도 필요치 않았습니다.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받았는데 돕지 않을 이유는 적어도 내가 볼 때 전혀 없었어요. 우리는 만나서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얼마 후에 속내를 꺼내더군요. “도지회장이 지역에서 힘 좀 쓰는 사람이에요. 누구를 믿어야 될지 몰랐어요. 조광복 노무사님도 어떤 사람인지 많이 찾아봤어요. 믿을만한 사람인지 불안해서요.”

 

술도 몇 차례 나눴습니다. 이런 얘기도 꺼내더군요. “나 역시 민주노총이니 인권단체니 하는 데에 아주 부정적이었죠.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사회에서는 이런 곳도 필요하구나, 라고요.”

 

대화를 나눌수록 규호 씨와 나 사이의 경계는 더운 여름날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습니다. 규호 씨와 나는 서로에게 꽉 막힌 수구 꼴통도 뿔 달린 빨갱이도 아니었습니다.

 

규호 씨는 반복되는 해고 모두 부당한 것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세 번째로 해고되자 나는 규호 씨에게 이 문제를 끝내기 위해서는 노동위원회에 반복해서 구제신청을 접수할 게 아니라 민사소송으로 갑시다, 해고 무효 확인 및 임금 청구와 정신적 위자료 청구를 함께 넣어서 복직은 포기하는 대신 최종 합의를 끌어냅시다, 라고 제안했습니다. 이곳에서 더 이상 직장생활 한다는 게 의미가 없었으므로 규호 씨는 내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변호사에게 업무를 이관시키고 규호 씨와 나 사이의 관계는 끝났습니다만, 함께 머리를 맞대는 동안 신뢰도 두터웠고 우리 사이는 꽤 돈독했습니다. 그런데 엉뚱한 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5.

내가 몸담고 있던 ##노동인권센터의 운영위원 중 한 명이 ##노동인권센터를 설립한 노동조합 단체의 업무 책임자였는데요. 한 날은 식사 한 끼 하자고 연락이 와서 식사와 함께 술도 한 잔 하던 와중에 목소리를 높이면서 하는 말이 극우 보수 세력의 해고 사건을 맡아서 한 게 말이나 됩니까. 000 목사님의 이름에 먹칠을 한 겁니다.”

 

하여튼 아주 놀랐습니다.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노동운동에 몸담지 않은 나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았습니다(아니 노동운동에 몸담은 분들 중에서도 그이의 발상에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일들이 겹쳐서 나는 ##노동인권센터 설립에 참여한지 2년여 만에 그곳을 나와 독립된 단체를 만들어 10여년 더 일을 했습니다. 그 후로도 여전히 나는 진보니 보수니 가리지 않고 일을 했습니다.

 

한 번은 보수 성향이 아주 강한 언론의 지방 주재 기자로 근무 중 비정규직인 프리랜서 기자로 전락하여 얼마 후 계약 해지 통보를 받은 이가 찾아왔습니다. 쭉 얘기를 들어보니 말이 프리랜서이지 봉급쟁이 기자와 다를 게 전혀 없었습니다. 우리는 합심해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고 그이는 노동자로 인정받아 복직했습니다.

 

그이는 복직한 뒤 내가 몸담고 있던 단체의 후원회원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 지역 노동 문제가 생길 때 한 번씩 나한테 전화를 걸어 자문을 구하더니 점점 더 노동자들의 처지에 우호적인 기사를 쓰더군요. 나는 꽤 감동 받았습니다.

 

 

6.

탄핵 반대 집회에서 쏟아지는 극우 성향의 언사들이 너무 섬뜩하고 살벌하다보니 극우의 토양이 뭐냐는 진단도 제법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 중 흥미로운 것이 고립과 외로움이 극우를 배양하는 토양이라는 진단입니다. 고립과 외로움은 현대 정치에서도 큰 영향을 미치는데 극우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외로움과 고립감을 이용해 배타적이고 분열적인 메시지를 통해지지 기반을 형성한다는 거죠.

 

경계를 가를수록 고립과 외로움은 더 커질 겁니다. 그리고 내 경험으로 말예요.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의외로 경계를 가르는 습성이 있어요. “극우 보수 세력의 해고 사건을 맡아서 한 게 말이나 됩니까. 000 목사님의 이름에 먹칠을 한 겁니다.”는 발상도 그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지난 대선 때 윤석열을 찍은 사람을 통칭해 ‘2이라는 멸칭을 갖다 붙이는 행위도 보기에는 통쾌할지 모르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종류의 것이라 생각합니다.

 

상담은 변화를 품은 씨앗이라는 관점에서 상담 활동을 해왔던 내 입장에서는 고립과 외로움을 키우는, 그래서 긍정적 변화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경계를 가르는 습성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보수 단체에서 해고된 규호 씨를 돕고 나서 칼럼 하나를 쓴 게 있었는데요. 그 칼럼 제목이 인권은 경계를 가르지 않는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