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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복의 노동상담 이야기

[조광복의 노동상담 이야기] 아홉 번째 이야기, ‘소통’ 그리고 ‘소수자다움’ 혹은 ‘사회약자다움’

벌써 아홉번째를 맞은 <노동상담 이야기>입니다.  [편집자주]

 

아홉 번째 이야기, ‘소통’ 그리고 ‘소수자다움’ 혹은 ‘사회약자다움’

 

조광복

(전)청주노동인권센터 상담활동가

 

1.

20년 전이었습니다. 비가 무척 쏟아지던 밤이었습니다. 나는 차를 운전해서 시골의 한적한 도로를 가고 있었습니다. 도로 양쪽엔 논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개구리 소리가 사방의 논을 꽉 채우더니 올챙이에서 탈바꿈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 같은 작은 개구리들이 도로를 가로질렀습니다.

 

나는 차를 세워 전조등에 비친 개구리들을 살펴보았는데요, 어찌나 많던지 그 수에 놀랐고 이미 차바퀴에 깔려 죽은 개구리들이 부지기수라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들 어찌 하겠습니까? 다시 차에 올라 타 나름 천천히 운전해 갔는데요, 내 차에 깔려 죽은 개구리도 꽤 됐을 겁니다.

 

그때 소통이라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인간이 소통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도로가 어린 개구리들에겐 단절이요 때론 죽음이란 걸 알았습니다. 구체적인 실체를 잘 드러내지 않는, 뭉뚱그려진 단어인 소통은 강자가 자주 쓰는 언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감히 고개를 빳빳이 들고, 인간의 소통을 위한 인간의 전유물인 도로 위에 올라 탄 순간 죽음이라는 가차 없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어린 개구리들이 살려면 자기가 태어난 논에 고개를 처박고, 이동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고 조용히 있어야 하는 겁니다. 이 가정은 얼마나 비현실적입니까?

 

인간 사회에서도 이런 일은 제법 흔하게 벌어집니다. 물론 일터에서도 벌어집니다.

 

 

2.

민정 씨는 밝고 차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가 직장에서 처한 딱한 처지도, 꽤 진행된 우울증도 그녀의 밝은 천성을 완전히 덮진 못했습니다. 민정 씨는 지체상지기능1급 장애인입니다. 고등학교 때 화재로 큰 화상을 입었습니다. 민정 씨의 얼굴엔 불이 할퀴고 간 자국들이 선명합니다.

 

불은 그녀의 손도 녹였습니다. 손가락 근육이 손실되어 지체상지기능1급 장애인이 된 겁니다. 손가락을 오래 쓰는 일, 이를테면 컴퓨터 워드작업을 하게 되면 아주 심한 통증이 올라옵니다. 신체에 큰 부담을 주는 일도 하기 어렵습니다. 전체적으로 근육이 약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일을 원합니다. 우선은 먹고 살아야 하고 사회적 인간으로서 자기 존중감도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민정 씨는 선택할 직업이 많지 않습니다. 고심 끝에 웹 디자인을 배우는데요. 마우스 작업이 많아 팔과 손가락에 부담을 덜 주어섭니다.

 

민정 씨는 웹디자이너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고 규모가 작은 직장에 취업해 6년 동안 웹디자이너 경력을 쌓습니다. 그러다 공기업에 취업할 기회를 잡습니다. 정규직은 언감생심, 무기계약직도 아닌 기간제 계약직이긴 하지만.

 

 

3.

한국OOOO’이 민정 씨를 채용한 이유가 있었어요.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이 사업주의 성격을 국가 및 자방자치단체, 사업주, 공공기관으로 구분하고 그에 따라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정해두고 있기 때문이지요. ‘한국OOOO’은 공공기관이었어요.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28조의2(공공기관 장애인 의무고용률의 특례) 28조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공공기관, 지방공기업법에 따른 지방공사ㆍ지방공단과 지방자치단체 출자ㆍ출연 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출자기관ㆍ출연기관은 상시 고용하고 있는 근로자 수에 대하여 장애인을 다음 각 호의 구분에 해당하는 비율 이상 고용하여야 한다. 이 경우 의무고용률에 해당하는 장애인 수를 계산할 때에 소수점 이하는 버린다.
1. 202111일부터 20211231일까지: 1천분의 34
2. 202211일부터 20231231일까지: 1천분의 36
3. 2024년 이후: 1천분의 38

 

물론 의무고용률에 못 미치는 장애인을 고용하면 부담금을 납부하는 것으로 면피할 수는 있겠지만 공공기관의 경우 사회적 비난이 집중될 수 있겠지요. 여기서 한국OOOO’은 꼼수를 씁니다. 민정 씨를 채용은 하되 정규직도 아니요, 무기계약직도 아닌 기간제 계약직 즉, 1년짜리 비정규직으로 고용한 겁니다.

 

민정 씨는 한국OOOO’에 채용되어 2년을 잘 견디어냅니다. 하던 업무가 상시업무라 소망하던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습니다. 그리고 어엿한 노동조합 조합원이 됩니다. 공공기관에서 노동조합 조합원이 된다는 것, 이건 이 회사의 정식 직원이 됐다는 보증수표 같은 것이었습니다.

 

 

4.

민정 씨는 기간제로 채용되어 2년 동안 사내 홈페이지 관리 업무, 웹디자인 업무를 했습니다. 자신이 자격을 취득하고 경력을 쌓았던 분야이지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고 나서도 같은 일을 합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습니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고 2년 정도 지났습니다. 다른 부서에도 웹디자이너가 채용되었습니다. 그이도 무기계약직이었습니다. 그이는 채용되기 전의, 같은 웹디자이너 경력을 호봉으로 가산 인정받아 임금을 책정 받습니다.

 

그런데 민정 씨는 기간제 계약 기간 2년은 차치하고라도 그 전의 6년 경력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이것저것 따져보니 무기계약직으로 채용된 사람 중 민정 씨만 경력을 인정받지 못한 겁니다.

 

민정 씨는 밝고 차분한 사람이었는데요. 하필이면(!) ‘또박또박한사람이기도 했어요. 민정 씨는 인사팀장에게 면담을 신청합니다. 이번에 채용된 웹디자이너처럼, 그리고 다른 무기계약직들처럼 자기도 사회 경력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합니다. 비 흠뻑 내리는 밤, 고개를 빳빳이 들고 도로 위에 올라탄 어린 개구리들처럼, 민정 씨 역시 고개를 들고 무기계약직 호봉제도라는 도로 위로 뛰어든 겁니다.

 

인사팀장은 어이없어 했습니다.

“(팀장)장애인 의무고용으로 입사했기 때문에 임금이 낮은 것이고 사회 경력은 인정해 줄 수가 없어요.”

“(민정)국가가 배려한 장애인 의무고용이라는 이유로 사회 경력조차 인정이 안 되는 건 장애인 차별 아닌가요?”

“(팀장)경력 인정 안 되니까 그리 아시고 임금 조정 없이 디자인 업무를 할지 아니면 잡일을 할지 선택해요.”

 

 

5.

인사팀장과 면담을 하고 두 달이 지난 다음해 1월 민정 씨는 전혀 다른 직군인 행정지원직으로 발령 받습니다. 정규직의 경우 1~3년 마다 순환근무를 하지만 무기계약직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일입니다.

 

민정 씨에게 부여된 업무는 계속 해서 자판을 눌러 입력해야 하는 컴퓨터 워드 작업이었습니다. 손가락 장애가 있는 민정 씨로서는 심한 통증 때문에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1년여 동안 버텨냈지만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민정 씨는 다시 인사팀장을 만나고발하겠다고까지 말했습니다.

 

그러자 인사팀으로 발령 받습니다. 아무 일도 배정 받지 못한 채 덩그러니 책상 앞에 앉아 있기를 6개월, 다시 민정 씨가 항의를 하자 간헐적인 지출결의 업무를 주었습니다. 회사에 찍힌 민정 씨는 누구도 말을 건네지 않고 누구도 밥을 함께 먹지 않는 투명인간이 되어 갔습니다.

 

노조위원장도 몇 번 면담을 했지만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 위원장도 민정 씨 편은 아니었습니다. 공공기관은 노동조합과 사용자측이 정부 정책에 대하여 한배를 탄 운명이기 때문에 대체로 상호 우호적입니다. 게다가 정규직의 보직 순환이 활발하여 조합원이 때론 비조합원으로 바뀌기도 하고 비조합원이 다시 조합원으로 복귀도 하기 때문에 노조-비노조 가릴 것 없이 유대감이 깊은 편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인사팀장에게 찍힌, 특히나 장애인 고용촉진 제도를 통해 기간제를 거쳐 무기계약직으로 유입된 소수자민정 씨는 노조위원장 입장에서도 말썽 일으키는 천덕꾸러기였던 것입니다. 조합원을 보호해야 할 노동조합의 일관된 무관심은 참으로 아쉬웠습니다.

 

직원 고충처리 심사 책임자인 부원장도 면담을 했지만 오히려 더 밉보이는 원인이 됐습니다. 민정 씨는 다시 위해정보팀이라는 곳으로 발령 받았습니다. 코딩 작업을 하는 곳인데 역시 컴퓨터 자판을 눌러 입력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위해정보팀에서 인사팀장에게 민정 씨는 장애 때문에 여기서 일하기 힘들다고까지 말하였으나 발령은 그대로 시행됐습니다.

 

 

6.

민정 씨는 이런 터무니없는 처사에 대해 법의 보호를 받을 수는 없었을까요? 물론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 보호 규정을 두고는 있습니다만 법에 위반되느니 안 되느니 하는 송사 다툼은 오래 갈 것인데 이 직장에서 계속 근무해야 할 형편인 고립된 일개인이 회사를 상대로 민원을 넣기 또한 어려운 일이지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10(차별금지) 사용자는 모집ㆍ채용, 임금 및 복리후생, 교육ㆍ배치ㆍ승진ㆍ전보, 정년ㆍ퇴직ㆍ해고에 있어 장애인을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

 

민정 씨는 지속적으로 모욕을 받습니다. ‘해줄 수 있어도 안 해 준다.’, ‘웹디자인실 가려면 시험 봐서 재입사해라’, ‘지가 그렇게 신경 쓰고 다녀봐야 지 손해지, 쟤하고는 말하기도 싫고 얼굴 보기도 싫어.’, ‘하고 싶으면 지가 업무 찾아보라 그래이런 말들이 직접, 때론 다른 사람을 통해 민정 씨 가슴을 찌르고 들어왔습니다.

 

상담을 할 당시 민정 씨는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은 지 제법 되었고 자주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지역 사회에서 여성단체, 장애인단체, 인권단체들이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기관장과 노동조합 위원장을 면담한 후에야 비로소 문제는 해결됐습니다. 민정 씨는 일을 박탈당하고 다른 부서를 전전한지 3년 만에 원래의 직으로 복귀했습니다. 호봉 가산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7.

앞에서 했던 개구리 얘기는 20년 전 경험이지만 사실 지금도 늘 겪는 일입니다. 시골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 개구리들이 와글와글 울며 도로 위로 올라오는 걸 보면 지금도 여전히 마음이 불편합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이의 소통은 다른 생명에게는 단절이고 고통이고 때론 죽음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운전을 하면서 애꿎은 개구리들을 향해 올라오지마 올라오지마 거기 가만히 있어 소리치지만 이 불편한 상황이 어찌 고개 빳빳이 들고 도로를 올라타는 개구리 탓인가요?

 

사람 사는 사회에서 소통이라는 단어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또는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라고 생각해봅시다. 아무개로부터 들은 얘기입니다. ‘나 동성애자들 다 인정할 수 있어. 그 사람들 자유야. 뭐라 안 해. 근데 그냥 가만히들 좀 있어. 나대지 말고. 법 만들라 떼쓰지 말고 퀴어 축제니 이런 거 말고. 공원 같은데서 몸 밀착하지 말고 말야.’

 

나는 민정 씨에 대한 직장 상사의 태도, 노조위원장의 태도, 회사의 태도 모두가 위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민정 씨의 직장생활은 고개를 들고 자기의 권리를 주장한 순간부터 꼬인 겁니다. 그들이 보기에 민정 씨는 배려를 받아 생활하는 처지인 소수자다움’, ‘사회약자다움을 잃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수자, 사회약자를 사회 일원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들에게 소수자다움, 사회약자다움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뜻과 같습니다. 고개를 빳빳이 들거나 말거나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