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좋은 글을 보내주시는 <노동상담 이야기>도 열 번째를 맞았습니다! [편집자주] |
열 번째 이야기, 희미한 노동과 휴식의 경계
- 노인 돌봄 노동의 존중을 바라며
조광복
(전)청주노동인권센터 상담활동가
1.
노인 돌봄 직종과 처음 인연을 맺은 때가 2011년이었습니다. 요양원과 노인전문병원에 근무하는 요양보호사·간병사* 100여명의 노동부 집단 진정을 맡아 진행한 것이 첫 인연이었습니다. 요양보호사와 간병사들이 밤낮으로 근무하는데 법이 정한 연장근로수당과 야간근로수당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다는 것이 진정 요지였습니다. 내가 알기로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시행 이후 전국 최초로 노인 돌봄 영역의 노동 실태가 사회 문제로 떠오른 사건이었습니다.
* 요양급여가 적용되는 노인의료복지시설인 요양원은 반드시 국가 자격사인 요양보호사를 고용해야 하지만 노인전문병원은 간병사로 요양보호사 자격자를 고용할 의무가 없다. 다만 업무 내용은 요양원의 요양보호사와 노인전문병원의 공동간병을 담당하는 간병사가 거의 같다.
그 후로도 요양보호사들의 상담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해를 거듭해도 상담 내용은 엇비슷했습니다. 연장, 야간근로수당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다는 것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지요. 그 밖에 근골격계 질환이 산재가 아닌지,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해서 짐 싸들고 나왔는데 부당해고 아닌지, 입소자·보호자로부터 받는 스트레스, 시설 운영자의 비인격적인 대우, 입소자 사고에 대한 책임 부담 등이 뒤를 이었어요.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이 시행되고 요양보호사 제도가 도입된 게 2008년 7월이니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한때 떠오르는 직종으로 각광받았던 요양보호사는 기피 직종으로 낙인 찍힌 지 오래 됐습니다.
보건복지부 발간 <요양보호사 양성 표준 교재>는 요양보호사의 주요 업무를 분야별로 구분해두고 있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교재 속의 이야기입니다. 노인요양시설에 종사하는 요양보호사는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의 최전선에서 일합니다. 처우는 아주 열악합니다. 보건복지부가 사회복지시설 종사자의 처우를 규정으로 정해두고 있는 반면 요양보호사의 처우는 정해둔 것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죠.
** 노인요양시설에서 종사하는 요양보호사의 주요 업무는 섭취요양보호, 배설 요양보호, 개인위생 및 환경 요양보호, 체위변경과 이동 요양보호, 응급상황 대처 및 감염 관리 요양보호 등이다. 그 밖에도 입소 노인들과 말벗을 하고 의사소통을 돕는 일, 근무일지를 기록하여 보고하는 일 등을 병행한다.
2.
요양보호사 영순 씨는 요양원에서 격일로 일했습니다. 하루 24시간 일하고 하루 쉬고 하루 24시간 일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녀의 근로계약서에는 다음의 내용이 있습니다.
<근로시간> 격일 교대근무 08시~다음날 08시
<휴게시간> (주간) 12:00~13:00, 17:00~18:00
(야간) 23:00~05:00
영순 씨는 이 요양원에서 7~8명의 노인을 돌봤습니다. 그러니까 시아버지 혹은 시어머니 일곱, 여덟 명을 모시는 셈이죠. 사실 요양시설에서 요양보호사 한 명이 7~8명의 노인을 돌보는 일은 허다합니다. 주간 근무가 그렇다는 거고 야간근무 때는 돌봐야 하는 입소자 수가 늘어납니다. 20명 이상 돌보는 경우도 흔합니다. 법적으로 문제는 없을까요?
노인복지법 시행규칙 [별표 4] 노인의료복지시설의 시설기준 및 직원배치기준(제22조제1항 관련)
3. 시설기준 비고6. 직원의 배치기준
요양보호사 : 입소자 2.3명당 1명(치매전담실은 2명당 1명)
여기서 ‘입소자 2.3명당 1명’의 기준에 관해 보건복지부는 요양보호사 1명이 평균 2.3명을 보살피라는 것이 아니고 말 그대로 ‘배치’ 인원을 말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요양원은 반드시 야간근무를 동반하므로 교대제를 편성해야 하는데요***, 그 결과 한 사람의 요양보호사가 7, 8명의 입소자를 돌보더라도 전체 인원 대비 2.3명당 1명인 경우 문제가 없다는 논리입니다. 만약 요양원이 편법을 써서 요양보호사 인원을 부풀려 신고한다면 돌봐야 할 입소자 수가 더 늘어나게 됩니다.
*** 요양시설은 보통 24시간 격일 교대근무, 12시간 주야 교대근무, 3교대근무를 편성하는데 그 중 24시간 격일 교대, 12시간 주야 교대근무를 많이 편성한다. 3교대의 경우 인력을 많이 채용해야하기 때문에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요양원에 입소한 노인들은 상태에 따라 와상(보통 1등급, 일상생활에서 전적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 편마비(보통 2등급, 일상생활에서 상당 부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 그리고 치매로 구분됩니다. 규모가 큰 시설은 치매전담실을 두고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보통 한 침실에 와상, 편마비, 치매 노인들이 섞여 있어요. 당연히 와상 입소자와 치매 입소자를 돌보는 일이 가장 힘들지요.
입소자들은 가지고 있는 병증에 따라 특별한 조치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가래 때문에 수시로 석션(흡인) 조치를 해 주어야 할 입소자, 욕창 때문에 체위를 계속 변경해 주어야 할 입소자, 기저귀를 갈아 주어야 할 입소자, 대변볼 때 신문지를 깔고 대변을 보아드려야 할 입소자, 기저귀를 차지 않고 소변통을 대서 소변을 보아드려야 할 입소자, 인지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서 소리를 지르거나 밖으로 혼자 나가는 바람에 항시 주의를 기울여야 할 입소자 등이 있어요.
특별한 조치와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노인들 7~8명을 보살펴야 하는 현실에서는, 더욱이 야간에 돌봐야 하는 입소자 수가 20명을 넘나드는 현실에서는 요양보호사가 24시간 내내 침실을 떠나기가 가능치 않습니다.
그런데 영순 씨의 근로계약서는 23시~05시, 무려 6시간을 휴게시간으로 지정했습니다. 영순 씨는 그 시간 동안 침실을 떠나지 못하고 간이 침상에 드러누워 있다가 그때그때 필요한 조치를 합니다. 쿨쿨 잠이 드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사장도 이름만 내건 ‘바지 사장’이 있는 것처럼 휴게시간도 ‘바지 휴게시간’이 있습니다. 영순 씨의 근로계약서에 적힌 휴게시간이 그렇습니다. 임금을 주지 않기 위한 꼼수입니다.
순화 씨는 12시간 주야 교대근무를 하는데 역시 야간 휴게시간을 3시간 정해두고 있습니다. 하루는 야간근무를 하다 깜빡 잠이 들었어요. 근로계약서에서 지정한 휴게시간 중이었어요. 그런데 노인 한 분이 화장실 간다고 침상에서 내려오다 낙상해 갈비뼈가 골절됐습니다.
요양원은 순영 씨한테서 시말서를 받았어요. 그리고는 해고감이라고 말하면서 치료비 변상 얘기를 꺼냈습니다.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 휴게시간이라면 사실 순영 씨는 아무 책임이 없어요. 휴게시간은 노동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요양보호사들은 근무시간이든 휴게시간이든 입소자들의 사건 사고에 무한책임을 집니다. 사고가 나면 자신의 법적 권리를 생각하기도 전에 일단 주눅부터 들기 마련입니다.
근로기준법 제54조(휴게)
① 사용자는 근로시간이 4시간인 경우에는 30분 이상, 8시간인 경우에는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근로시간 도중에 주어야 한다.
② 휴게시간은 근로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3.
요양보호사들도 점점 권리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경선 씨 역시 24시간 격일 교대 근무하는데 임금을 못 받는 야간 휴게시간이 너무 길다는 것에 의문을 품고 자신의 업무 내용을 상세하게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선 씨는 어느 하루 동안 입소자 4명에 대하여 총 107회의 석션을 했는데 그 중 휴게시간으로 지정된 23시부터 05시 사이에 28회 했습니다. 다른 날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물론 체위 변경 등 다른 업무를 포함하면 야간 근무량은 훨씬 늘어나게 되죠.
24시간 격일 교대 근무하는 요양보호사의 야간 휴게시간이 5시간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리고 이 5시간이 명목만 휴게시간일 뿐 사실은 임금을 지급 받아야 할 근로시간에 해당한다고 가정해 보지요. 한 달을 편의상 30일이라 치면 격일 근무하므로 월 휴게시간은 15일×5시간=75시간입니다.
한편 밤10시부터 다음날 06시까지는 야간근로에 해당하여 별도의 가산임금인 야간근로수당(통상임금의 100분의 50)이 지급되어야 하고, 동시에 1일 8시간을 초과하는 시간은 연장근로시간에 해당하므로 연장근로수당(통상임금의 100분의 50)을 지급해야 합니다. 여기에 편의상 2025년도 최저임금인 시급 10,030원을 적용해 볼까요. 월 미지급 임금 계산식은 10,030원×75시간×2(기본임금 1, 야간 0.5, 연장 0.5)=1,504,500원입니다. 그러니 요양보호사들 입장에서 열이 안 받을 수 없는 것이죠.
대법원 판결 역시 요양보호사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야간 휴게시간이 사실상 사용자의 지휘감독 하에 있는 즉,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근로시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어요.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이 시행된 2008년 7월 이후부터 지금까지 시설 요양의 고질적인 문제로 자리 잡았어요.
4.
고령 사회로 접어든 한국사회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은 필요한 제도입니다. 그런데 이 제도를 설계할 때 요양보호사의 처우 문제는 전혀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회복지 종사자의 처우를 보건복지부가 직접 정한 것과는 다른 처사였습니다.
게다가 한 사람의 요양보호사가 7~8명의 입소자를 돌보는 현실은 요양보호사를 강도 높은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에 시달리게 하는 원인이 됐어요. 지난 2018년 한국장기요양학회가 발표한 '한국 요양보호사의 신체적 부담 현황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참여한 요양시설 종사자 중 70.4%(197명)가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하고부터 신체적 부담이 생겼습니다.
이들의 신체적 부담은 허리(55.8%), 어깨(43.1%), 팔(19.8%), 무릎(14.7%), 팔꿈치(8.1%) 순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근골격계 질환이 산재로 인정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요. 요양보호사의 나이가 50대 이상이 대부분이므로 자연적인 퇴행성 질환이라고 취급받기 때문입니다.
**** <한국 요양보호사의 신체적 부담 현황에 대한 연구 : 서울·경기도를 중심으로>, 정아름 · Higashihata Hiroko
상담을 하다보면 민망한 얘기도 듣습니다. “치매 노인인데요. 하루는요. 바지를 홀랑 벗고요, 거기를 빳빳이 세우고는요, 아줌마 이리 와봐, 이리 와봐 하는 거예요.”요양보호사에 대한 성희롱, 성추행도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입니다. 시설도 시설이지만 성희롱, 성추행, 요양서비스와 관련 없는 가사노동 시키기 등 감정을 손상시키는 노동은 개인별 가정을 방문하는 재가요양에서 심합니다.*****
***** 2022년 1월 서울시 어르신돌봄종사자 종합지원센터가 발표한 ‘요양보호사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서울 지역 여성 요양보호사 221명 중 44.3%인 98명이 성희롱·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0년 말까지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한 인원은 193만5229명이다. 2020년 기준 간호조무사는 72만5356명, 간호사 39만1493명, 영양사 14만9050명, 의사 11만5185명이었습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가진 숫자가 의료 인력을 모두 합친 숫자보다 많습니다. 그런데 자격증 취득자 중 24.8% 수준인 47만9253명만이 현장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자격을 취득한 요양보호사의 75.2%인 145만5976명이 속칭 '장롱면허'인 겁니다.******
****** 최경숙 서울시어르신돌봄종사자종합지원센터장은 ‘2030년 국내 요양보호사는 11만 명 이상 부족할 것’으로 예상했다.(출처. 여성경제신문)
노인을 돌보는 사람이 존중 받지 못하는데 그 돌봄의 대상자인 노인이 존중 받을 수 있을까? 이런 문제는 보통 따로 가지 않습니다. 동전의 양면인 거죠. 요양보호사에 의한 노인 학대, 요양서비스의 낮은 질 문제도 심심치 않게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물론 개인의 자질에도 문제가 있겠지만 구조적인 문제를 계속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국가가 나서서 ‘노인 돌봄 노동의 존중’을 설계해야 합니다. 더 이상 늦출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조광복의 노동상담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광복의 노동상담 이야기] 열한 번째 이야기, 사방이 벽, 고립된 권리 (4) | 2025.06.12 |
---|---|
[조광복의 노동상담 이야기] 아홉 번째 이야기, ‘소통’ 그리고 ‘소수자다움’ 혹은 ‘사회약자다움’ (2) | 2025.04.08 |
[조광복의 노동상담 이야기] 여덟 번째 이야기, 인권은 경계를 가르지 않는다 (0) | 2025.03.10 |
[조광복의 노동상담 이야기] 일곱 번째 이야기, ‘상품’의 유혹 - ‘알 게 뭔가요?’ (0) | 2025.02.14 |
[조광복의 노동상담 이야기] 여섯 번째 이야기, 콩깍지가 되어 콩을 삶는 자 (0) | 2025.0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