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웹진 [e-품]의 <단!마디> 꼭지는 평등사회노동교육원 단병호 대표(민주노총 지도위원, 17대 국회의원)의 노동 및 사회현안에 대한 논평과 제언을 싣습니다. [편집자주] |
문재인 정부의 노동관계 3법 개정안에 대하여
2019. 10.
문재인 정부는 지난 9월 24일 국제노동기구(이하 ILO) 기준협약 비준 안을 국회에 회부했다. 그리고 10월 1일에는 비준과 관련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 등의 3개 법안의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이어 4일에는 정부의 발의 안으로 국회에 접수까지 마쳤다. 이제 ILO기준협약 비준은 국회로 공이 넘겨졌다.
현재 ILO에는 세계 187개 국가가 참여하고 있고, 한국은 1991년 12월 참가국이 되었다. ILO는 각 회원국이 지켜야 할 기준협약 189개를 채택하고, 각국이 이를 비준함으로서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질 수 있도록 권장하고 있다. 특히 1998년 ILO는 ‘노동에서의 기본원칙 및 권리에 관한 국제노동기구 선언과 그 후속조치’에서 제시한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 아동노동 금지, 균등대우 등과 관련된 8개 협약을 ‘기본협약’(이를 ‘핵심협약’으로 부르기도 함. 필자는 공식 명칭인 ‘기본협약’으로 명기하는 것이 본래를 뜻을 더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으로 채택했다. 한국은 8개 기본협약 가운데 ‘균등대우’와 ‘아동노동 금지’에 관련된 4개의 협약은 비준하였으나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 금지’에 관련된 4개의 협약은 아직 비준하지 않고 있다.
노동계는 ILO기본협약의 비준을 오랜 기간에 걸쳐 끈질기고 또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금지는 노동자의 노동권과 인권을 구성하는 핵심 요체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당시 노태우 정부)가 1991년 ILO에 가입할 때 기준협약의 국회 비준을 약속했지만 그 이후로 몇 차례의 정권이 바뀌고 30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났음에도 기본협약은 비준되지 않았다. 이는 그만큼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였음을 뜻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만 보면 문재인 정부가 비준 안을 국회에 회부하고 관련법의 입법화를 추진하는 데 나름 긍정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비준과 입법화는 그렇게 간단하게 볼 문제만은 아닌듯하다.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정부가 비준에 따른 관련법 개정안이 ILO기본협약의 내용을 올바르게 담고 있느냐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시의성과 법 개정 가능성의 전망을 어느 정도 높게 볼 수 있느냐이다.
우선 개정법안의 긍정적인 면을 살펴보자. 해고자, 실업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한 것은 노동계가 오랜 동안 요구해 왔던 것으로 크게 환영할 만하다. 퇴직공무원ㆍ교원의 노조 가입과 소방공무원에게 노조 가입을 허용한 것도 크게 환영할 만하다. 전교조와 공무원노조의 합법성 문제가 더 이상 시비꺼리가 되지 않아도 된다.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 규정을 삭제하는 내용도 담겼다. 당연한 것이지만 환영할 만하다. 위의 내용들은 노동운동의 성장과 발전을 크게 어렵게 해 왔던 대표적인 독소 조항들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노동관계법 개정안은 노동운동을 가로막아 왔던 큰 장애물 하나를 치울 수 있다는 의미를 충분히 가질만하다.
다음은 정부의 개정법안 가운데 어떤 한계와 개악의 내용을 담고 있는지 살펴보자. 개정안은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조 가입은 허용하면서도 “사업 또는 사업장에 종사하는 근로자가 아닌 조합원은 사업자의 효율적인 사업 운영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함으로써 이들의 노조 활동을 사실상 봉쇄하고 있다. 이는 ILO기본협약에서 “노조 가입과 활동에서 재직자와 비재직자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리고 특수고용노동의 노동자성과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내용을 담지 못하고 있는데 이 또한 ILO기본협약의 내용과는 배치된다.
공무원노조와 교원노조법 개정안 역시 ILO기본협약의 내용을 제대로 담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공무원의 직급에 의한 노조가입 제한은 삭제하였지만 여전히 직무에 의한 제한은 그대로 두고 있어 사실상 노조 가입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무엇보다 개정법은 공무원노조와 교원노조의 단체행동권 모두를 현재와 같이 부정하고 있다. 물론 공무원의 단체행동권과 관련해서는 아직 ILO기본협약으로 체결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ILO 이사회 산하 결사의자유위원회는 “공공 당국의 대리인인 공무원이거나 엄격한 의미에서의 필수적 사업에 종사하는 자에 대해서는 파업권의 제한이 허용될 수 있다”고 하고 있어 파업권은 존중하되 불가피한 경우 부분적으로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 ILO협약의 기본 취지다. 단체교섭권은 당연한 권리로 보장하고 있다.
정부는 ILO기본협약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내용을 끼워 넣어 정부 개정안이 개악 안이라는 신랄한 비판을 자초했다.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한 것과 ‘쟁의수단으로 사업장 점거 금지’를 명시한 것이 그것이다.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이는 것은 ILO기본협약에서 “노동자에게 유리한 기존 노동법의 불이익 변경을 금지”하고 있는 것과 배치된다. 그리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적 상황과도 거꾸로 가려는 것과도 같다. 단체협약은 노동자와 사용자간의 협상과 타협의 결과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역(力)관계의 산물이다. 냉정하게 보면 기간의 길고 짧음은 노사 간의 유ㆍ불리의 본질은 아니다. 그럼에도 기간을 연장하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사회적 경제적 상황과 그에 따른 노동환경의 변화 등을 제대로 담아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은 최소한 현재의 2년을 유지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노동계는 정부의 이번 개정안이 긍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 수용할 수 없는 개악 안으로 규정하고 나섰다. 개정안에는 ‘쟁의수단으로 사업장 점거 금지’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는 건드리지 말았어야 하는 것을 건드렸다. 현재 노조 형태는 산별노조 형태를 띠고 있지만 여전히 기업별 노조로 운영되고 있다. 이는 자본이 산별교섭을 적극 기피해 왔고, 그간 모든 정부가 자본에 산별교섭에 대한 제도적 의무를 부과하는 것을 꺼려왔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업장 내의 쟁의행위를 금지한다는 것은 노조가 사용자에게 실효성 있는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길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과 같다. 그 동안 노동조합이 파업했을 때 자본은 천편일률적으로 불법 파업으로 유도하고, 용역을 동원해 사업장을 봉쇄하고, 대체인력을 사용해 사업장을 가동하는 패턴을 취해 왔다. 이러한 한국적 상황은 무시한 채, ILO기본협약과도 무관한 내용을 노사 간의 균형이라는 이유를 들어 은근슬쩍 끼워 넣기 씩으로 넘어가려는 것은 촛불정부를 자임해온 문재인 정부가 취할 태도는 아니다.
또 다른 문제는 시의성이 있느냐이다. 지금 조국 사수와 조국 퇴진이라는 두 힘이 거세게 부딪치고 있다. 어느 시점에서 어떤 정치적 타협이 이루어져 국회가 정상적으로 입법 활동을 할 수 있을지 지금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 내년 4월이면 20대 국회 임기가 끝나게 되고, 그때까지 처리되지 않은 모든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정황으로만 보면 이번 개정안이 법제화 될 수 있는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작년부터 그렇게 요구를 해도 뒷짐 지고 있다가 이제 와서 비준과 법 개정이냐’며 그 저의를 순수하게 보지 않으려 하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이런 비판에 대해 정부가 어떤 의지를 보여 줄지 지켜 볼 일이다.
이번 정부의 ILO기본협약 비준에 따른 3개의 노동관계법에는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를 동시에 담고 있다. 그래서 총량을 가름하는 데 있어 보는 사람에 따라서 저울 기울기의 방향과 폭도 제 각각일 수 있다. 부정적인 요소를 얼마나 제거하고, 긍정적인 요소는 얼마나 채울 수 있느냐가 피할 수 없는 노동계의 몫으로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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