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웹진 [e-품]의 <단!마디> 꼭지는 평등사회노동교육원 단병호 대표(민주노총 지도위원, 17대 국회의원)의 노동 및 사회현안에 대한 논평과 제언을 싣습니다. [편집자주] |
한국의 산나 마린에게
2019. 12.
요즘 지구 반대편에 있는 조그마한 나라 핀란드에서 올해 34세의 젊은 여성 산나 마린(Sanna Marin)이 총리로 선출되어 화재가 되고 있다. 그의 정치적 성장은 참으로 화려하다. 그는 27세 때 탐페레시의회 의원이 되었고, 29세에 사회민주당 부의장을 거쳐 30세에 국회의원이 되었다. 31세로 교통부 장관 재직 중에 총리가 되었다. 그야말로 7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고도의 압축적인 정치 성장을 이뤄냈다.
총리가 된 이후 그의 행보에도 거침이 없어 보인다. 19명 내각 전원을 40대 이하의 젊은 피로 채웠다. 그리고 내각의 중요한 자리라 할 수 있는 교육장관(32세), 재무장관(32), 내무장관(32세) 등에는 자신과 같은 또래인 30대 여성을 기용했다. 또 내각의 삼분에 이에 달하는 열두 명을 여성으로 채웠다. 그가 “저는 나이나 성별에 대해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한 것처럼 실재 그의 머리에는 나이와 성별 의식은 아예 없어 보인다. 당당하고 거침없는 산나 마린 총리의 행보에 지지의 박수를 보낸다.
30-40대의 지도자를 둔 나라는 핀란드 말고도 더 있다. 오스트리아 ‘제바스티안 쿠르츠’ 총리는 33세이고, 우크라이나 ‘알렉세이 곤차록’ 총리는 35세이고, 뉴질랜드 ‘저신다 아던’ 총리는 39세이다. 40대 지도자를 둔 나라는 이보다 더 많다. 프랑스, 아이슬란드, 그리스, 폴란드, 스페인, 캐나다 등의 최고 지도자들도 모두 40대이다. 이들 지도자들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겠지만 세상을 좀 더 젊게 만들어가는 소중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보아야 할 점이 있다. 이들 30-40대의 지도자를 둔 나라들 모두 우리와는 다른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다. 이들 국가는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점에 대해 진지하게 관심을 가져보아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는 연대와 협력, 권력의 분점을 전재로 하는 정치체제이다. 이런 정치체제가 연대와 상생의 정치·사회적 문화를 만들어온 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런 정치체제였기 때문에 협치의 정치도 가능하고 더 나아가 세대교체까지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에서 이런 새로운 정치를 기대해 볼 수는 없을까? 물론 현재 우리의 상황에서는 언감생심, 꿈에서조차 생각해보기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권력을 독점하는 대통령 중심제의 양당체제의 정치 구조다. 그것이 얼마나 독점적이고 폐쇄적인 정치구조 인가는 익히 보아왔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국회의원의 비례성을 약간 높이는 문제를 놓고 이렇게 야단법석을 떨고 있지 않는가?(지금으로써는 심상정의원의 정치개혁 안마저 심각하게 훼손되어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거기다 우리는 유교문화의 뿌리가 깊다. 예컨대 유교문화 중에서 부위부강(夫爲婦綱)이나 장유유서(長幼有序) 등은 성차별과 꼰대문화를 만들어 온 사상적 뿌리가 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성차별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이유도, 현 정부 내각의 평균 나이가 60세가 넘고 국회의원의 평균 나이가 58세가 넘는 것도 이런 사회문화적 요소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이와 같은 현상은 비단 정치 영역의 문제 은 아니다. 우리사회 전반의 문제이다.
이런 사회현상을 생각하면 30-40대 지도자를 둔 국가들의 이야기가 꿈속의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은 없다. 종이 한 장 차이의 의식이 세상을 통째로 바꾸기도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 내려놓는 것이지만, 가장 현실성이 없는 방안이다. 지금 각 당은 총선을 몇 달 앞두고 젊은 세대의 지지를 얻기 위해 ‘세대교체’니 ‘물갈이’니 하는 온갖 좋은 말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물론 이 말을 믿을 국민들, 특히 젊은 세대들은 별로 없을 것으로 본다. 그들은 의석하나를 더 얻을 수만 있다면 내일이면 들어날 거짓말도 서슴없이 한다.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모르는 것도 아는 채하고 작은 것을 과장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 미래를 미래세대에게 맡기는 미덕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 나무에서 물고시를 찾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가장 바람직하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젊은 세대가 직접 나서는 것이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하지 않았나. ‘현실이 고통스럽다’ ‘꿈을 포기 했다’ ‘미래가 없다’고 하면서 침묵하는 것은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것은 가장 나약한 자의 변명에 불과하다. 좌절 대신 분노하고, 침묵 대신 행동할 때 세상은 딱 그만큼 바뀌게 된다. “마, 그만 해묵어라!!!” 이 한 마디를 내뱉기가 그렇게 어려울까? 말이 아닌 몸짓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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