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복 선생님이 1년간 연재해주신 <노동상담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고생해주신 필자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편집자주] |
마지막 이야기, 이제는 ‘내부고발’을 독려할 자신이 없습니다
조광복
(전)청주노동인권센터 상담활동가
1.
명함에 ‘노무사’라고는 새겼지만 자칭‘상담꾼’즉, 노동상담 활동가로 살아가던 시절, 내게 붙은 또 다른 호칭이 있었으니 ‘내부고발 전문가’였습니다.
나와 인연을 맺어 여러 사람들이 내부고발자로 나섰습니다. 그 중엔 사회에 반향을 일으킨 사건들도 있습니다. 대개는 자신의 문제로 상담을 받으러 찾아왔다가 거듭 되는 상담 끝에 내부고발자로 나섰습니다.
2.
인연을 맺었던 여러 사람이 떠오르는군요.
故 반00 님은 kt의 관리자로 일하다 퇴직했습니다. 퇴직 후 여러 해가 지난 뒤 나에게 상담을 받으러 찾아왔습니다. 그걸 인연으로 그 동안 kt가 부인해왔던, 인간학대로 악명 높은 인력퇴출프로그램을 팀장인 자신이 kt로부터 하달 받아 퇴출 대상자로 분류된 부하 직원에게 실행하였다고 양심 고백했습니다. ‘인력퇴출프로그램’이란 kt가 경영상의 이유로는 합법적으로 정리해고를 할 수 없으니 특정 노동자들을 지목하여 지속적으로 학대하여 스스로 못 견디고 퇴직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설계한 학대 시나리오입니다.
많은 노동자들을 중등도 우울증에 빠뜨리고 또 많은 노동자들을 급사와 자살로 내몰았다고 지탄 받은 kt 인력퇴출프로그램의 실행 경로가 반00 님의 육성과 문건을 통해 밝혀졌습니다. 팀장 재직 때 kt가 하달하여 지시한 시나리오대로 부하 직원을 학대하면서 우울증에 걸렸던 반00 님은 여러 해가 지난 뒤 목숨을 끊었습니다. 양심을 고백해서 kt의 노동학대 행위를 밝히는데 크게 기여를 했건만 본인은 우울증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던 겁니다.
전00 님은 민간업체가 지자체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공공하수처리장에서 과장으로 근무했습니다. 직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나와 계속 상담을 해 왔습니다. 그러던 차에 자신이 근무하는 공공하수처리장이 여러 해에 걸쳐 상습적으로 직원들로 하여금 야밤중에 정수시설을 거치지 않고 오폐수를 흘려보내왔고 그걸 감추기 위해 데이터를 조작했던 사실을 나에게 얘기했습니다. 전국적으로도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인데 주도한 자는 예외 없이 징역형을 선고 받아왔던 범죄행위입니다.
이 문제를 가지고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나는 지역 사회와 검찰에 알려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전00 님으로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 일에 동원된 자신은 물론이고 동료 직원들이 함께 처벌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민간업체는 위탁 해지 될 것이고 소속 직원들이 고용승계에서 배제될 우려도 있었습니다. 전00 님은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검찰과 지역 사회에 자신의 양심을 고백했습니다.
모 시내버스회사에서 과장으로 근무한 임00 님도 생각나는군요. 대표이사와 어용노조 위원장 그리고 실무 담당자인 임00 자신이 야합을 해서 징계규정을 이미 작고한 전 대표이사 시절에 변경한 것처럼 사문서를 위조해 위원장 반대세력을 징계해고하고 역시 반대세력인 기사들을 감시할 목적으로 시내버스 회사에 설치된 cctv의 녹음시설을 법을 위반하여 비밀리에 작동시켜 온 사실이 핵심 요지였습니다. 임00 님이 입을 열면 지역 내 동종업종의 취업길이 막힐 건 자명했죠. 임00 님은 자신의 재취업을 포기하고 양심을 고백했습니다.
위험을 감수한 내부고발자의 용기 덕에 세상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었습니다. 나는 ‘내부고발 전문가’답게 상담을 통해 만난 ‘내부고발 예비자’에게 집요하게 내부고발을 독려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이제는 더는 그렇게 할 자신이 없습니다.
3.
내부고발은 양심고백을 동반한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내부고발자는 자신이 속한 기업`조직`기관의 책임자가 저지른 부정한 행위에 가담했거나 소극적으로 대처했거나, 알고도 그냥 넘어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정한 행위가 있었을 때 즉시 내부고발을 한 경우보다는 우여곡절을 거쳐 시간이 흐른 뒤 내부고발에 나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폭력 피해, 학폭 등 사회적 폭력의 피해, 내부고발자가 소속 집단 내에서 받은 피해 등이 쌓이고 쌓여, 그리고 이 분들과 연대해 온 인권단체들의 활동들이 함께 쌓여 지금 이 사회에서 적어도 다음의 행위는 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에 도달했습니다.
“왜 그때는 가만히 있다가 지금 와서 시끄럽게 하느냐”
“다른 의도가 있는 거 아니냐”
“000 앞길 막을 일 있느냐”
4.
이 글의 본론은 이제부터 시작됩니다.
2021년 하반기에 벌어진 일입니다. 고통 받는 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노동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설립된 어느 노동인권단체에서 소장으로 활동하는 김00 활동가는 한 여성노동자를 상담합니다. 지자체로부터 위탁받아 여성 상담을 전담하는 한 공공기관에서 벌어진 직장내괴롭힘 피해 상담이었습니다. 법정수당 산정 문제가 얽힌 직원들에게 기관이 기존 임금보다 삭감된 급여를 내용으로 한 변경된 근로계약을 제시했는데 다들 퇴사를 하고 이 직원 한 명만 퇴사도 하지 않고 근로계약에 서명도 하지 않았다는데요.
이 직원을 향하여 기관의 관리자들이 주동한 직장내괴롭힘이 시작되었다는 겁니다. 집단 따돌림, 사직 강요, 과다한 업무 지시 등의 괴롭힘 행위를 하다 고용노동부로부터 시정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러자 괴롭힘은 더 포악해져서 피해 노동자를 동료들에 대한 괴롭힘 가해자로 몰아가면서 업무를 배제한 채 그 동안 폐쇄되어 왔던 장소로 출근할 것을 명하고, 피해자가 모르도록 기관의 이메일과 비번을 변경하고 피해자를 사회복지시설정보시스템 등록자에서 삭제하고 피해자가 사용하던 업무용 컴퓨터를 포맷시키는 등 피해자를 직장 동료와 업무로부터 격리시켰습니다. 여기까지가 개략적인 상황인데요,
그런데 하필이면 이 기관의 대표자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력 정치인의 부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필이면 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력 정치인’과 김00 활동가가 소속된 노동인권단체 대표는 서로 절친한 사이였습니다.
피해 노동자는 돌고 돌아서 김00 활동가와 상담을 합니다. 그리고 노동인권단체 대표도 김00 활동가가 상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활동가의 노동인권 활동을 결코 이래라 저래라 간여한 바 없던 노동인권단체의 대표는 김00 활동가가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을 잠시 보류할 것을 지시하고 일체의 관련 자료를 자신에게 줄 것을 요구합니다.
그렇게 지원 활동이 유보된 사이에 피해자는 인사위원회에 회부되는 등 신변에 대한 압박의 강도는 높아집니다. 김00 활동가는 단체 대표에게 ‘가해자 쪽 기관 대표의 얘기만 듣지 마시고 피해자를 만나서 피해자 얘기를 들어보시라’고 요청했으나 묵살됩니다. 노동인권단체의 대표가 노동인권을 박탈당하고 있는 피해 노동자와 소통하지 않고 가해자 측과 소통하는 비정상적인 일이 지속됩니다.
김00 활동가는 노동인권단체 대표와 다시 전화 통화를 합니다. 김00 활동가는 감정이 복받쳐 울면서 통화했다고 합니다.
“대표님!(사실 더 정확한 호칭이 있으나 대표라 하겠습니다) 상황이 더 심각해져서 기자회견을 하려고 합니다.”
“하지 마세요”
“대표님! 우리 인권 단체(더 정확한 워딩이 있습니다만 이렇게 씁니다)가 이러면 안 됩니다. 대표님이 개인적으로 이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진행하지 마세요.”
김00 활동가는 ‘대표의 목소리는 부탁조가 아니라 단호하고 싸늘한 어투의 명령조였다’고 말합니다. 김00 활동가도 보통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단체가 기자회견을 하도록 넘기겠다고 받아칩니다. 그걸 막을 순 없었겠죠. 그래서 노동인권단체가 피해 노동자를 버리고 노동인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전혀 엉뚱한 단체가 피해 노동자를 위해 나서는 참 낯부끄러운, 활동가에게도 노동인권을 표방하는 단체에게도 ‘새드 엔딩’인 한편의 사건이 막을 내립니다.
이 글을 쓰는 제가 왜 이 사실을 생생하게 기억하는가 하면 이 당시 김00 활동가가 나에게 울면서 복받친 감정을 쏟아냈기 때문입니다.
5.
노동인권단체의 대표는 이해를 못할 수도 있겠으나 노동인권을 소명으로 삼고 활동하는 활동가에게 이 사건은 크게 정신적인 내상을 입혔습니다.
이 사건은 복잡할 것이 하나 없습니다. 피해 노동자가 어떤 사람이었느냐, 피해 사실이 있느냐 없느냐 등등 주로 가해자 측이 변명하는 것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노동인권을 소명으로 삼는 단체의 대표가 피해자를 만나달라는 활동가의 요청을 묵살하고 가해자의 입장에 선 기관의 대표자와만 소통한 채 활동가가 그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선 게 핵심입니다. 그 기관 대표자의 남편이 유명한 정치인이자 절친이라는 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만한 이유가 없습니다. 왜? 노동인권단체 대표가 ‘나 이렇게 아프니 내 말 좀 들어주세요’라고 호소하는 노동자를 ‘결코’ 만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관계가 얽혀서 이 무대에 내가 뛰어듭니다. 김00 활동가가 이 문제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을 나에게 상의한 것이죠. 여기서 나는 부끄러운 일을 하게 됩니다. 김00 활동가와 내가 각별한 관계였지만 그 노동인권단체의 대표와 나와의 관계 역시 각별했기 때문이죠.
나는 이 문제를 더 이상 확대시키지 않고 묻고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내 원대로 됐습니다. 대표가 노동인권 활동을 막아선 이 사건을 그 단체의 운영위원들도 알지 못한 채 넘어갔습니다. 이 단체의 대표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 활동가에게도 운영위원들에게도 사과한 바 없습니다. 그렇게 이 사건은 조용히 묻혔습니다.
6.
이 노동인권단체는 계속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것까지 이 글에서 쓸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후 벌어지는 모든 어려움은 2021년에 발생한 즉, ‘대표가 개인의 사적인 관계 때문에 소속 활동가의 노동인권 활동을 막아선 그 사건’의 사족에 불과하다는 얘기는 하고 싶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서도 노동인권단체가 잘 될 거라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그 사건이 치유되지 않고 어쩔 수 없이 묵힌 것에 불과한데 그 대표와 활동가 사이에 무슨 신뢰가 있겠습니까? 대표는 자신의 민낯을 활동가가 보아버렸으니 얼마나 그 활동가가 불편할 것이며 활동가는 그 대표를 볼 때마다 때론 화가 나고 때론 활동가로서 비겁했다는 자책과 수치심도 들텐데 둘 사이에 화기애애의 기운이 감돌리 있겠습니까? 그게 가능하다면 활동가의 영혼이 빠져나간 대표의 충직한 ‘충복’일 뿐이지요.
다른 여러 현안 문제들이 그때그때 해결되지 않은 채로 쌓이면서, 활동가의 감정도 쌓이면서 2025년 폭발합니다. 김00 활동가는 소장직을 사임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운영위원회에서 이 단체를 이 지경까지 만든 데는 대표와 운영위원회 책임이 크니 총 사퇴할 것을 요구하면서 쌓였던 감정을 쏟아냈는데 이때 2021년도에 대표와 활동가 사이에 발생한 사건을 꺼내놓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만 두려면 조용히 그만 두지 왜 시끄럽게 하느냐’, ‘3년 전 일을 지금 꺼내서 뭐하느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다른 운영위원들은 죄다 침묵합니다.
김00 활동가의 발언을 ‘내부고발’이라는 다소 무게감 있는 행위라고 할 수 있느냐는 차치하고 적어도 우리가 많은 희생과 노력으로 도달한 즉, “왜 그때는 가만히 있다가 지금 와서 시끄럽게 하느냐, 다른 의도가 있는 거 아니냐, 000 앞길 막을 일 있느냐” 따위의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는 그날 그 순간 노동인권을 표방하는 이 단체에서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7.
내가 김00 활동가를 대변하여 이 단체가 겪고 있는 난맥상의 원인에 대한 내 의견을 적어 이 단체에 제출합니다.
이 의견을 쓰면서 부끄럽게도 나는 자기검열을 합니다. 이 난맥상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2021년도에 벌어진 사건임에도 그리고 3년여가 지나 이 사건을 꺼내놓은 김00 활동가에게 대한 운영위원들의 태도 또한 인권단체로서는 용인될 수 없는 심각한 것임에도 이 문제를 다 빼고 에둘러서 적습니다.
이 문제들을 중요하게 다루는 순간 더 이상 원만한 화해는 없을 거라는 나의 비겁한 미련이 또 문제를 회피하게 만들었습니다.
8.
kt 관리자 故 반00님이 생각납니다. 반00 님을 내부고발자로 세우기 위해, 이 사람이 나에게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한 달 동안 혼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거의 매일 만나면서 함께 밥을 먹고, 반주도 한 잔 하고, 언성을 높여 다투기도 하고, 함께 무작정 걷기도 하고, 그리고 이 노동인권단체의 대표가 머무는 곳에 반00 님을 모시고 가기도 했습니다.
이제 더는 그렇게 할 자신이 없습니다. 노동인권을 표방해 온 이 단체 대표의 작태와 이 단체 운영위원들의 작태와 중요한 순간마다 무마해버리려고 하는 나의 비겁함을 목도하면서.
(사족)
이 단체의 이름과 이 단체 대표자의 이름을 적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결자해지하기를 바란 것인데 이게 또 후회할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조광복의 노동상담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광복의 노동상담 이야기] 열한 번째 이야기, 사방이 벽, 고립된 권리 (4) | 2025.06.12 |
---|---|
[조광복의 노동상담 이야기] 열 번째 이야기, 희미한 노동과 휴식의 경계 (0) | 2025.05.12 |
[조광복의 노동상담 이야기] 아홉 번째 이야기, ‘소통’ 그리고 ‘소수자다움’ 혹은 ‘사회약자다움’ (2) | 2025.04.08 |
[조광복의 노동상담 이야기] 여덟 번째 이야기, 인권은 경계를 가르지 않는다 (0) | 2025.03.10 |
[조광복의 노동상담 이야기] 일곱 번째 이야기, ‘상품’의 유혹 - ‘알 게 뭔가요?’ (1) | 2025.0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