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드’ 이야기(3) : 과거의 누드화는 현대의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이충열(화사)
여성주의 현대미술가
폼페이 발굴이 시작된 것은 1748년이었습니다. 고고학이라는 학문도, 과거의 유물을 통해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는 개념도 제대로 발달하기 전에 오로지 고대 도시의 보물을 찾겠다며 땅을 파헤쳤던 것이지만요.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순식간에 묻혔던 도시 폼페이에는 고대 로마인의 생활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답니다. 하지만 ‘너무 노골적’이라는 이유로 일부만 공개되고, ‘로마는 타락해서 멸망했다.’고 해석하면서 통치를 위해 성(性)을 통제하는 데에 유용한 자료가 되기도 했어요.

폼페이의 벽화는 인간의 몸과 성생활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성별에 따라 주도권에 정해지거나 참여자의 수가 정해지지 않은 다양한 성적 실천이 벽 위에 그려져서 일상 속에 놓이며 삶의 일부로 공유되었어요. 그러나 중세에 들어서면서 몸은 감추어야 할 것으로 변했습니다. 기독교적 금욕주의 속에서 나체는 죄와 수치의 표지가 되고, 몸은 가려지고 통제되어야 할 것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임신을 위한 ‘정상적인 성관계’가 규율로 정해지면서, 가시화되던 욕망은 억압되고 성은 죄악의 근원처럼 여겨지게 된 것입니다.
르네상스는 바로 이 사라진 몸을 다시 불러내는 시기였어요. 그러나 권력을 독점한 남성의 욕망은 신화 뒤에 숨긴 채로, 여성의 몸이 ‘아름다운 이미지’로 재구성되었습니다. 마치 창세기에서 창조주가 자신의 만든 것을 보고 만족스러워한 것처럼(창세기 1장에는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표현이 7번이나 나옴!), 아카데미를 거치며 지식 권력을 갖게 된 남성 화가들은 이성애만 허용된 사회에서 ‘보기에 좋은’ 모습으로 여성의 몸을 정교하게 조직하며 부와 명성을 얻었어요.

현실 속 특정한 개인을 그린 것이 아니라 ‘신화 속 이야기’라는 안전장치를 만들어서 허용 가능한 그림으로 만들었던 <비너스의 탄생>와 달리, <잠자는 비너스>는 서사를 제거하고 몸 자체를 보게 만든 최초의 누드화라고 해요. 조르조네가 시작해서 그의 제자인 티치아노가 완성했다고 알려진 이 그림은 “에로틱한 신체의 전원화”라는 장르를 확립하면서 누드와의 기본 공식을 만들어냈고, 이후로 이러한 누드화가 수 세기 동안 인기를 얻게 되었답니다.

누드화가 크게 유행하기 시작한 16세기의 베네치아는 중세부터 이어온 지중해 무역의 패권을 유지하려고 고군분투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누드화는 성을 소유할 수 있었던 전통적 봉건 귀족이나 신흥 귀족들에게 ‘유행템’이었고, 사업이나 정치 파트너가 오면 누드화를 보며 요즘 말로 ‘아이스 브레이킹’을 했다고 해요. 당시에 자유롭게 다니면서 사업이나 정치를 할 수 있으려면 남성이어야 했다는 걸 아시겠지요. 그러니까 누드화는 남성이라는 공통점을 확인하며 친밀성을 쌓는 ‘남성연대의 도구’로 쓰였던 것입니다.
베네치아 화파였던 조르조네는 자연 속에 여성을 배치함으로써 여성의 몸 자체가 하나의 풍경처럼 느껴지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 멀리 집이 잘 보이도록 그려 여성과 대비를 이루게 했어요. 서양 회화에서 옷과 집은 ‘문명’을 상징하는데, 여성은 문명적 존재가 아니라 자연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볼 수 있지요. 서양은 인간을 자연에서 분리하고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해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여기서 ‘인간’은 합리적 이성을 가진 ‘남성’만을 의미해요. 그러니까 문명적인 존재인 남성이 자연과 같이 본능만 있는 여성을 지배하고 정복해도 된다는 공식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에요.
하필 잠자는 모습으로 설정하여 여성의 눈을 감긴 것도 중요한데요, 시선의 권력을 빼앗아서 이 그림을 감상하는 권력자 남성들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인간은 시각을 중심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문명을 만들어왔는데요, 무언가를 관찰하고, 측정하고, 정의하고, 예측할 수 있는 시선의 주체는 남성으로 설정되었습니다. 여성은 선택받고, 감상되고, 통제받고, 평가받아야 하는 존재였고요. 누드화를 그리면 그림을 잘 팔 수 있는 남성 화가나 누드화를 걸어놓고 사교를 원활히 할 수 있었던 귀족 남성들에게 여성은 동등한 인간이 아니라 욕망의 도구이자 자신의 능력을 과시할 수 있는 소유물일 뿐이었습니다.

누드화에서 여성의 몸은 긴장이 없는 자세로 매끈한 곡선이 강조되며, 인간의 몸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생명체로서의 요소와 세월의 흔적을 말끔히 지웠어요. 모공도, 털도, 점도, 주름도, 흉터도, 뽀루지도 없는 것이지요. 저명한 미술사학자 케네스 클라크처럼 권위를 가진 백인 남성 지식인들은 누드화 속 여성의 몸을 ‘천상의 완벽한 아름다움’이라 칭송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재현은 인간의 몸에 당연히 있는 것들, 흐르는 세월과 다양한 경험으로 늘어가는 몸의 기록들을 다 삭제함으로써 마치 이 그림을 감상하고 소유할 수 있는 극소수의 남성 권력자들만을 위해 존재하는 ‘새 상품’처럼 보이게 해요.
여성은 상처나 흉터가 없어야 하고, 서구의 기준에 맞춰서 하얗고 ‘잡티’ 없는 피부에 탄력까지 갖춰야 합니다. 스스로 잘 볼 수 있어야 하는 눈은 남이 잘 볼 수 있게 커야 하고, 숨을 잘 쉬는 게 중요한 코는 좁고 높아야 하고, 음식을 잘 씹을 수 있어야 하는 턱은 작아야 하는 기이한 모습이 ‘예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저 누워 자는 비너스처럼 근력이나 활동성이 없어도 됩니다. 오히려 가느다란 팔다리로 위태롭고 힘없어 보이는 모습을 ‘예쁘다’고 하지요.
이렇게 누드화를 통해 개개인의 역사와 맥락이 소거된 상태가 여성의 ‘아름다움’으로 제시되면서, 여성은 경험을 드러내면 안 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여성에 대한 이러한 기준이 현재를 살아가는 현실의 여성에게 적용되고 있는 것이 정말 심각한 일이지요. 과거보다 평등해졌다고 하는 현대에도 여성은 여전히 ‘보기 좋을’ 것을 기대받습니다. 또한 세월의 흔적을 화장이나 시술 등으로 가리라고 요구하면서 그것을 ‘관리’라 칭하고, ‘능력’이라 평가하잖아요. 그리고 여전히 ‘남성문화’는 여성을 대상화하고 소비하며 남성연대를 강화합니다.

자본주의는 성형, 다이어트, 화장품 등 산업을 발달시켜 기준을 더 세분화했습니다. 문화라는 이름으로 ‘미’를 산업화하고 있지요. 여성들이 그 기준을 내면화하고 적극적으로 수행하며 경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을 경험하고 감각하고 느끼고 사고하는 인격체라기보다, 외부의 시선에 의해 가치를 부여받는 이미지로 자신을 ‘가꾸어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우리 사회는 타인뿐 아니라 자신도 물건처럼 도구화하고 착취하는 것을 정당화할 뿐 아니라, ‘능력’이라고 해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고 성별로 나눈 후 여성으로 분류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성적인 대상으로 보도록 모든 매체가 우리를 훈련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남성도 ‘보기 좋아야’ 해요. 하지만 이러한 사회에 저항하고 대안을 제시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권력자 중심의 ‘미’의 기준에 맞서고자 했던 예술가들의 도전과 시도를 소개하려고 해요. 여러분은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누구의 눈으로 보시나요? 그리고 다른 이들은 어떤 눈으로 보고 계시나요? 저항은 어렵겠지만, 용기 내어 성찰해보시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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