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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가 담지 못한 그림 이야기

[미술사가 담지 못한 그림 이야기] 누드화의 ‘전통’ 안에서 시도했던 ‘차이’를 존중하기

 

누드화의 ‘전통’ 안에서 시도했던 ‘차이’를 존중하기

 

이충열(화사)

여성주의 현대미술가

 

우리가 지식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은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 특정한 목적에 의해 가공된 것이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고대 그리스 화가 제욱시스라 이상적인 미를 그리기 위해 여러 여성의 아름다움을 조합해서 헬레네를 그렸다는 일화인데요, 서양미술에서 여성의 몸에 대한 권력자 남성들의 욕망과 화가들의 과시욕이 어떻게 정당화되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16세기 이후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들 사이에서 여성 누드화가 유행했는데, 남성이라는 동질성을 확인하면서 권력을 과시하고 연대를 강화하는 데에 누드화 감상만큼 적합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화가들에게는 너무나 잘 팔리는 상품이었지만, 금욕주의를 펼쳤던 기독교에서 누드화는 강력하게 탄압하면 큰 반발이 우려되고 모른 척 하기에는 권위가 서지 않는 골칫덩어리였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누드화 소비를 단순한 에로티시즘이 아니라 예술적 이상미를 감상하는 고상한 행위로 만들어서, 대놓고 감상할 수 있으면서 기독교에서도 눈감아줄 수 있게 만드는 명분이었답니다. 그래서 호명된 것이 제욱시스의 일화였어요.

 

프랑수아 앙드레 뱅상, <제욱시스가 크로톤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들을 모델로 고르는 모습>, 1789년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말, 제욱시스의 일화가 하나의 장르적 주제가 되면서 마치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화가들이 여성 누드를 중요한 소재로 다룬 것처럼 착각하도록 만드는 그림들이 대량으로 그려졌답니다. 이 시기는 미학 이론이 정교해지면서 이상적 아름다움에 대한 논쟁이 활발해지고, 여성 누드가 미술 아카데미에서도 중요한 장르가 되던 때였거든요.

제욱시스가 살았던 기원전 5~4세기에 이상적인 인간 신체는 남성이었고, 당시 가장 위대한 조각가로 알려진 폴리클레이토스도 남성 신체를 통해 아름다운 비례를 연구해서 <카논>을 썼지만, 기원전 1세기에 살았던 키케로가 수사학적 는증을 위해 예술가는 자연 그대로를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례에서 가장 뛰어난 부분을 선택해서 이상형을 만든다며 예시로 든 제욱시스 일화가 급부상한 것입니다.

 

니콜라스-앙드레 몬시아우, <모델을 선택하는 제욱시스>, 1797년

 

17~18세기는 왕립 아카데미 중심의 미술교육이 확립되던 시기이도 해요. 제욱시스 이야기는 고전주의 미학을 옹호하면서 현실의 모습보다 이상화된 미를 추구하며 아름다움의 규범을 만들고자 했던 아카데미의 방향과 딱 들어맞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제욱시스는 단순한 화가가 아니라 이상미를 창조한 최초의 천재 화가로 재해석되고, 제욱시스 그림을 통해 여성 누드화를 그리는 것은 이상적인 미를 탐구하는 행위로 정당화되는 것이지요.

 

게다가 역사화를 가장 위대한장르로 인정했던 아카데미에서 고대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철학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옷을 입지 않은 인체를 묘사함으로써 해부학적 지식을 뽐낼 수 있으며, 여러 명을 한 화면에 배치하는 화면 구성 능력도 과시하고, 구체적인 설정까지 부여할 수 있는 제욱시스 이야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역사화의 소재가 되었어요.

 

결국 제욱시스 이야기는 아카데미를 통해 나는 잘 팔리는, 야한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이상미 이론을 탐구하는 것이다라는 문화적 면허증으로 탄생되었답니다.

 

에드윈 롱, <선택받은 다섯>, 1885년

 

남성 화가들이 그린 제욱시스 그림의 공통점은 여성들이 하나의 인격체라기보다 아름다운 부분을 찾기 위한 도구가 된다는 점입니다. 얼굴, 피부, 몸의 곡선 같은 요소들은 비교되고 평가되며, 남성 화가의 선택을 통해 이상적인 여성으로 재구성되는 것이지요. 여성들은 이야기 속에서 제욱시스에게 평가받기 위한 존재이자, 실제로 그림을 그렸던 남성 화가의 인체 묘사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도구, 그리고 그림을 주문하고 소유하고 감상할 수 있는 권력자들의 눈요깃감이 될 뿐입니다.

 

여성을 스스로 바라보는 주체가 아니라 남성의 시선 속에서 조합되고 판단되는 대상으로 위치시키는 것는 서양미술에서 반복되는 여성 재현의 방식입니다. 미술사가 존 버거는 서양 회화 속 여성들이 행동하는 존재보다 보여지는 존재로 그려졌다고 분석했고, 영화이론가 로라 멀비는 이를 남성적 시선(male gaze)” 개념으로 분석했는데요, 제욱시스의 신화를 바로 이 남성적 시선의 원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18세기에 드물게 역사화를 그렸던 여성 화가 안젤리카 카우프만의 그림은 조금 다릅니다. 남성 화가들의 그림에서 시선의 주체인 남성 화가와 평가의 대상인 여성들을 분명히 구분되어 보였다면, 카우프만의 그림에는 화가와 모델이 한데 어우러져 있습니다. 고르게 인물을 배치한 화면의 중심에는 여성 모델이 있고, 오른쪽에 놓인 캔버스 앞의 여성은 붓을 집어들고 있습니다. 왼쪽에서 두 번째 여성은 화면 밖의 관객을 응시하기도 합니다. 여성을 단순한 신체 조각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선과 각자의 감정을 가진 존재들로 표현한 것이지요.

 

안젤리카 카우프만, <트로이의 헬렌을 그리기 위해 모델을 고르는 제욱시스>, 1778년

 

수많은 연구자들이 제욱시스의 평가를 기다리지 않고 붓과 캔버스 쪽으로 향하고 있는 오른쪽의 여성을 카우프만 자신의 분신, 혹은 여성 화가의 상징으로 읽어냅니다. 왕립 아카데미의 창립 멤버였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인체 수업에 참여할 수 없었던 카우프만은, 거장들의 그림을 연구하고 모사하며 해부학을 이해했고, 결국 다양한 동작의 인물을 포함한 역사화를 그려냈기 때문입니다.

 

카우프만의 작품이 현대의 관점에서 급진적인 페미니즘 회화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남성 중심의 고전주의 미학 안에서 활동했고, 이상적 여성미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여성을 단순히 선택되고 비교되는 몸이 아니라, 개성을 가지고 함께 존재하는 인물로 재현하려 했습니다. 판을 뒤엎지 않는다고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닐 겁니다. 차이를 만들어내고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다음 세대가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문고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놈도 저놈도 다 똑같다고 한탄하기보다, 이놈과 저놈 사이의 차이와 그 차이가 지시하는 방향성을 면밀하게 살피고, 지지할 만한 방향성을 가진 이에게 힘을 실어주면 어떨까요? 저도 급진적인 관점으로 과거의 작품을 비판하는 데에만 몰두하기보다, 차이의 의미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방향을 정확히 짚어드리기 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