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월에 받아두었던 수강후기인데, 편집자의 기억력 이슈(..)로 이제야 업로드합니다. [편집자주] |
기대와 달랐던, 하지만 내게 정말 필요했던, 노조활동 길라잡이
황석주
언론노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지부 지부장, 리더십 서울18기 수료생
1. 빈 종이로 마주한 나의 리더십 현주소
첫 시간, '존경하거나 롤모델로 삼는 리더'를 적어 붙이라는 과제 앞에서 저는 깊은 난감함을 느꼈습니다.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몇몇 인물들은 제 본래의 캐릭터와 결이 달랐고, 결국 빈 종이를 제출하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제가 '리더십' 자체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없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저 제 성격과 방식대로 지부장 역할을 소화해내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제가 지부장을 맡기 전, 2년 동안 전임 집행부는 심의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훼손한 위원장에 맞서 치열하게 싸웠고, 마침내 위원장의 자진 사퇴를 이끌어내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구성원들은 승진 지연과 각종 불이익이라는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당시 사측 업무를 담당하며 투쟁에 온전히 함께하지 못했다는 부채감, 그리고 우리 후배들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하나로 지부장 선거 출마를 결심했고, 임기 6개월을 채워가는 시점에 비로소 이 교육을 통해 제 리더십의 구체적인 방향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2. '활동가'의 재정의, 그리고 우리 후배들의 재발견
교육을 들으며 제가 스스로를 '활동가'라고 단 한 번도 인식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활동가는 그저 본조 사무처나 시민단체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사람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수동적인 쪽수를 능동적인 쪽수로 변화시키는 사람'이 곧 활동가라는 개념을 듣는 순간, 제 곁에서 함께 뛰고 있는 우리 후배들이 떠올랐습니다. 과거 방심위 위원장이 법적 근거도 없이 가짜뉴스 심의 임시기구 설치를 밀어붙였을 때, 직책 하나 없던 후배들이 부당한 인사조치를 바로잡겠다는 목표로 뭉쳐 동료들을 설득해서 전 직원 연대서명을 이끌어냈습니다. 이어서 당시 지지부진하던 비대위 체제를 끝내고, 새 집행부를 세워 2년간의 빛나는 투쟁을 이끈 진짜 활동가이자 리더는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3. 나도 권위에 복종하는 대중일까?
교육 과정에서 아쉬웠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조원들과 함께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큰 종이에 그리는 작업을 한 뒤, 이를 자르거나 찢어서 봉투에 넣으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의도를 궁금해하며 지시에 따랐는데, 이어지는 강의에서 강사님은 이 행동을 '밀그램 실험'에서 전기 충격기 버튼을 누른 것과 같은 선상에서 설명하셨습니다.
솔직히 마음속에서 강한 반발심이 일었습니다. 피해자가 명백히 존재하고 생명까지 위협하는 실험 속 행위와, 굳이 저항할 이유도 없었거니와 교육에 열심히 참여하며 수행한 '종이 찢기'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비약으로 느껴졌습니다. 비슷하게 생각한 동료 한 분은 저항의 의미로 강의실을 박차고 나가기도 했습니다. '설마 나는 450V 버튼을 누르지 않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흔들고자 한 의도였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깊은 깨우침보다는 오히려 반발심을 불러일으켜 교육의 집중도를 떨어뜨린 점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4. 상위 욕구와 물질적 욕구의 균형
욕구에 대한 설명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개인의 욕구를 분류하는 기준으로 생각해 본 적은 있었지만, 이를 노조 차원에서 조합원들의 욕구를 분류해 본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습니다. 현대차 노조 선거의 공약으로 실습했던 것처럼 제가 지부장 선거 당시 내세웠던 공약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현재 지부장으로서 조합원들의 욕구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는 큰 장벽을 느끼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3년간의 투쟁 명분이 '심의 공정성과 독립성 확립'이라는 확고한 상위 욕구에 기반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임기 초반 투쟁 국면의 임협에서 우리 노조의 주축인 하급 직원들의 임금 인상을 쟁취하여 물질적 욕구를 일부 해소한 것, 그리고 새 위원회 출범 이후 승진 지연 피해 직원들의 승진이 빠르게 이루어진 것이 조직 안정화에 도움이 되었고, 이후 심의기구로서의 신뢰 회복 등 정상화 추진에 힘을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5. '공정'을 넘어 '연대'로
조합원의 욕구 충족을 넘어 노동운동의 본질을 고민할 기회도 있었습니다. 마침 교육 기간에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 여부가 뉴스를 도배하며 노조 이기주의를 비판하는 보도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삼성전자 노조는 노조 활동의 역사가 일천하고 상급 단체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 보니, 밖에서 보기엔 마치 '덩치 크고 힘센 영악한 어린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깊은 노조 활동의 역사가 있었다면 회사 안팎을 아우르는 연대 의식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언론에 비친 모습은 노조 내부 사업 부문별로도 갈등을 빚으며 좁은 의미의 개별적인 '공정'만을 내세우는 한계가 엿보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지난 투쟁 국면에서 우리 노조는 늘 연대해 왔습니다. 내부적으로는 부당한 인사조치를 당한 동료들의 어려움에 공감하여 연대했고, 외부적으로는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달려와 준 언론노조 동지들과 연대했습니다. 우리 노조가 전임 위원장을 쫓아내며 투쟁에서 승리한 데에는 이런 내외부의 연대가 있었던 것입니다. 폭넓은 연대를 지향하는 것이 노동조합이 나아가야 할 진짜 방향임을 다시금 새기게 되었습니다.
6. 나에게 맞는 옷, '평등 리더십'
노동조합 활동의 리더십은 어떠해야 할까요? 평소에 저는 군대식 위계질서나 상명하복 같은 수직적 관계를 싫어했습니다. 강의 중 진행한 꼰대 테스트에서도 꽤 안전한 점수(2개)가 나왔으니 꼰대가 아닐 확률이 높지 않을까 합니다.
경청에는 나름의 자신이 있습니다. 문제는 설득인데, 늘 자신 없는 부분이라 여기고 있었습니다. 비록 기술은 부족할지 모르나, 제가 설득으로 거둔 가장 큰 성공은 투쟁했던 후배들을 러닝메이트로 삼아 새로운 집행부를 꾸린 것입니다. 이는 제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평소 쌓아온 평판과 '우리의 일터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진심이 통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술도 쌓을 필요가 있겠지만, 아마도 옳은 방향과 진정성이 설득의 큰 무기일 것 같습니다.
제 본연의 강점인 '경청'을 무기로 우리 노조가 추구해 나갈 변화의 목표와 가치를 집행부와 치열하게 토론하여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고, 진정성을 가지고 조합원들과 수평적으로 소통하며 설득해 나가는 '평등 리더십'을 키워나갈 생각입니다.
7. 우리가 만들어낸 변화를 기억하며
지부장 임기 6개월, 우여곡절과 제 개인적인 실수도 있었지만 우리는 수많은 '작은 승리'를 쟁취하며 분명한 변화를 일궈냈습니다. 지금은 이 변화가 선명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고 당연한 것으로 잊힐 수 있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습니다.앞으로는 우리가 쟁취한 변화의 과정과 의미를 꼼꼼히 기록하고, 자주 언급하며, 조합원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려 합니다.
<리더십 길라잡이>는 제게 막연했던 리더의 의미를 되새기고, 앞으로 나아갈 분명한 방향타를 쥐여준 소중한 이정표였습니다.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신 언론노조와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임진희 사무국장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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