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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 종이책

[나의 친구 종이책] 가능주의자

 

 

가능주의자

 

김명숙

울산여성문화공간 교육팀장,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울산 회원

 

 

나희덕의 시집 가능주의자2년 전쯤에 내 책상에 도착했다. 그러나 늘 읽고 싶은 책, 읽어야 할 책이 쌓여있어 이 시집을 샀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8281930, DH아트센터에서 가능주의자라는 제목의 동물권 다큐영화 공동체 상영회가 있다는 사실을 하루 전날 우연히 알게 되었다.

홍보 웹자보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다.

 

“저는 제가 불가능주의자인 줄 알았어요”

개, 돌고래, 돼지, 소, 넙치의 해방을 위해
세상을 설득해온 지 어느덧 13년
개 식용 금지법 제정부터 돌고래 쇼 규탄까지
모두가 불가능이라 말해도
우리는 가능의 목소리를 내고 싶다.

모든 생명과 더불어 살기 위해 행동해 온
여성 비건들의 멈추지 않는 연대기!

동물 해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매주 동물권을 공부하는 달달한동물세상교육팀원들과 함께 상영회에 참석하였다. 우리들이 꼭 봐야할 영화라는 것을 직감하고.

영화는 불가능하다고 말해지던 일들을 하나씩 가능으로 바꿔 간 다섯 여성들 중심으로 펼쳐진 13년간의 동물해방 운동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2011년부터 2024년까지 한국 동물권 운동의 현장을 기록한 작품에는 동물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행동해온 이들의 절절한 목소리가 담겨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용감하고 헌신적인 비건페미니스트들의 활동에 감사했고 힘든 모습 안타까웠다. 틈틈이 눈물지으며 그 치열한 투쟁의 역사를 함께 겪었다.

잘 몰랐던 젊은 여성들의 활동 기록은 위로와 격려의 큰 선물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감독과 대화의 시간이 진행되었다. 동물해방운동을 함께 하며 다큐영화를 찍은 감독 박이윤정씨는 영화 제목을 왜 가능주의자로 했는지 말했다. 그람시의 의지로 낙관하라라는 말을 좋아한다는 감독은 제목을 고민하면서 100권 정도의 시집을 읽었다고 했다. 그러다 나희덕의 시 가능주의자를 만난 순간 , 이거다하고 정했다 한다.

나는 감독의 그 말을 듣는 나희덕 시집이 내 책상 책꽂이에 있고 아직 단 한 편의 시도 읽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 다큐영화를 본 파장이 깊었다. 나의 심신에 태풍이 지나간 느낌이었다.

이번 달 책 소개는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로 정하고 구상하고 있었다. 이 책은 지난 822일 독서모임에서 토론한 책이고 세 번째 읽은 책이라 힘들이지 않고 소개 글을 쓸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다큐영화를 본 후 가능주의자에 빠져버렸다. 이 다큐영화를 알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 차서 잠시 고심하다 마음 가는 대로 쓰기로 했다. ‘나의 친구 종이책에 영화를 소개하는 것은 맞지 않으니 이 다큐영화 이야기를 하며 나희덕의 시집 가능주의자를 소개하기로.

갑자기 새로운 글을 쓰려니 매우 바빠졌다. 시집을 천천히 읽고(빠르게 읽을 수 없는 시들이라), 시인에 대해 자료를 찾아보고.

시를 읽으며, 시인에 대해 공부를 하며 좋은 시인, 성실한 공부인을 만난 즐거움이 커져가고 있다. 동시에 나의 무지와 게으름를 자각해 가고 있다.

 

시집을 펼치면 시작되는 시인의 말에서 시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핏기와 허기와 한기가 삶을 둘러싸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벌거벗음에서 왔다.
피, 땀, 눈물.
이 세 가지 체액은 늘 인간을 드나든다.

마음이 기우는 대로
피와 땀과 눈물이 흐르는 대로 가보면
통증과 배고픔과 추위를 느끼는 영혼들 곁이었다.

시는 영원히 그런 존재들의 편이다.”

 

 

처음 만나는 이 시가 내 마음 속 깊이 쑥 들어왔다. 나희덕 시인의 주파수가 나와 맞다. 시집을 다 읽고 보니 시인은 내가 좋아하며 현재 공부 중인 도나 헤러웨이에 대해 이미 공부를 깊이 한 분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좀 더 알아보니 대학교수로 재직 중이며 많은 시집을 냈고 많은 상을 받은 매우 유명한 시인이었다. 그리고 에코페미니스트로 여성환경연대 활동 등 여러 활동도 하고 있다. 알아갈수록 호감이 커가고 있다.

 

이 시집의 시는 2021년 팬데믹 상황에서 쓴 시라고 했다. 기후위기가 인간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상황에 처한 시인은 그 속에서 보고 느낀 것을 표현했다. 시인은 이 시집을 다큐멘터리 시집이라고 명명했다. 다큐와 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시인은 주장하거나 선동하지 않고 잊고 있었던 문제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일이 시인의 일이라고 말했다.

매우 열심히 공부하는 시인의 시를 깊이 이해하려면 공부가 필요하다. 그러니 쉽게 휘리릭 읽을 수 없는 시, 깊이 생각하게 하는 시를 만날 수 있다.

이 시집은 1부 벽의 반대말은 해변이라고, 2부 얼룩을 지우는 얼룩들, 3부 두려움만이 우리를 가르칠 수 있다, 4부 달리는 기관차를 멈춰 세우려면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4부의 첫 시 가능주의자일부를 적으며 마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가능주의자가 되려 합니다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믿어보려 합니다

큰 빛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반딧불이처럼 깜박이며
우리가 닿지 못한 빛과 어둠에 대해
그 어긋남에 대해
말라가는 잉크로나마 써나가려 합니다

나의 시대, 나의 짐승이여,
이 이빨과 발톱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찢긴 살과 혈관 속에 남아 있는
이 핏기를 언제까지 견뎌야 하는 것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무언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어떤 어둠에 기대어 가능한 일일까요
어떤 어둠의 빛에 눈멀어야 가능한 일일까요
상에, 가능주의자라니, 대체 얼마나 가당찮은 꿈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