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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가 담지 못한 그림 이야기

[미술사가 담지 못한 그림 이야기] 중세 여성들의 정교한 정치 풍자물 <바이외 태피스트리>

 

중세 여성들의 정교한 정치 풍자물 <바이외 태피스트리>

 

이충열(화사)

여성주의 현대미술가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도 모자라서 빚까지 지며, 책에서만 보았던 위대한 예술을 직접 보기 위해 유럽의 유명한 교회들과 박물관, 미술관을 열심히 다닌 적이 있어요. 감탄할 준비를 하고 갔지만, 거대한 건축물을 보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착취당하고 죽어 나갔을지, 그들의 비명이 들리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미술사 책에 나오는 명화들보다, 거대한 양탄자나 필사본의 그림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자수 등이 제 눈을 사로잡았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미술사 책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The Story of Art)는 회화와 건축, 조각을 중심으로 미술을 서술해요. 하지만 곰브리치도 공예로 분류되는 <바이외 태피스트리>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어요. 오래전에 쓰인 책이고 여러 한계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중적으로는 가장 유명한 이 보수적인 책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예술작품이었던 것이지요.

 

<바이외 태피스트리>, 68.38 x 0.5m, 11세기 제작 추정

 

이 어마어마한 작품은 사실 색실을 직조기로 엮어 그림이나 무늬를 표현하는 태피스트리가 아니라, 린넨 천에 양모로 이미지를 수놓은 자수작품이에요. 이미 <바이외 태피스트리>로 유명해져서 이름을 바꾸지는 못하겠지만요.

 

70m에 가까운 길이의 천에 1066년 노르망디 윌리엄 공이 바다를 건너 영국의 해럴드 왕을 꺾고 왕위를 차지하는 노르만 정복(헤이스팅스 전투)’의 전 과정을 한 땀 한 땀 수놓았으니, 정말 엄청난 대작 아닌가요? 하지만 곰브리치는 중세 미술이 지닌 경이로운 서사 전달력과 인형극처럼 명료한 연출을 극찬했을 뿐, 이 어마어마한 노동을 누가 수행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책 첫 문장을 미술(Art)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Artists)들이 있을 뿐이다"고 쓰면서 시각적인 표현을 위한 화가들의 의지와 노력, 그리고 독창성에 끝없는 찬사를 늘어놓았던 곰브리치가 이 걸작의 제작자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 에서 오도 주교 가 윌리엄 공작의 군대를 규합하는 모습을 담은 <바이외 태피스트리>의 한 장면

 

 

바로, ‘여성들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우리가 교육제도를 통해 역사(History)’를 영웅(남성)들의 서사로 배우는 것은 개인의 천재성을 중시하는 서구 근대 미술사의 관점과 일치하는데요, 르네상스 이후 정립된 단독 창작자로서 천재 화가에게 찬탄하며 스타 화가를 발굴하고 그들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것을 좋아했던 곰브리치에게 수십 명의 여성 장인들이 집단으로 협업해서 만든 공동체 예술따위는 관심 밖의 일이었던 것이지요.

 

에드워드 왕이 자신의 처남 해럴드를 노르망디로 보내는 모습을 담은 <바이외 태피스트리>의 한 장면

 

 

곰브리치가 서양미술사(The Story of Art)를 출간한 1950, 학계는 르네상스 시대의 관점 그대로 여성이 진입하기 어려웠던 회화·조각은 위대한 예술가의 정신적인 산물예술, 여성에게 담당했던 자수나 태피스트리는 일상적인 집안일이나 손재주만 있으면 되는 공예로 분류하고 있었어요. 1970년대 이후, 휘트니 채드윅의 여성, 미술, 사회등 페미니즘 미술사가 등장하고 나서야 <바이외 태피스트리> 등 중요한 역사적 기록물을 만든 무명의 여성 장인들에 대해 주목할 수 있게 된 것이고요.

 

과거의 미술사가 <바이외 태피스트리> 중앙 프레임에 기록된 역사의 내용에 주목했다면, 1986년에 미국의 미술사학자 데이비드 번스타인 교수가 낸 바이외 태피스트리의 미스터리등 현대의 역사학계나 미술사학계는 테두리 장식 곳곳에서 발견되는 이미지를 통해 중세 여성들의 남긴 저항의 메시지를 읽어냅니다.

 

<바이외 태피스트리>에는 중앙 프레임 외에도 위아래 프레임이 있음

 

태피스트리의 중앙 프레임에는 노르만 기사들의 용맹함을 칭송하지만, ·하단 테두리 장식에는 불륜, 성적 기만, 사기에 대한 이솝 우화나 탐욕, ‘위선, 약자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을 상징하는 늑대가 여러 번 등장하고, 남녀의 성적 누드화가 수 놓여 있어요. 자수 기술을 연마한 여성 장인들이 고분고분하게 권력자들의 요구에 따라서 남성 정복자들의 찬란한 승리 서사만을 기록하지는 않았다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 까마귀가 고기 한 조작을 입에 물고 나무 위에 앉아 있을 때 여우가 나타나 까마귀의 목소리가 너무 아름답다고 거짓 칭찬을 늘어놓고, 이에 우쭐해진 까마귀가 노래를 부르려고 입을 벌리느라 고기를 떨어뜨리자, 이를 여우가 가로채는 여우와 까마귀이야기는 감언이설에 속아 왕관을 넘겨준 해럴드 왕의 어리석음과 나약함을 비웃는 것으로 보는 것이죠.

 

보통 한 번만 묘사되는 일상적인 장면들과 달리 <바이외 태피스트리> 테두리에 세 번이나 등장하는 그림

 

강자를 돕고도 버림받은 피지배층의 운명을 비유하는 늑대와 두루미이야기는 노르만 군대와 영국의 지배층이 서로 정치적 동맹을 약속하는 장면 주변에 있고, 약속은 결국 힘센 자의 논리일 뿐이라는 이야기를 담은 사자의 몫이야기는 정복왕 윌리엄이 잉글랜드 상륙 후 본격적으로 영토를 약탈하고 전쟁을 준비하는 장면 아래 배치되어 있습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절묘하지 않나요?

 

노르만족 남성 기사들이 말 위에서 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정의로운 전쟁'으로 기록하라고 했지만, 테두리를 수놓은 무명의 영국 여성들은 이솝 우화를 촘촘히 박아 넣어 저들이 영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기꾼 여우이고, 탐욕스러운 늑대이자, 무자비한 사자일 뿐이다라는 것입니다.

 

<바이외 태피스트리>의 벌거벗은 남자와 신비로운 여인을 묘사한 것은 세간에 알려진 불륜 의혹을 암시하는 것일 수 있다(출처: 사라 크냅틴, 2026년 8월 31일, The Telegraph).

 

성직자가 베일 속 여인의 뺨을 만지는 장면 아래 프레임에는 나체로 성기를 노출한 남성이 있어요. 이 장면을 당시 영국의 엠마 여왕과 주교 사이의 간통 스캔들을 은유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중세 교회법상 왕가가 성적으로 타락하거나 부정한 사생아 계보를 가졌다는 것은 왕위 계승권(정당성)을 완전히 박탈당할 수 있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는데, 영국의 여성 장인들은 노르만족의 승리 기록화 한복판에 이 추잡한 비밀 성스캔들을 나체화로 박제함으로써, “새로 왕이 된 너희 가문은 사실 근본부터 추잡한 핏줄이라며 윌리엄 왕의 정당성을 은밀히 공격한 것이라는 것이지요.

 

태피스트리 전체에는 인간과 말을 포함해서 총 93개의 노출된 성기도 등장하는데, 대부분 발기된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특히 정복왕 밀리엄 공에서 바쳐지는 전투마의 성기가 가장 거대하고 발전된 상태로 묘사되어 있어요.

 

<바이외 태피스트리>에서 윌리엄의 말은 주인의 남성적인 힘을 반영한다(출처: 데보나 니콜스리, 2026년 8월 24일, BBC).

 

현대의 역사학자들은 이를 중세 봉건 사회 특유의 과시적 남성성(Testosterone-soaked machismo)’으로 해석합니다. 전쟁을 일으키고 영토를 찬탈하는 행위가 결국은 자신의 힘과 정력을 과시하려는 남성들의 폭력적 본능에 불과하다는 점을, 성기를 적나라하게 노출한 동물과 인간의 모습을 통해 풍자하고 우스꽝스럽게 조롱했다는 것이라고요.

 

당시 글을 읽지 못하는 대중이나 노르만족 감시자들의 눈에는 그저 흔한 장식용 누드나 동물 그림처럼 보였겠지만, 라틴어 문학과 우화를 알던 교양 있는 여성들에게 이 테두리는 정복 전쟁의 위선을 고발하고 지배층의 도덕적 파탄을 저격하는 정치 비평 창구였을 겁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강력한 영웅이 무엇이든 해결해주기를 기대하며 추앙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운데요, 다음 호에서는 제가 왜 여성 장인들을 교양 있는 여성들이라고 했는지, 중세의 여성들이 얼마나 멋진 활약을 했는지 소개해드릴 테니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