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웹진 [e-품]의 <단!마디> 꼭지는 평등사회노동교육원 단병호 대표(민주노총 지도위원, 17대 국회의원)의 노동 및 사회현안에 대한 논평과 제언을 싣습니다. [편집자주] |
‘원 포인트 노사정 대화’, 위기극복의 실질적 논의의 장이 되어야
2020. 5.
지난 1월에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뒤 벌써 4개월이 되어가고 있다.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발표에 안도해 하던 국민들은 최근 몇몇 유흥업소를 통해 다시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어 국민들의 시름이 다시 깊어지고 있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경제적 피해가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서 재난구제지원금을 풀고 있지만, 이것이 일시적인 도움은 되겠지만, 그렇다고 이 같은 방식으로 계속 지원하는 데 한계가 있다. 국민의 고통이 더 커지기 전에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민주노총이 제안한 원 포인트 노사정 대화가 탄력을 받게 되었다. 그 동안 한국노총은 총리가 주관하는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원 포인트 노사정 대화에 참여하는 것을 망설여 왔다. 경사노위를 두고 다른 틀을 만다면 경사노위를 무력화시키게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완전히 틀린 주장은 아니다. 어쨌든 한국노총이 참여하게 됨으로써 원 포인트 노사정대화기구가 코로나19 경제위기를 타개해 나가야 할 실질적인 기구로 부상하게 되었다.
그 동안 노사정 대화가 파행을 거듭해 온 반쪽짜리 대화로 운영되어 왔다. 노사정 대화라는 게 간단한 것 같지만 그 만큼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노총의 제안을 놓고도 실효성에 대해 설왕설래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도 있어 보인다. 우선 정부가 ‘총고용을 유지하며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그렇고, 민주노총이 먼저 노사정 대화를 제안했다는 점이 그렇다. 분명 이번 원 포인트 대화는 과거와는 출발선이 다른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대화와 소정의 성과를 기대해봄직하다.
질병의 고통이 경제적 삶의 고통으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아직까지 코로나19가 몰고 올 경제적 파장이 어디까지 갈지 누구도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하고 있다. 1930년 세계대공황을 능가할 것이라는 전망에서부터 회복기를 V자형 U자형 혹은 L자형의 양상을 띨 것이라는 등 예측에 대한 전망도 일치하지 않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 파장이 깊게 길게 가는 L자형을 띠게 될 것이라는 진단이 가장 많다. 어쨌든 한 마디로 모든 것이 불투명하다.
경총도 자체 조사를 통해 이번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충격이 지난 두 차례의 경제위기 때보다 클 것이라는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당시 충격 체감도를 100이라고 했을 때 97년 외환위기 때가 104.6으로 더 컸고, 이번 코로나19는 128.5로 가장 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미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지난 달 전체 구직급여 수급자가 65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년 전보다 13만 명(25.2%) 이상이 증가한 수치다. 이들 대부분이 중소영세비정규노동자들이다. 매번 그러했지만 이번에도 평소에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희생을 당하고 있다. 일자리 문제는 곧 대기업 정규직으로도 전이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은 지난 두 번의 경제위기 극복 과정과는 달라야 한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는 노동의 희생을 전제한 위기극복이었다. 그 결과로 오늘의 참담한 사회양극화 현실이 초래되었다.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은 두 번의 위기극복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를 치유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가 확고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경제다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이다 사회양극화 해결이다 하고 말은 화려하게 내놓았지만 소득주도경제는 시작도 하지 않은 채 실종되었고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도 일부에서 제한적으로 이뤄졌고 사회양극화는 더 악화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위기극복 방안으로 ‘한국판 뉴딜’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총고용을 유지하며 새로운 50만개 이상을 만들겠다는 것이 핵심인데, 알맹이가 빠져 있다.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노동자들에게 노동기본권 보장을 대폭 강화하고 총고용을 늘리는 정책을 제시함으로써 노동자의 참여를 끌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재 그 과정에서 와그너법이 만들어지고 대공황에서도 성공적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한국판’이라는 수식이 알맹이를 빼기위한 속내에서 붙여진 것이 아니길 바란다.
노사정 대화와 합의를 핑계로 정부가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일까지 피해가려하거나 회피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전교조의 법외노조 철회와 해고 공무원의 복직 그리고 ILO기본협약 비준 등은 원 포인트 노사정 대화와 관계없이 정부의 의지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 기업지원은 고용유지를 전제로 하되 1년 내에 단 한 명이라도 해고했을 때는 지원금 전액을 환수하는 것을 조건으로 기업지원금을 지원한다면 먹튀도 방지하고 고용도 감소도 최대한 억제할 수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있어 재벌 대기업의 책임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 그 동안 재벌 대기업은 다단계 하청구조를 통해 산업을 지배하고 초과이윤을 얻어왔다. 3~4차 하청은 보통이고 심지어는 7차 하청까지 내려가는 경제구조를 그대로 두고는 사회양극화도 비정규직 정규직화도 소득주도 경제도 실현가능하지 않다. 전체 노동자의 90퍼센트가 300인 이하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국민의 90퍼센트가 재벌 대기업으로 인해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재벌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재벌 대기업들은 두 차례의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자본이 자본을 수탈해야 유지되는 경제구조로 바꿔놓았다. 그 결과 하청기업의 재무구조는 가뭄에 논바닥 갈라터지 듯 메말라 있고 재벌 대기업의 곳간에는 돈이 넘쳐나고 있다. 2017년 30대 재벌이 보유한 사내유보금이 883조원이던 것이 2019년에는 957조원으로 늘어났다. 모두 하청기업을 짜내 받아낸 초과이윤으로 만들어졌다. 이런 초과이윤을 환수하자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자본은 코로나19의 위기국면을 이용해 노사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는 법 제도 개악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유연근로제(변형근로제)와 해고요건을 완화하고 취업규칙변경 절차를 바꿔야 한다고 불을 지피고 있다. 자본의 이러한 태도는 원 포인트 노사정 대화의 논의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로 비치기에 충분하다.
이제 재벌 대기업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에 나서야 한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몸살을 알고 있고, 소위 경제대국이라 일컬어지는 국가일수록 그 피해가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 수출에 80퍼센트 이상을 의존하고 있는 경제구조를 감안하면 내수시장의 활성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벌 대기업들이 사회 윤리적 책임을 넘어 무너지는 중소영세기업도 살리고 극단적인 양극화를 치유하는 데 주체로써의 구체적인 책임을 자임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빠른 위기극복 방안이다.
민주노총의 책임도 막중하다. 원 포인트 노사정 대화를 제안하고 또 제1노총의 지위에 선 민주노총의 계급적 사회적 책임의 무게가 가벼울 수는 없다. 이제는 대화가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해서 쉽게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도 없는 처지다. 끝까지 인내하며 모종의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우선은 노동자들의 고용과 생계가 최대한 보장되는 가운데서 위기를 극복한다는 데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예컨대 법적 노동시간을 대폭 단축하고 고용의 수직 수평 이동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함께 나누는 방안을 선도적으로 요구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
총고용을 유지한다고 해도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실업문제가 심각하게 나타날 수 있다. 프리랜스, 플랫폼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대부분이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들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과 취업지원에 대한 지원책도 우선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이번에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 국민들 사이에는 사회안전망과 사회공공성이 중요하고, 확대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본다. 이 문제에 대해 추상적인 구호를 넘어 구체적인 안을 가지고 정부와 자본을 견인하고 설득해야 한다.
하나 같이 자본과 정부의 거센 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내용들이 빠진 위기극복은 지난 두 차례의 위기극복과 다를 바가 없다. 노동은 더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90대10의 사회는 더 심화될 것이 자명하다. 두 번은 어쩔 수 없었다고 쳐도 세 번을 똑같이 당할 수는 없다. 그래서 원 포인트 노사정 대화에서 민주노총의 역할과 책임이 무겁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 책임분담론도 불가피하게 제기될 것이다. 중소영세비정규노동자들이 실업자로 전락하지 않고 최대한 안정적인 생계를 유지할 수 있으려면 민주노총에게는 어떤 역할과 어떤 책임을 함께 나누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민해 두어야 한다. 이번 코로나19 경제위기가 어떤 방향으로 극복되어 나갈지의 여부는 사회적 공감과 정당성을 누가 더 많이 가지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점도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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