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웹진 [e-품]의 <단!마디> 꼭지는 평등사회노동교육원 단병호 대표(민주노총 지도위원, 17대 국회의원)의 노동 및 사회현안에 대한 논평과 제언을 싣습니다. [편집자주] |
법원의 이재용 불구속 결정 법치의 한계인가, 유전무죄인가?
2020. 6.
삼성의 이재용이 또 구속의 법망을 피해나갔다. 이재용 부회장,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모두 불구속 결정을 받았다. 법원의 불구속 결정이 잘 납득되지 않는다. 원정숙 서울중앙지법 영장심사 부장판사는 “기본적인 사실관계는 소명됐고”라면서도 “불구속 재판의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서는 소명이 부족하다”며 검찰의 영장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 판상의 기각 사유를 풀어서 보면 범죄 혐의의 사실관계는 소명되지만 증거인멸과 도주우려가 없기 때문에 구속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보인다. 도주 우려야 없겠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 과연 그럴까? 수많은 국민에게 피해를 준 시세조종과 부정거래가 구속해야 할 중대범죄혐의가 아니라면 그렇다면 구속해야 할 중대범죄혐의는 어떤 것인가? 지나가던 개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이번 법원의 판결로 이재용에 대한 기소여부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11일 서울중앙지검에서 열리게 될 ‘부의심의위원회’의 결과에 따라 같은 날 열리게 될 대검의 ‘수사심의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기소자체가 어렵게 될 수도 있게 되었다. 물론 검찰이 수사심의위원회의 결정을 반드시 따라야 할 필요는 없지만.
이번 법원의 결정에는 수긍하기 어려운 몇 가지의 이유가 있다. 첫째, 법원은 검찰과는 달리 이재용이 받고 있는 혐의를 중대범죄혐의로 보지 않는 것 같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에 공적기금인 국민연금을 동원하고 시세를 조작하고 부정거래를 하고 그것도 부족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분식 등을 함으로써 수많은 국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이는 마땅히 구속시켜야 할 중대범죄혐의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둘째, 법원은 검찰이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며 증거인멸의 가능성에 대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과연 그렇게 볼 수 있는가? 이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증거인멸로 8명이나 처벌을 받았다. 그들이 무노조경영을 위해 노조탄압을 자행해온 증거를 인멸하고 은폐하기 위기해 어떻게 해왔던가? 이들은 앞으로도 법망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티만큼의 작은 증거라도 찾아 없애기 위해 안간 힘을 다할 것이다.
셋째, 이미 검찰은 그 동안 수사를 통해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에서 일어난 불법행위를 보고받거나 지시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내부 문건과 진술까지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2012년부터 구체적인 승계 계획이 담긴 문건도 입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삼성전자 지분 4.1%를 취득하려면 8조원 이상이 드는데, 합병을 통해 이 금액을 절약할 수 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내부 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법원이 이 모든 사실을 인지하고도 불구속 결정을 내렸다면 국민적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금 전국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수만 명의 피의자들 중에 이재용 부회장보다 혐의가 무거운 사람이 많을까 아니면 가벼운 사람이 많을까? 이재용 부회장보다 혐의가 가벼운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럼 왜 이들은 갇힌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야 하고 이재용 부회장은 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도 되는 것인지 법원은 답해야 한다.
그 동안에도 재벌의 불법 편법에 대한 문제제기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제대로 처벌된 적이 없다. 재벌에 대한 사법부의 처벌은 늘 보여 주기식의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재벌 중에 형기를 제대로 채운 사람이 있었던가. 내 기억에는 없다.
누군가가 화를 이기지 못해 한 사람을 살해했다고 치자. 재벌이 탐욕 때문에 온갖 불법과 편법을 동원해 하청을 쥐어짜 부를 축적하고, 그 밑바닥에 있는 노동자들은 빈곤을 견디지 못해 일 년에 수십 명이 목숨을 끊는다. 누구의 죄가 무거운가? 이재용 부회장의 혐의가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재벌들이 갖은 비리와 편법과 불법을 저지르고도 이처럼 건재할 수 있는 것은 법치의 한계 때문이 아니다. 거대한 자본권력에 우리사회가 굴복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령 모두가 굴복한다고 해도 사법부만은 당당해야 하는 게 아닌가.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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