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웹진 [e-품]의 <단!마디> 꼭지는 평등사회노동교육원 단병호 대표(민주노총 지도위원, 17대 국회의원)의 노동 및 사회현안에 대한 논평과 제언을 싣습니다. [편집자주] |
노동해방과 인간해방을 향한 담대한 저항
2020. 11. 13.
오늘은 11월 13일. 전태일이 자신의 몸을 불살라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행한지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평화시장 앞 길거리에서 화마로 뒤덮인 몸을 힘겹게 지탱하며 절규하며 외치던 말이다.
세상은 얼마나 변했을까? 지금도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온전하게 받지 못하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와 플랫폼 노동자 역시 그렇다. 이주노동자와 장애인 노동자 또한 그러하다. 양극화의 심화로 저임금 노동자의 궁핍함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50년이 지난 지금도 도처에서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는 외침이 끊이지 않는다.
마석모란공원 전태일의 묘소에는 노동자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인사 수백 명이 모여 전태일을 추모하고, 전태일의 뜻을 이어가겠다는 추모행사가 있었다. "풀빵 정신", "연대 정신", "인간 존중, 사랑" 등 전태일가 생전에 혼신의 힘을 다해 실현하려고 했던 정신들이 연사들의 입을 통해 잔잔하게, 때로는 격하게 묘역에 울려 퍼졌다. 수백 명의 참여자들도 함께 공감했다.
필자는 어쩌다보니 『전태일 평전』을 세 번을 읽게 되었다. 86년에 우연하게 평전을 접하게 되었고, 두 번째는 1990년 전노협 결성 직후 구속되었을 때 감옥에서 읽었고, 세 번째는 2008년 민주노동당이 분당된 뒤에 읽게 되었다. 세 번 모두 개인적으로 가장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될 때 평전을 찾았던 것 같다. 그렇게 평전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고 추스렀다.
모든 사람이 그러했듯이 필자 역시 평전을 읽으며 '전태일 정신'을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으로 따르겠다고 수 없이 다짐했었다. 필자는 전태일 정신의 으뜸으로 '인간 존중의 참사랑'을 꼽고 싶다. 전태일의 일기에는 "나의 나", "나를 아는 모든 나". "나를 모르는 모든 나", "전체의 일부인 나", "나의 일부인 나"라는 표현이 곳곳에 등장한다. 전태일은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고통 받는 노동자를 자신과 같은 하나로 보았다. '타자와의 완벽한 일체화' 이것이 전태일의 인간에 대한 사랑, 특히 고통 받는 노동자 민중에 대한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연대 정신을 꼽고 싶다. 전태일의 연대는 철저한 하방연대였다. 전태일의 '풀빵' 일화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그 외에도 시다들을 퇴근시키고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재단사인 전태일이 밤늦은 시간까지 혼자 남아 대신 한다던지, 미싱사와 시다들이 좀 더 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 재단사가 되려고 했던 것 등 전태일은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 스스로는 더 큰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평화시장 노동자의 노동환경을 조사하고 그것을 바꾸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던 것도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아래로 항한 연대의 마음과 인간 존중과 사랑에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전태일 정신을 말하기에 앞서 정규직 노동자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대기업 노동자는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를 위해, 남성노동자는 여성노동자를 위해, 비장애노동자는 장애노동자를 위해, 국적 노동자는 이주노동자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전태일은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노동자였다. 전태일은 평화시장 노동자의 참담한 현상을 보며 "죽어가는 저 여공들을 살리자. 우리의 생명과 건강을 갉아먹고 삶의 모든 기쁨과 보람을 빼앗아가며, 우리를 비정한 현실의 쓰레기로 만드는 저 잔인한 노동조건을 내 힘으로 바꾸어보자"고 다짐한다. 그래서 바보회(뒤에 삼동침목회로 개칭)를 만들고, 평화시장 노동조건 실태조사를 하고, 서울노동청장 앞으로 진정서를 내고, 대통령에게 보낼 편지를 작성(미 발송)하기도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실행했다. 전태일은 "내 생에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데, 굴리는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하면서 다른 세계에서 포기하지 않고 소명을 다 하겠다고 유서에 밝힐 정도로 '행동 없이 변화 없다'는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전태일의 행동 철학이 수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바치겠다는 결단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전태일은 철저하게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노동자의 머리로 세상을 생각하고, 노동자의 가슴으로 세상을 느꼈다. 전태일은 70년대의 노동환경과 사회 환경을 "인간을 물질화"하는 사회로 규정하며, 이러한 사회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비인간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는 "질곡의 덩이를 파괴”해서 "완전히 용해"되도록 해야 한다고 보았다. 지금의 언어로 바꿔본다면 '자본주의 물신주의는 모든 인간성을 파괴할 것이며, 자본주의의 착취와 불평등을 제거함으로써만이 인간성 회복과 평등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의 동의어로 본다. 전태일은 그 당시 이미 자본주의의 본질을 정확이 들여다봤고, 자본주의가 존속되는 한 인간의 행복도, 평등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본질적 직관으로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으로 본다. 그래서 그의 실천은 더 처절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동일체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 민중에 대한 사랑은 더 깊고 컸던 인인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죽음이 당시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만들어 놓은 국가권력이나 자본에 대한 항의만으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전태일의 죽음에는 국가권력과 자본에 대한 항의와 함께 노동자에게도 준엄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전태일은 청옥고등공민학교 동창들에게 보낸 편지(사실상 유서)에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려 간다네 잠시 쉬려 간다네."라고 적어 놓았다. 침묵하고 있는, 좌절하고 포기하고 있는 나의 나인 그대들이 반드시 굴려달라고 하는 강력한 주문이라고 생각한다. 전태일은 임종 직전 병상에서 이소선 어머니에게 "어머니, 내가 못다 이룬 일 어머니가 꼭 이루어주십시오"라면서 어머니로부터 약속을 받고, 친구들을 불러서도 "우리가 하려던 일, 내가 죽고 나서라도 꼭 이루어주게. 아무리 어렵더라도,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되네."라며 친구들의 약속을 받은 뒤에야 비로써 영면의 길로 들었다. 이 얼마나 준엄하고 무서운 질책이고 다짐인가.
필자는 누군가가 전태일의 정신이 뭐냐고 묻는다면 "인간해방과 노동해방을 향한 담대한 저항"이라고 감히 말할 것이다. 전태일은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평생 가난하게 살다가 죽음을 앞에 둔 그 순간 "어머니, 배가 고파요"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의 삶은 평생 물질적 궁핍함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높은 이상을 향해 쉬엄 없이 달려온 당당하고 명예롭고 정의로운 삶이었다. 스물 둘의 젊디젊은 그의 몸은 한 점의 불꽃으로 사라졌지만 반세기를 지나는 지금 그는 영원히 꺼지 않을 불꽃으로 부활했다. 많은 이들이 그의 삶의 궤적을 쫓아가고 있고, 가려고 한다. 전태일. 그의 이름은 가볍게 차출되어도 되는 이름이 아니다! 그의 이름 그의 정신을 말할 때는 진정으로 그의 삶과 자신의 삶을 일치시키기 위한 정중한 다짐과 실천이 함께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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