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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마디] 개혁의지 사그라든 문재인 정부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웹진 [e-품]의 <단!마디> 꼭지는 평등사회노동교육원 단병호 대표(민주노총 지도위원, 17대 국회의원)의 노동 및 사회현안에 대한 논평과 제언을 싣습니다. [편집자주]

 

개혁의지 사그라든 문재인 정부

 

2020. 12.

 

  문재인 정부의 개혁 법안으로 꼽히는 공정경제 3법을 비롯한 ILO기본협약 비준안과 함께 관련 노동관계법이 이번에 국회에서 통과됐다. 오랫동안 시민운동단체와 노동계가 법 개정을 추진해오던 법안들이다. 당연히 반겨야 할 것인데 반응은 그렇지 못하다. 공정경제 3법은 누더기 법안이 되었고, 노동관계법은 현행보다 후퇴되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공정경제 3법을 누더기 법으로 보는 이유

 

  우선 공정거래법의 핵심인 전속고발권이 현행대로 유지된 것에 대한 비판이 크다. 전속고발권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고 또 10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되어 있는 주요 정책 중의 하나다. 그래서 정부가 제출한 안에는 폐지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고, 법안심사 소위에서도 폐지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상임위원회 회의에서 민주당이 정의당과의 정책적 약속도 깨고 일방적으로 유지하는 수정안을 내 기습적으로 통과시켰다. 민주당의 입장이 갑작스럽게 돌아서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게 되면 검찰의 기업수사 권한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폐지할 수 없었다고 한다. 검찰의 수사권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재벌의 비리 따위는 은폐·양산되어도 상관없다는 것인지, 어떻게 이런 궁색하고 유치한 변명을 할 수 있는지가 참으로 궁금하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재벌과 담합한 것에 당이 굴복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듯싶다.

 

  다음으로 상법 일부 개정안에서 감사위원 중 최소 1명은 이사와 별도로 선출하도록 한 것은 개선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상임위에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쳐 3%로 제한한 것을 법사위가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각각 3%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완화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는 지본 쪼개기 등을 통해 감사선출에서 최대주주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할 수 있게 되었다. 재벌·대기업의 경영 투명성을 개선하기 위한 입법 취지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다중대표소송제에도 실효성이 제기 되고 있다. 모회사의 주주가 불법행위를 저지른 자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다중대표소송제를 신설한 것은 평가받을 일이다. 다중대표소송제는 비상장기업은 지분의 1%이상을 보유한 주주에게, 상장한 회사는 지분의 0.5%이상을 보유한 주주에게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문제는 재벌 대기업에게도 이 법이 통용될 수 있를까 하는 점이다. 예컨대 삼성전자의 주식이 440조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삼성전자 자회사의 불법행위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려면 삼성전자 주식의 5%에 해당하는 22조원의 지분을 가져야 하는데,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삼성뿐만 아니라 현대·SK를 비롯한 상위 10%에 드는 재벌·대기업은 이 법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개정된 공정경제 3법은 긍정적인 부분도 여럿 있지만 공정과 정의라고 하는 개혁의 정신을 충실하게 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재벌·대기업 개혁이 경제 개혁의 핵심인 것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도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180석이라는 사상초유의 거대 의석을 가지고도 이처럼 공정경제 3법을 누더기 법으로 만들어버린 것은 의지의 문제를 넘어 인식의 문제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노동관계법 개정을 개악으로 보는 이유

 

  ILO(국제노동기구)기본협약 비준은 노동계의 오랜 과제 중의 하나다. 김대중 정부 들어 사라지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3자 개입 금지복수노조 금지니 하는 말도 안 되는 법으로 노조 결성과 활동을 국가가 통제했다. 당시 노동운동의 최대 과제는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가 권고하는 수준으로 노동관계법을 개정하는 것이었다. 그 일환으로 1991년 전노협·업종회의·전국노운협·전국노련 등 4단체가 모여 ‘ILO조약비준과 노동법 개정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ILO공대위)’를 결성하고, ILO공대위의 이름으로 반민주적인 노동관계법을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이하 ILO)에 재소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비민주적이고 반노동자적인 노동관계법은 국제적 관심의 중심에 오르게 되고, ILO로 여러 차례에 걸쳐 비준과 법 개정을 촉구 받아왔다. 그 사이 노동관계법 중의 독소조항이 부분적으로 폐지되기는 했지만 결사의 자유과 온존하게 보장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ILO기본협약을 비준하겠다고 했을 때 노동계는 크게 환영하며 기대했다. 그러나 기뻐해야 할 노동계는 ILO기본협약 비준안과 함께 통과된 노동관계법의 개정안을 접하고 도리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과 함께 현행보다 후퇴되었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 무엇 때문에?

 

  문재인 정부는 노조결성의 자유를 보장한다며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조가입은 허용했지만 특수고용 노동자와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음으로 해서 특수고용 노동자와 대부분의 플랫폼 노동자의 노조결성과 가입을 제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업() 종사 근로자와 비종사자로 구분하고, 비종사자의 노조활동을 제한하고 있다. , 사업장에 종사하지 않는 노동자에게는 임원이나 대의원에 출마할 수 없도록 피선거권을 박탈하고 있다. 또한 노조가 사용주의 점유를 배제해 조업을 방해하는 형태로 쟁의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제하고 있다. 이는 산별교섭이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기업별 교섭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 비춰볼 때 노조의 단체행동권을 현격하게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이상 위와 같은 내용은 ILO기준협약과 명백하게 충돌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을 개악하는 안도 함께 통과되었다. 현재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3개월까지만 가능했던 것을 6개월까지 가능하도록 바꿨다.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은 그나마 회사 측의 일방적인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사용을 제제할 수 있겠지만 노조가 없는 대부분의 중소영세 사업장에서는 회사 측의 필요에 따라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일방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라는 것도 신설했다. 3개월 이내에서는 선택적 근로를 할 수 있도록 하면서, 1개월 마다 평균해서 1주에 40시간을 초과하지 않으면 가산수당을 주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노동자의 과로를 부추길 위험성이 높다.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을 2년에서 3년 이내로 할 수 있도록 바꿨다. 4차 산업혁명 등에 따라 노동환경·고용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시대적 상황과 전혀 맞지 않다. 이상 위의 내용은 자본가 단체가 지속적으로 요구해 오던 것으로, 그동안 정부와 민주당은 노동계의 눈치를 보다가 이번에 ILO기본협약을 비준하는 것을 빌미로 자본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ILO기본협약을 비준한다는 것은 국내 노동관계법을 ILO기본협약이 제시하고 있는 내용에 맞게 개정하겠다는 국제적 약속이다. 그러나 이번에 ILO기본협약 비준안과 함께 통과된 노동관계법 개정안은 ILO기준협약이 제시하고 내용을 충분히 채우지 못한 부분이 많다. 이는 이후에 국내 노동계뿐만 아니라 ILO를 비롯해 국제적으로도 노동관계법 개정의 요구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ILO기준협약 비준을 담보로 해서 노동관계법 일부까지 개악했는데, 이는 문재인 정부가 노동정책을 바라보는 바로미터로 앞으로 두고두고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